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 안강 소재 산대리의 포항공대인
[독자투고] 안강 소재 산대리의 포항공대인
  • 신만수 / 환경연구소 박사후 연구원
  • 승인 2001.03.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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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시 안강읍 산대리 산1341번지, 주소조차 낯선 이곳은 포항공대 제 3의 공간이다. 이곳에는 박사후 연구원인 나를 포함해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20대에서 60대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층의 석·박사 연구원들이 여기저기 모여 산다. 낯선 주소 만큼 거리에 있어서나 교통편에 있어서 아주 뜨악하기 그지없는 이곳은 밤낮으로 포항공대 연구수준의 세계 일류화를 위해 고심하던 학교당국이 연구업무에 시달린 연구원들로 하여금 하루의 쌓인 피로를 풀고 연구의욕을 고조하여 더욱 훌륭한 연구를 할 수 있도록 특별히 배려한 산 좋고 물 좋고 공기 좋은 회심의 전원(田園)숙소이다. 밤 8시만 되면 일체의 대중교통수단이 끊기고, 외부인의 잦은 출입으로 인한 고즈넉한 전원풍경의 훼손을 우려하여 읍내로부터의 택시요금도 시내요금의 세배 가까이 받는 이 곳은 명실공히 완벽한 휴양을 위한 최적의 장소임에 틀림이 없다. 그리고, 아침 7시 반과 10시, 저녁 8시와 10시, 각 두 차례의 통근버스가 나와 같은 뚜벅이 연구원들을 나르며 지곡과 산대리 두 ‘천국’을 오간다.

산대리 생활 이후 나 스스로도 포항공대에서의 석박사과정 7년 동안 심한 직업병과 인터넷 증후군에 몸과 마음이 몹시 피폐해져 있었음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밤 12시가 되어도 하던 연구는 날을 새워서라도 마저 해야만 했던 일에 대한 심한 강박관념 그리고 시시때때로 이메일을 체크해야만 하고 원하는 때에 인터넷에 접속하지 못하면 극도로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인터넷 이상증후군 등등. 학기초 학교당국의 의도적이고 암묵적인 종용으로 이제 개인적으로는 저녁 8시 퇴근을 선호하게 되었고 눈앞에 닥친 프로젝트에 앞서 나 개인의 정신적 건강을 우선 생각하는 여유있는 마음가짐을 되찾을 수 있게 되었다.

여러모로 생각해 보건데 포항공대 석·박사 연구원들을 산대리 전원숙소로 이주시킨 일련의 조처는 그동안 학내 구성원들에 대한 복지조건의 지속적 낙후를 걱정해 온 많은 구성원들의 생각이 기우에 지나지 않았던 것임을 여실히 보여준 획기적인 사건으로 평가해 마지않는다. 내가 지켜본 학위과정 7년 동안 학부생 대학원생 그리고 연구원에 대한 복지정책은 지속적인 퇴보의 길을 걸어왔다고 단언한다. 기혼자 아파트가 유료화 되었고 이어 기숙사 역시 학부생들에 대하여 유료화가 이뤄졌으며, 돈을 내지 않는 대학원생들에 대한 3인 1실 정책은 그나마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세계 일류라는 슬로건이 무색하리만큼 뚝심있게 전개되어온 퇴보 지향의 지난 사태들 이후 산대리 전원숙소 정책은 퇴보 일변도이던 포항공대의 복지정책이 바야흐로 복지 저점을 지나 이젠 회복의 길에 접어들었다는 섣부른 판단을 해봄직하게 한다.

별로 상관없어 보이는 이야기를 하나 하겠다. 언제부터인가 캠퍼스 내 길가에 길의 이름을 적은 푯말이 하나 둘 서게 되었다. 길이란, 그리고 그 길의 이름이란……. 사방의 바람을 받기 좋은 구조를 가진 저 푯말이 어느 여름 태풍에 꺾이어지는 날 번듯해 보이는 저 이름도 꺾여진 푯말과 함께 포항공대에서 사라질지 모르겠다며 혼자 생각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렇게 쉽게 잊혀져버리는 것들이 있는가 하면 선배들로부터 후배들에게 입담으로 전해지고 전해지어 전설이 되어버리는 것들도 있다. 전설이 될만한 일화가 하나 있다. 기혼자 아파트의 유료화 당시 소신껏 강력하게 이일을 추진하던 분이 이런 말을 하셨다고 한다.

“아파트 앞에 가보면 상당히 좋은 차들이 즐비하다. 그런데 아파트 관리비 얼마 내는 거에 뭐 그리 흥분하고 그러나? 대학원생들이 그렇게 경제적으로 어려우면, 아파트 관리비 마련도 도울 겸 집에서 놀고 있는 아줌마들에게 특별히 아르바이트를 줄 수도 있다. 캠퍼스 내 잔디밭의 잡풀 뽑기 아르바이트를 하면 어떠시겠는가?”

이에 대해 기혼자인 한 대학원생이 이렇게 말하며 한숨을 지었다고 한다. “대학원생 와이프들이 뙤약볕에 젖먹이 아이를 들쳐업고 쭈그려 앉아 풀이나 뽑고 있는 풍광을 오다가다 마주치노라면 참 보기 좋으시겠습니다.”

안강 소재 산대리에 사는 뚜벅이 연구원들 중 몇 수십은 불편한 교통편과 생소한 전원생활에 대한 부적응으로 인해 심한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학교당국은 항상 열린 마음으로 산대리 숙소문제 및 여타 복지문제에 대한 학내 구성원들의 볼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낮은 마음가짐을 유지해야 한다. 학문이 연구되는 점잖은 이곳에 드높은 행정당국이 있고 한없이 낮은 구성원이 있어서 그에 부합한 권위주의 따위가 존재한다면 그건 절대로 안될 일이라는 데 모두들 공감할 것이다. 나는 이곳 포항공대가 그런 상식이 배어든 사회라고 믿고 싶고, 포항공대 구성원들을 대표하여 학교를 이끌고 계신 분들도 나와 같은 마음이리라 역시 믿고 싶다. 또한 안강 소재 산대리 거주 연구원들을 포함한 포항공대 구성원들의 복지문제에 관한 한 이분들이 길이 남을 좋은 전설을 남기시리라는 것도 믿고 싶은 마음 더욱 간절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