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기업과 쌍방향 소통한다, 팬슈머
이제는 기업과 쌍방향 소통한다, 팬슈머
  • 박지우, 탁영채 기자
  • 승인 2021.11.14 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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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슈머의 요청에 재출시된 버거킹 붉은대게와퍼(출처: 버거킹)
▲팬슈머의 요청에 재출시된 버거킹 붉은대게와퍼(출처: 버거킹)

 

팬슈머(Fansumer)란, 팬(Fan)과 소비자(Consumer)의 합성어로, 특정 상품이나 브랜드의 투자 및 제조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신종 소비자를 의미한다. 파 맛 첵스, 짜파구리 컵라면 등은 모두 팬슈머의 폭발적인 요청으로 개발돼 시중에 판매 중인 제품들이다. 이처럼 기업 활동을 단순히 응원하는 것을 넘어 제품에 대한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출하는 팬슈머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팬슈머의 대부분은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고 최신 트렌드와 특별한 경험을 추구하는 MZ세대다. 이들은 적극적인 소비 활동을 펼치는 동시에 기업에 대한 비판과 간섭을 병행한다는 특징을 보인다. 이들의 영향력은 특히 연예계 시장과 유통 산업에서 두드러진다.
연예인을 좋아하게 되면서 그 연예인에 대한 영상과 사진들을 찾아보는 행위를 흔히 ‘덕질’이라고 한다. 덕질의 한 종류로, 팬이 유튜브에 좋아하는 연예인에 대한 영상을 올리는 ‘팬튜브’가 등장했다. 팬튜브는 좋아하는 연예인의 영상을 모으는 2차 창작 형태와 브이로그 형태 등 다양한 양상을 띤다. 이들이 올린 영상은 팬덤 소비 시장을 촉진하고, 해당 연예인을 홍보한다. ‘정승제사생팬’과 같이 구독자가 15만 명이 넘어가는 등 인플루언서에 버금가는 인기를 끄는 유명 인터넷 강의 강사에 대한 팬튜브도 있다.
연예계 시장에서 팬슈머의 가장 대표적인 활동 영역은 미디어 분야다. ‘국민 프로듀서’라는 말을 만들어낸 ‘프로듀스 101’은 팬들의 투표와 참여를 통해 아이돌을 직접 뽑는 경연 프로그램으로, 당시 엄청난 유행을 이끌었다. 이후, ‘퀸덤’, ‘더 유닛’과 같은 다양한 아이돌 경연 프로그램이 쏟아져 나왔다. 아이돌 소비 시장의 주류가 MZ세대였다면, 현재는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인 ‘미스터 트롯’, ‘미스 트롯’과 노래 서바이벌 경연 프로그램인 ‘국민 가수’ 등의 등장으로 팬슈머의 연령층이 확대되고 있다.
또한, 팬슈머가 늘어나면서 연예인 혹은 유명 크리에이터가 기업과 협업하는 팬커머스 시장 규모가 커지고 있다. 뷰티 유튜버 소윤은 더마 코스메틱 브랜드 ‘웰라쥬’ 제품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이에 팬들은 해당 제품에 대한 콜라보를 요청했고, 소윤과 웰라쥬는 지난 4월에 진행한 1차 판매, 7월에 진행한 2차 판매 모두 완판시켰다. 한편, CJ에서는 지난달 18일부터 24일까지 실시간 방송을 통해 상품을 판매하는 ‘믿고보쇼’를 진행했다. 지소연, 송재희, 이유리, 박명수 등 인기 연예인이 등장한 셀럽 특집 방송에서는 프리미엄 샴푸 한정 판매, 인기 가구 브랜드 ‘리바트’의 소파 할인 등 다양한 행사와 함께 큰 성공을 거뒀다. 크리에이터 팬덤을 활용한 협업이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지만, 동시에 △다양한 분석  △간접 경험 공유 △꼼꼼한 리뷰 △전문적인 설명 등을 활용한 신중한 의사 결정이 필요하다.
