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곡골 목소리] 소수일수록 당당한 모습이 더욱 필요
[지곡골 목소리] 소수일수록 당당한 모습이 더욱 필요
  • 공석영 / 산업 2
  • 승인 2000.09.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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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는 대부분의 대학들이 그렇듯 남녀 공학이다. 그러나 단순히 남녀공학이라고 하기에는 좀 독특한 면이 있다. 남자의 비율이 다른 학교보다 무척이나 크기 때문이다. 대략 남녀의 비율이 9:1 혹은 8:1쯤 된다고 한다면, 지나가는 열명의 학생들 중에 겨우 한 두 명 만이 여학생이라는 말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 학교에서 여자들이 겪는 어려움들은 대부분 소수이기 때문에 생긴다. 예를 들면, 각 건물마다 여자 화장실은 한 층 건너씩 있다든지 하는 시설적인 불편함, 혹은 체육대회 때 여학생들은 언제나 응원만 해야 하는 행사적인 소외감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단지 불편함일 뿐, 여자라서 학교에서 겪는 힘든 일에 포함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나를 포함한 주변 여자들 모두 가장 힘든 것은 인간관계 라는데 동의하기 때문이다.

우리 학교는 학생 수가 참 적다. 적은 학생수만큼 인간관계가 제한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서로를 좀더 잘 알고, 친할 수 있기도 하다. 그런데 언제, 어디서 사람들과 가장 친해지는 것일까? 나는 기숙사라고 생각한다. 물론 수업을 들으면서, 같이 모여서 공부를 하면서, 또는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사람들과 친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같이 휴게실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거나 야식을 먹으면서, 친구 방에 여럿이 모여 앉아 밤새워 이야기를 하면서 친해지는 것에 비교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여학생들은 항상 소외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가뜩이나 학생수도 적은데 여학생들은 그마저도 제한된 조건에서 사람들과 만나야 하는 것이다.

이것과 비슷하지만, 반대되는 것으로 소수이기 때문에 생기는 특권 의식을 들 수 있겠다. 우리 학교 학생의 대부분이 흔히 포항공대는 남자학교라는 말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한다. 여자 수가 적어서, 아니면 특별히 여성스러운 여학생이 별로 없어서 그런 말을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실제 우리 생활을 보면 남자와 여자가 너무나 다른 대우를 받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어, 신입생이 들어오면 선배들은 주로 여자 후배들을 챙긴다. 여자 선배들은 여자가 별로 없으니까 애착이 가서 챙기고, 남자 선배들은 이쁘고 귀여우니까, 혹은 몇몇은 흑심이 있어서 챙긴다. 남자 후배나 여자 후배나 똑같은 후배인데 다른 대접을 받는다. 그런데 그것이 크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 다들 어느 정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앞으로 사회에 나가서 같은 위치에서 함께 경쟁하기 위해 포항공대에 왔을텐데도 오히려 다른 여대의 학생들보다 자립심이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금이야 특별대우 받아 좋고, 편하겠지만 그게 정말로 좋은 것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아무 의무나 책임없이 단지 꽃의 역할만 하는 것은 자신의 발전과 성장에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다.

물론 이런 문제점들이 생기는 것은 제도적인 탓이나, 남학우들의 선입관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큰 원인은 그런 것들을 당연시 여기고, 혹은 부당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고 여기는 여학우들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여학우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고, 합당한 권리를 누리기 위해서는 여학우들 스스로 나서서 문제점들을 고쳐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