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곡골 목소리] 벗들이여, 바보가 되자
[지곡골 목소리] 벗들이여, 바보가 되자
  • 문이중선 / 전자3
  • 승인 2001.05.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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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는 호주제라는 제도가 있다. 이는 주민등록과는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며, 호주를 중심으로 가족을 구성하여 국가가 이를 관리하는 것이다. 여기서 ‘호주’는 20세 이상의 성인은 누구나 될 수 있다. 단, 당신이 남자라면. 여자들은 호주 승계 순위에서 남자보다 아래에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불이익을 보게 된다.

그래서 지난 달 말, 필자는 정이수헌, 최김용상과 함께 학교 안에서 호주제 폐지 서명 운동을 주도하였다. 이 서명 운동을 두고 다른 벗들은 여러 가지 의견을 갖고 있었다. 호주제와 같은 불합리한 제도를 폐지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서명을 해주신 벗들도 계셨다. 반면 호주제 폐지의 의미를 오해하시는 벗들도 많았다. 또한 어느 정도 호주제 폐지에 찬성하면서도 왜 굳이 학교 내에서 그런 일을 하는 것인지 궁금해하는 벗도 있었다.

난 호주제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남자와 여자에게 평등하게 적용되지도 않을 뿐더러, 다양한 가족제도를 국가의 ‘권력’으로 억압하려 들기 때문이다. 물론 호주제가 폐지된다고 해서 서명 운동을 벌였던 ‘나’에게 득이 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도 우리가 호주제 폐지 서명 운동을 벌였던 이유는 우리가 ‘바보’이기 때문이다. 완전한 바보 (absolute cuckoo).

우리 나라에서 똑똑한 사람은 누구인가? 자신의 이득을 잘 챙기고, 남에게서 손해를 입지 않는 사람. 그래서 돈이나 권력을 한몸에 지니게 되어 ‘출세’해서 잘 사는 사람이 바로 똑똑한 사람으로 취급되지 않던가? 똑똑하지 않더라도 바보가 되지 않으려면 최소한 자신의 이익과 상관없는 곳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우리의 환경은 절대 개선되지 않는다. 불합리한 것들을 우리는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나? “현실주의자가 되자. 그러나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자.” 68 운동 당시 파리의 길거리에 이런 낙서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똑똑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절대 아니다.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므로.

그런 의미에서 난 포항공대의 벗들이 ‘완전히 바보’가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아직 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