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곡골 목소리] 피해 입으면서까지 외부인 배려해야 하나
[지곡골 목소리] 피해 입으면서까지 외부인 배려해야 하나
  • 송규환 / 재료 3
  • 승인 2001.04.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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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의 주인은 교수, 학생, 직원이다. 당연한 말이고, 또한 당연해야 할 말이다. 그러나 돌아보면 꼭 그런 것 같지만은 않다.

도서관 아래로 넓게 펼쳐진 한폭의 그림같은 잔디밭은 ‘몸으로 느끼는’ 체험시설이 아니라 ‘눈으로 보는’ 조경시설이다. 그래서 흙을 밟으며 자연을 느끼고 싶은 학생들도 돌아다녀야 한다. 한국 토양에 잔디는 그리 강한 생명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마다 봄철이면 막 새순이 돋는 싹들은 돗자리 펴고 도시락까지 준비한 외부인들에 의해 초토화된다. 학교의 주인조차도 마음대로 드나들지 못하는 이 곳이 외부인들에게는 좋은 놀이 공간으로 전락했다. 어린이날 등이 끼여 있는 가정의 달 5월을 맞으면 이는 정점에 이른다. 심지어 어느 몰지각한 사람들은 기숙사 휴게실까지 들어와 자리를 펴고 고기를 굽는다. 복도에서 아이들이 소리치며 뛰어다니는 것은 차라리 애교라 하겠다.

외부인들이 몰리는 카페테리아는 주말에 학생 할인이 적용되지 않는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겠다면 모르겠거니와, 이것이 학생을 위한 시설의 자세라고 할 수 있겠는가. 물론 지역 사회에 대한 기여라는 점을 들어, 이를 수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교육시설인 학교가 문화적 기여가 아닌 오락이라는 기능으로, 그것도 주체인 학생들의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용인될 수 있다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 물론 내 의견이 외부인이 눈에 거슬리니까, 교내에 들여보내지 말자는 편협한 사고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사람 사는 곳은 활기가 있어야 한다. 다만 존재 자체의 목적이 침해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교수의 연구가 방해받고, 학생의 학업을 무시하면서까지 운영된다면, 아무리 훌륭한 사업을 추진한다해도 그것은 ‘학교로서의’ 올바른 길이 아니다.

도서관에서 심심치 않게 벌어지는 도난사고. 피해자들 중 상당수가 ‘근처에 고등학생이 있었다’는 식의 외부인 소행을 의심하고 있다. 기숙사도 마찬가지다. 잠깐 휴게실에 있다 방으로 가보니 배달업체 직원이 방을 뒤지고 있더라는 경험담도 숱하게 회자된다. 이를 위해 방 자물쇠도 바꾸어 달았지만 도난 사고가 줄어든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지난 3월 남자 기숙사 1동부터 5동까지 차례로 도둑이 들어 많은 학우들이 피해를 입었고, 이는 78 계단 위 연구 시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수학과 어느 교수님은 노트북을 도난당해 연구자료를 모두 잃어버렸다. 정보통신연구소 어느 랩은 도난으로 수백만원의 피해를 입었다. 물론 어느 정도는 내부인 소행일 것이다. 그러나 이 학교는 작다. 내부인 소행의 도난은 눈에 띄기 쉽다. 게다가 공돌이들에게 그 정도의 전문성이나 대담성을 찾기는 어렵다.

포항에 적당한 쉴 공간이 없어 이곳을 찾는 포항시민들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포항공대라는 학교의 위상과, 그 교수와 학생에 대한 투자 또한 다른 대학들이 감히 바라지 못하는 대단한 것이며, 우리는 이것에 긍지를 갖고, 또한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한 가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포항공대 학생들은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한다는 것이다. 학교는 우리의 학업의 공간인 동시에 생활 공간 그 자체이다. 내가 좋은 정원을 가지고 있다면 이웃을 위해 개방하는 것은 물론 옳은 행위이다. 하지만 그 개방에 따라 입는 피해까지 감수해야 할 이유는 없다. 결론적으로, 외부인의 출입 지역을 제한하자는 것이다.

연못가에 앉아서 얘기하건, 지곡회관을 가득 메우건, 그것까지 붙잡고 시비걸 생각은 없다. 물론 현실적으로 관리상의 어려움 때문에 어려운 일이라는 것은 안다. 다만 외부인 전용 잔디밭이라든가, 주말 카페테리아 학생 할인제, 그리고 기숙사나 연구 시설 근처로의 외부인 무단 침입과 소란 등은 학교의 주체인 교수와 학생이 나서서 막을 수 있고, 고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총학생회와 기숙사자치회에 심심한 감사의 말 또한 전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