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질 문맹률과 모래 위의 성
실질 문맹률과 모래 위의 성
  • 손유민 기자
  • 승인 2022.05.15 0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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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일상은 온갖 중독되기 쉬운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스마트폰, 인터넷과 게임 등 문화생활부터 알코올, 담배처럼 건강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까지 우리는 중독될 수 있는 다양한 요소로 둘러싸여 있다. 그중에서도 전자의 경우 스스로 중독임을 깨우치기 어렵다. 스마트폰을 손에 든 사람들로 거리가 가득하던 2010년대 초반을 지나 불과 2~3년 만에 ‘스마트폰 중독’에 관한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에 더해 태블릿 PC 사용까지 보편화되며 스마트 기기는 우리에게 없으면 안 될 존재로 자리 잡았다. 스마트폰이 없으면 외출하기 어렵다는 말 정도는 중독 축에도 들지 않는다고 여겨질 만큼 말이다.

내 동년배 중 대다수가 학생 시절 스마트 기기를 처음 접해,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각종 중독 설문 조사와 예방 교육을 받아왔다. 그 결과 내 세대는 어느 정도 자체적인 거리두기가 가능하고 스마트 기기에 대한 중독성을 인지할 수 있도록 자랐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은 다르다. 현재 초·중·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은 입학 전부터 또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스마트 기기로 범벅된 세상을 맞았다. 스마트폰과 인터넷 중독은 예상 가능한 문제였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실질 문맹률’이다.

문해력은 단순히 읽는 행위를 넘어 글의 의미와 맥락을 해석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그리고 문해력을 지닌 사람의 비율을 문해율이라 한다. 우리나라는 쉽게 익힐 수 있는 한글을 공식 문자로 사용해 99%의 높은 문해율을 자랑한다. 그러나 표면적인 문맹률을 제쳐둔 우리나라의 실질 문맹률은 75%로 매우 높다. 실질 문맹률은 글을 읽고 쓸 줄은 알지만, 의미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이들의 비율을 뜻한다. 어린 시절부터 유튜브 콘텐츠와 방송, 일명 밈(Meme)에 과하게 노출되기 쉬운 요즘 아이들은 간단한 한국어 단어의 의미도 모르고 사용할 만큼 문해력 문제의 심각성이 짙다. 한 교육 방송에 출연한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은 가제(임시로 붙인 제목), 양분(영양이 되는 성분), 위화감(서로 어울리지 않고 어색한 느낌) 등의 정확한 의미를 설명하지 못했다. 10대 때 제대로 교육되지 못해 생겨난 문해력 문제는 장차 사회 구성원들 간 소통 자체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어린 세대의 지나친 스마트 기기 노출은 또 다른 문제를 불러온다. 우리나라는 IT 강국이라는 수식어가 생긴 이래로 정보 교육의 중요성이 증대하며 스마트 기기의 활용 지원이 크게 늘었다. 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에서는 디지털 소양 강화를 강조하는 정보교육 확대 방안이 제시되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교육 대상인 요즘 아이들은 컴퓨터 등 전자기기를 활용하지 못한다. 키보드 타자 입력에 서투른 것은 물론, 스마트 패드에만 익숙해 컴퓨터 전원을 켜고 끄는 일부터 미숙하기도 하다. 하지만 ‘코딩’은 배운다. 다시 말해 컴퓨터 활용 능력에 대해 배우는 과정은 없으나 컴퓨팅 사고력과 디지털 리터러시 소양만을 강조하는 이 상황은 ‘모래 위의 성’과 같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청년 세대의 문해력은 문제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시기는 다르나 스마트 기기를 통해 각종 밈을 접하기는 매한가지이기에 이를 단언할 수 없다. 우리에겐 가치 있는 글을 찾아 읽는 통찰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나, 우선 청년 세대도 실질 문맹률 문제의 선상에 있음을 깨닫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나아가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자라날 아이들의 낮은 문해력이 불러올 문제에 관한 의식을 갖고 살아갈 필요를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