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논단] ‘우리’도 ‘그들’을 닮아가고 있다
[독자논단] ‘우리’도 ‘그들’을 닮아가고 있다
  • 전준호/화학 석사과정
  • 승인 2001.05.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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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얼마나 외국인에게 개방적인가? 개방이란 말은 새로운 것들을, 다른 것들을 단순히 받아들이는 것에만 그치는 것을 일컬는 말은 아니다. 이것은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서 받아들여진 것들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우리의 삶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이것은 새로운 것, 다른 것들을 그 자체로 인정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과연 우리는 다른 나라 사람들을 그 자체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가? 만약 우리가 유럽이나 다른 선진국에 갔을 때 외모나 못사는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로 불합리한 대우를 받는다면 과연 그 기분이 어떨까? 요즘도 그런 사람이 있나 싶겠지만 내가 작년에 겪은 일을 하나 소개하겠다.

나는 지난 해 학부 과정의 마지막 학기(나는 다른 대학에서 학부과정을 마쳤음)에 정부초청 외국인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도우미 자원봉사를 했었다. 난 베트남에서 온 여자의 도우미가 되었다. 근 4개월 동안 이런저런 많은 얘기를 했고 또 우리의 좋은 것들을 많이 보여주고 가르쳐주기 위해 애썼다. 학부 마지막 과정을 보내느라 사실 난 분주하게 벌여놓은 일들도 있어서 바빴고 자원봉사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할 형편도 못되어서 가끔씩 귀찮아질 때도 있었지만 나름대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열심히 활동했다.

그들은 매우 자존심이 강한 사람들이었다. 대부분이 통신사나 언론사의 기자 혹은 자국 외무부소속 직원이거나-심지어 태국 총리 비서실 직원도 있었음-공무원들이었다. 그들이 자신들의 직업에 대해서 갖는 자긍심은 현재 그들의 사회 상황을 비추어 볼 때 우리 사회의 이런 위치에 있는 사람들 보다 더욱 강하다. 아시아 각국에서 온 그들과 몇 번 같이 지내면서 이런걸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한국에 대해서 느끼는 것도 남다를 것이라고, 오히려 민감하고 예리한 것일 거라는 짐작도 해 볼 수 있었다. 공산주의 국가인 베트남, 라오스에서 온 사람들 같은 경우에는 그 사회의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아니고선 그 정도의 교육혜택을 받거나 직업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던 중 작년 12월 그들 중 내가 도우미였던 그 베트남 사람은 귀국하면서 나에게 다시는 한국에 오지 않을 거라는 말을 남겼다. 그녀는 베트남에 하나밖에 없는 통신사 직원이다. 말하자면 외신 기사를 번역 및 편집해서 자국의 언론에게 제공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나에게 해준 말들은 대략 이런 것들이었다. 한국 사람은 돈 밖에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자신들은 이 나라에 손님으로 초청되어서 온 사람이지 한국이란 나라보다 못사는 나라에서 한국을 배우러 온 게 아니라고. 못사는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로 불공정한 처우를 받거나 모욕을 당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고. 자기 나라에선 손님으로 온 사람에게 이런 대우는 생각도 못할 일이라면서. 아니 외국인에 대한 이런 대우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충격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홈스테이(민박집)에서 그동안 벌어졌던 일들을 하나하나 나에게 이야기 해주었다. 난 부끄러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니 혹시 내가 그 민박집 사람들과 똑같은 부류가 아닌지 걱정스럽기까지 했다.

혹시 여러분은 그들이 나와 생김새가, 사는 방식이, 혹은 그들의 고국이 가난한 나라라고 멸시해 본 적 있는가? 우리도 불과 몇십 년 아니 십여 년 전 다른 선진국에 가면 그런 취급을 당했다는 것을 아는가? 그때 내가 느낄 모멸감의 크기는 얼마만할까? 단지 그들이 내가 그들보다 못사는 나라에서 왔다고, 내가 콧대도 제대로 솟지 않은 누리끼리한 동양인이라는 사실만으로 날 모욕하거나 비인격적인 대우를 한다면? 이 무슨 유치하고도 치졸한 짓인가? 자기는 사람들 사이에선 돈보다 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말을 더듬거리며 말하던 내 베트남 친구의 눈물이 그렁한 슬픈 눈동자가 아직도 눈앞에 선하다.

몇 사람 때문에 우린 귀중한 친구들을 잃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일의 방조자가 됨으로써 오히려 그들이 우리에게서 멀어지도록 돕고 있는지도 모른다.

심지어 내 딴에는 항상 마음을 열어 놓는다고 하면서 오히려 이중적 잣대를 가지고 무의식적으로 이런 일들을 해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친구들로부터 들은 ‘백인 선호주의’는 남아공의 ‘아파하이트(apartheid)’의 한국판일지도 모른다. 올해가 비단 대통령까지 광고에 나서는 한국 방문의 해라서가 아니라 앞으로도 이런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