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걸린 스토킹 처벌법, 살인 못 막아
22년 걸린 스토킹 처벌법, 살인 못 막아
  • 박승아, 박지우 기자
  • 승인 2021.12.14 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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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행위 유형과 스토킹 처벌법의 처벌 내용(출처: 연합뉴스)
▲스토킹 행위 유형과 스토킹 처벌법의 처벌 내용(출처: 연합뉴스)

 

매일 밤, 집에 찾아와 벨을 누르는 스토커가 있다. 이 사람이 누구인지도, 주소를 어떻게 알았는지도 모른다. 수십 개의 인터넷 계정을 만들어 끊임없이 연락한다. 혼자서는 집을 나설 수도 없고, 들어갈 수도 없다. 3년을 시달리다 참다못해 고소한 결과, 형벌은 징역 2년에 그쳤다.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던 지난 3년은 어디로 간 걸까?

스토킹이 범죄가 아닌 나라
‘스토킹’이란 상대방이 원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집과 직장까지 쫓거나 △온라인으로 연락하거나 △선물을 보내거나 △물건을 파괴함으로써 지속해서 공포심을 일으키는 행위다. 위 사례는 유명 스트리머의 스토킹 사례로, 가해자에겐 업무방해·명예훼손 혐의만이 적용됐다. 스토킹은 최대 벌금 10만 원에 불과한 경범죄였기 때문에, 이에 대한 혐의를 적용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난 10월 21일부터 ‘스토킹 처벌법’이 시행되며 스토킹을 중범죄로 보아 국가가 스토킹 범죄 근절을 위해 공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스토킹 처벌법은 1999년 처음 발의되고, 많은 갑론을박 아래 22년 동안 계류됐다. 범죄자의 폭력성이 점점 심해지는 경향과 가해자를 구속함으로써 피해자의 후유증을 최소화하기 위한 취지에는 대부분 동의했다. 그러나 스토킹이란 개념이 광범위해 혐의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에 따라 무고한 이도 구속될 수 있다는 비판이 컸다. 이 기준을 법률적으로 명문화시키는 과정에서 오랜 시간이 소요됐다.

스토킹 처벌법의 배경
스토킹 처벌법이 시행되기까지는 많은 희생이 있었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에서 접수된 스토킹 범죄에 대한 112 신고 건수는 4,515건으로, 이 중 89.2%가 경범죄 처벌법에 따른 처벌 없이 현장에서 사건이 종결됐다. 또한, △n번방 사태 △진주 아파트 방화·흉기 난동 살인 사건 △노원구 세 모녀 살인 사건 등 성폭행이나 살인과 같은 더 큰 범죄로 이어지기도 했다. 실제로,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지난 2012∼2018년간의 전국범죄피해조사자료를 분석한 결과, 스토킹 피해자가 성범죄를 당할 가능성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13.3배 더 높게 나타났다. 그러나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할 법적 근거가 없었기에 스토킹 범죄는 더욱 심화했고, 이를 방관하면서 스토킹이 강력범죄로 이어지는 사태가 끝없이 반복됐다. n번방 사태를 기점으로 성범죄의 강력 처벌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오가며 스토킹 처벌법도 자연스레 주목받았고, 스토킹 신고의 증가세와 함께 규제 필요성을 제기하는 사회적 움직임이 거세지며 발의된 지 22년 만에서야 비로소 시행됐다.

스토킹 처벌법의 주요 내용
스토킹 행위 처벌의 핵심 요건은 지속성과 반복성으로,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겐 3년 이하의 징역 혹은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린다. 만약 흉기를 휴대해 범죄를 저지른다면 최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한다. 경찰은 스토킹 사례에 대해 응급조치로 서면 경고와 동시에 피해자를 보호시설로 인도한다. 재발 우려가 있으면, 100m 내 접근금지와 정기 통신을 이용한 접근금지 명령 등의 긴급응급조치를 취하고, 사안에 따라 잠정 조치로 유치장 혹은 구치소 유치가 가능한 3단계의 대응을 보인다.

살인 예고편 스토킹, 처벌은 솜방망이?
스토킹 처벌법이 스토킹 범죄를 근절하기엔 부족하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반의사불벌 조항이기 때문에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합의를 종용하거나 피해자가 가해자와의 관계 혹은 보복을 고려해 처벌을 거부할 수 있다. 또한, 보호조치의 대상을 직접적인 피해자만으로 한정함으로써 피해자의 동거인, 가족 등은 배제됐다. 일부 시민 단체는 중범죄로의 발전을 막기엔 역부족인 솜방망이 처벌이라며, 조치가 이뤄지는 동안에도 스토킹 행위자로 간주해 피해자에 대한 접근을 원천적으로 차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스토킹이란 개념 자체가 추상적이고, 스토킹 여부를 피해자 진술에만 의존한다는 점에서 오인으로부터 잘못된 사회적 낙인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경찰청에 의하면, 스토킹 처벌법이 시행된 후부터 지난달 17일까지의 스토킹 신고는 하루 평균 103건으로, 법 시행 이전이었던 올해 1월에 접수된 유사 신고 건수인 23건보다 4배 이상 많았다. 다만 법 적용 대상이 △연인 △이웃 간 분쟁 △사이버 괴롭힘 △업무적 관계 △채권·채무 관계 △층간 소음 등으로 광범위해 각종 개인 분쟁 관련 신고도 포함됐다.

피해자 보호에 공백이 없어야
전문가들은 스토킹 처벌법 도입을 통해 법적인 처벌 근거를 마련했으나, 강력범죄로 이어질 연결고리를 끊을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실제로 스토킹 처벌법 시행 이후 신변 보호를 받던 여성이 가해자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들은 스토킹 처벌법이 범죄 예방에 있어 가해자 통제보다는 피해자 관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말한다. 신변 보호 대상자는 쉼터로 주거지를 옮기거나 긴급호출과 위치추적이 가능한 스마트 워치를 지급받는데, 신변 보호 요청보다 스마트 워치 물량과 현장에서 구조를 담당할 경찰 인력이 부족한 실정이다.
스토킹 처벌법의 한계에 대한 우려가 잇따라 제기되면서 여성가족부는 지난달 11일에 ‘스토킹 피해자 보호법’을 입법 예고한다고 밝혔다. 해당 법에는 스토킹 피해자 보호 및 인권 보장을 위한 △신변 노출 방지 의무 △직장 내 불이익 조치 금지 등을 명시했고 △구체적인 신고체계 구축과   △피해자 보호를 위한 국가와 지방 자치 단체 책무를 규정했다.

22년 만에 법제화된 스토킹 처벌법에 대한 실효성 논란이 뜨겁다. 법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보완 가능성을 열어둔 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쌓이는 판례를 기반으로 스토킹 범죄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을 형성해가야 한다. 스토킹 범죄에 대해 영국과 일본의 경우 강력한 형사 처벌을 규정하고, 독일은 스토킹 정의 규정에 보충 요건을 둬 사례의 다양성을 법에 반영하고 있다. 다른 선진국의 규제를 참고하거나 스토킹 처벌법이 시행된 후 지적되는 여러 맹점을 바탕으로 법 조항을 세심하게 가다듬어, 피해자 보호를 위한 노력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