팬슈머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이들의 다양한 취향을 제품에 반영하기 위한 유통업체 간의 경쟁도 치열하다. 소비자가 제품을 소유하고 경험하는 것을 넘어 직접 제품의 △기획 △유통 △홍보에 참여하는 경향을 ‘바이미(By-me) 신드롬’이라고 부른다. 팬슈머는 관심 제품의 개발자이자 투자자, 서포터 역할을 해내고, 때론 공격적으로 비판하며 제품이 발전할 수 있도록 채찍질하기도 한다. 제품 기획에 소비자의 아이디어를 수용한 사례는 식품 업계에서 흔하게 찾을 수 있다. 오리온은 소비자들의 오랜 염원이었던 ‘미쯔 대용량 팩’의 페이크 이미지를 SNS에 게재했고, 이에 대한 열렬한 관심이 이어지자 제품을 출시했다. 농심 켈로그의 ‘파 맛 첵스’ 역시 지난 2004년에 진행한 투표 이벤트에서 만만치 않았던 득표율을 고려해 16년 만에 출시됐다.
소비자가 직접 제품 제작에 참여한 콜라보 제품도 등장했다. 의류 브랜드 골든 구스는 스테디셀러 아이템 도면에 소비자가 자신의 개성을 녹여 스니커즈 디자인을 구성하는 콘테스트를 진행했고, 이 프로젝트가 큰 인기를 끌자 올해 실제 소비자들의 디자인을 반영한 드림메이커 컬렉션을 발매했다. 소비자들은 크라우드 펀딩으로 관심 있는 사업 아이템에 투자하기도 한다. 국내 대표적인 온라인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와디즈는 지난 2019년에 1,435억 원의 펀딩을 성사시키며 스타트업의 디딤돌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팬슈머가 시장을 움직이는 주체로 급부상하면서 브랜드에 대한 굳건한 팬덤은 곧 기업의 경쟁력이 됐다. 순수한 팬심으로부터 자발적으로 기업에 관여하는 팬슈머는 중요한 성장 원동력이 되기에, 기업은 이들의 영향력을 적용하기 위한 다양한 전략을 세우고 있다. 우선 고객 스스로 브랜드를 키웠다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소비자와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그들의 의견을 반영한다. 팬슈머는 단순히 제품을 구매하는 것을 넘어 브랜드의 정체성까지 소비하기 때문에, 기업들은 고품질의 제품을 생산해 소비자들에게 브랜드 과몰입을 유도한다. 소비자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과정에서 기업은 숨은 수요를 발견하기도 한다. 공유 셔틀 모빌리티 기업인 ‘모두의 셔틀’은 소비자가 직접 다른 고객을 모집해 새로운 출근길 운행 경로를 개설할 수 있게 한다. 반면 기업에 대한 팬의 애착을 단순히 돈줄로 여겼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도 있다. 넷마블은 인기 아이돌 그룹인 BTS의 팬덤을 공략해 지난 2019년 ‘BTS 월드’라는 게임을 공개했으나, 어려운 난이도, 아이돌 멤버와 닮지 않은 캐릭터 등을 이유로 팬들에게 외면당했다. 훌륭한 제품과 서비스뿐만 아니라 기업의 브랜드나 제품을 선호하는 고객을 직접 찾고 정서적 교감을 나누는 노력이 필요하다.
팬슈머의 성장은 단기간의 유행이 아닌, 산업과 기술적 기반이 뒷받침된 상태에서 명분 있는 소비를 즐기는 밀레니얼 세대와 트랜드를 쫓는 Z세대가 경제 활동의 주축으로 진입한 결과다. 계속해서 소비자와 생산자 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며 보다 민주적인 시장 질서가 확립되고 있다. 소비 시장 속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을 맞춰가고 이를 새로운 투자와 사업의 기회로 적용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