[독자투고] 3월초 지곡의 풍경
[독자투고] 3월초 지곡의 풍경
  • 채헌 / 포항테크노파크 기획부
  • 승인 2005.03.2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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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1

3월 1일 잠시 청암학술정보관에 들렀다. 가끔 들릴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이정도면 정말 공부할 맛 날것이라는 생각이다. 최첨단 통유리로 이루어진 외양은 말할 것도 없고, 개가식 도서관, 넘쳐나는 최신 학술정보지, 독립등이 설치되어 있는 열람석, 휴식공간, 대학도서관에 스터디룸이라니… 정말 여건이야 대한민국 최상일 것이다.

내가 다녔던 모교의 도서관이 떠오른다. 80년대 후반 캠퍼스는 학생들로 인산인해였다. 비좁아터진 캠퍼스에 점심때는 길게 줄을 서야했고 도서관에 자리라도 잡으려면 새벽잠을 설쳐야 했다. 시험 때가 되면 그야말로 도서관은 자리다툼으로 전쟁터가 된다. 학교앞에서 자취나 하숙을 하던 친구들은 시내에서 등교하던 친구의 자리잡아주는 일이 ‘큰우정’이 되던 때였다.

선배들께 왜 이렇게 복잡하냐고 물으니 80년대 초 졸업정원제의 여파로 학생들은 곱빼기로 늘어났는데 강의실 도서관 등 시설물이 이를 못쫓아가서 그렇단다. 그때는 모든 대학이 비슷해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청암도서관에서 생각해보면 그건 모두 인프라 부족, 투자부족, 학생과잉이라는 씁쓸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시설에서 열심히 공부하던 공대생들은 다들 어디로 갔을까. 과연 얼마나 포항, 아니면 이 주변에서 일자리를 잡았을까.


#장면 2
지곡단지 안에 있는 제철고등학교 정문에는 2월부터 커다란 현수막이 하나 붙었다. 포항공대 4명, 서울대 27명, 연세대 37명, 그리고 마지막에는 요즘의 진학세태까지 반영하여 의약대14명까지-- 올해의 진학성적표를 한달째 달아두고 있다. 사교육이 판치고 정보력이 중요해진 21세기 우리의 입시현황을 감안하면 포항이라는 중소도시에서 거둔 성과치고는 혁혁한 것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그런데 왜 지척의 포항공대에는 4명밖에 진ㅔ학시키지(하지) 않았을까. 상대적으로 작은 공대의 정원을 감안하더라도 타대학에 진학한 이공계 학생들의 숫자까지 고려하면 학생들에게(또는 부모님) 포항공대가 일순위가 아니었음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개개인의 대학선호도나 ‘대한민국적’ 입시행태를 비난할 생각은 없다. 그나마 이정도가 포항공대가 20년 가까이 노력한 결과라고 자위하지만 아직 제철고등학교 졸업생 1% 남짓만이 더할나위없는 여건을 갖춘 지척의 포항공대에 지원하고 있다는 현실은 우리를 되돌아보게 한다.


#결

도대체 연결고리가 없다. 학생들은 여기서 고등학교를 나와 서울로 타지로 몰려가고 공대는 어떻게 어떻게 유수한 학생들을 다시 전국에서 끌어모아 석·박사 만들어서 다시 서울로 때론 외국으로 떠나보낸다. 선순환의 고리가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비효율도 이런 비효율이 없다. 정주가 아닌 유목의 개념만 존재한다.

스탠퍼드대학의 터만 교수가 1950년대에 일자리를 잡으려고 미국 동부로만 갈려는 제자 휴렛과 팩커드를 붙잡고 지금의 실리콘 밸리의 기틀을 닦았다는 이야기는 이제 알만한 사람은 다아는 레퍼토리지만 솔직히 고백컨대 우리의 현실과 비교하자면 부럽고 존경스러운 전설처럼 멀게만 느껴진다.

그러나 절망만 있지는 않나보다. 희망의 싹도 보인다. 올해 신학기에 드디어 포항공대 출신의 교수 2명이 모교에 부임했다. 연어가 대양을 주유하다 회유하듯 18년전 청춘의 푸른꿈을 시작하였던 모교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그들이 혹시 터만 교수가 아닐까.

방법은 없다. 열심히 포항의 터만 교수, 휴렛과 팩커드를 찾고 그래왔던 것처럼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해서 더 많은 연어가 환류하고 다른 고기들도 몰려들 수 있도록 이곳을 비옥한 곳으로 만드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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