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살아가기
오늘을 살아가기
  • 이태훈 / 신소재 19
  • 승인 2023.03.01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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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참 많은 목표를 세우며 살아간다. 과학도로서의 목표나 자녀로서의 목표 같은 장기적이고 거창한 목표부터 이번 시험의 목표, 오늘 저녁 식사의 목표 같은 소소한 목표들까지. 살다 보면 서로 다른 목표가 충돌해 새로운 목표를 세우기도, 이유 없이 목표가 바뀌기도 한다. 목표를 이뤄내지 못해 자책하기도 하며, 또 새로운 목표를 세워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한때 이 ‘목표’ 때문에 고민이 많던 시기가 있었다. 눈앞의 소소한 목표들을 이루기 급급한 채 그래서 무엇이 되고 싶냐,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는 질문을 받으면 “그냥 되는대로 살아가야지”라고 얼버무리던 내 모습이 초라해 보였달까. 그러던 중 친구의 소개로 여러 대학에서 다양한 전공을 공부하는 학생들의 모임에 들어가게 됐다. 두 달 동안 매주 주어지는 질문들에 답하며 각자 인생의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이뤄나갈 방법을 설계해 공유하는 자리였다. 참여한 학생들은 저마다 정말 멋있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인류를 구원할 기술을 개발하겠다거나 자신이 다루는 악기의 연주자로서 최고가 되겠다는 목표처럼 확고하고 원대한 꿈을 가진 학생들을 보니 내가 더 우습게 느껴졌다. 열심히 고민해 적어간 내 답은 왜인지 모르게 내가 진짜 되고 싶은 모습이 아니라 ‘이렇게 됐을 때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줄 것 같은 모습’이라고 느껴졌다. 가장 큰 목표에 확신이 없으니 그 후 주어지는 과제들에서도 뜬구름을 잡을 수밖에 없었고, 결국 중도에 모임을 나오게 됐다.

내 인생의 목표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들어간 모임에서 오히려 좌절감을 겪고 고뇌하던 내게 해답을 준 것은 바로 어린 시절의 나였다. 어린 시절 내게 꿈을 정하기란 참 쉬운 일이었다. 파브르 곤충기를 읽고는 생물학자를 꿈꾸며 등하굣길 내내 바닥의 개미를 관찰했고, 사직 야구장을 다녀오고선 야구선수를 꿈꾸며 매일 아빠를 끌고 나가 따라주지도 않는 몸으로 연신 야구 배트를 휘둘러댔다. 꿈은 참 별거 아닌 이유로 찾아왔고, 그 꿈들이 내 하루하루를 사는 원동력이 됐다. 

이제는 장래 희망이나 꿈보다는 목표라는 단어가 더 현실적으로 와닿는 나이가 됐지만, 목표도 결국 내 삶의 원동력이 되리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제는 거창한 인생의 목표를 가지기 위해 고뇌하지도, 단기적인 목표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내 모습을 하찮게 보지도 않기로 했다. 다른 누군가처럼 원대한 꿈을 꾸지는 않을 수 있고, 비록 내일이면 오늘의 목표가 바뀔 수도 있지만, 내가 세운 자그마한 목표 하나로 오늘 단 하루를 열심히 살아갈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 의미 있는 삶이 아닐까.

새해가 밝고 야심 차게 세웠던 목표는 작심삼일로 끝이 났지만, 그 사흘을 살게 하는 원동력이 있었음에 감사하고 또 다른 목표를 세운다.

어디선가 봤던 김혜자 선생님의 수상소감이 생각난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말자. 오늘을 살아가자. 눈이 부시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