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합은 어떻게 접착을 하는가: 아미노산 배열에 비밀이 있다
홍합은 어떻게 접착을 하는가: 아미노산 배열에 비밀이 있다
  • 차형준 / 화학공학과 교수, 신민철 / 화학공학과 통합
  • 승인 2021.06.2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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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파와 라이신의 위치에 따른 시너지 작용
▲도파와 라이신의 위치에 따른 시너지 작용

 

바닷속의 골칫덩어리 홍합
홍합(Mussel)은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식자재다. 우리나라에선 짬뽕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고, 지구 반대편 유럽으로 가면 프랑스와 벨기에에서 물 마리니에르(Moules Marinieres)라는 이름의 홍합탕을 흔히 볼 수 있다. 특유의 식감과 국물에 넣었을 때의 그 시원함이 아마 전 세계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비결일 듯하다. 이처럼 매력적인 홍합은 때론 큰 골칫덩이가 된다. 바닷가에 놀러 가면 정박한 배를 쉽게 볼 수 있는데, 이를 자세히 관찰하면 배의 밑바닥에는 다양한 해양생물들이 붙어있다. 배의 밑바닥은 운항 중에 매우 강한 물살의 저항을 받는 부분이다. 하지만 홍합을 포함한 다양한 수중생물들은 이처럼 강한 저항을 받는 수중조건에서도 매우 강력한 접착을 유지한다. 이들의 강한 수중 접착력은 터빈(Turbine)을 이용한 배들에는 굉장히 치명적이다. 이들이 터빈의 날개 등에 붙으면서 터빈의 기계공학적 효율은 크게 저하되고 이는 배의 연비에 큰 영향을 미친다. 또한 주기적으로 제거해주지 않으면 기기 고장의 원인이 되기에 군함을 포함한 대형 선박들은 목적지에 도달하기 전에 수시로 육지로 이동해 부착성 해양생물들을 제거하고, 이로 인해 들어가는 돈은 천문학적 수준이다.

홍합의 문제점을 장점으로
처음 홍합의 수중접착에 관한 연구는 이들이 잘 붙지 못하는 표면이나 코팅 혹은 붙어있는 이들을 쉽게 제거하는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시작됐다. 여러 연구팀이 관련 연구를 진행한 것과 달리 미국 캘리포니아 샌타바버라에서 홍합을 연구하던 허버트 웨이트(Herbert Waite) 교수는 홍합의 수중접착 능력을 모사해 인류가 이롭게 쓸 방법에 대해 고민했다. 수중접착은 사실 인류에게는 만만찮은 기술인데,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1) 수중에 있는 물체의 표면에는 weak boundary layer라는 얇은 수막이 존재하는데 이는 표면과 직접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것을 방해한다.
(2) 수중에서 대부분이 액상인 접착제가 작용하려면 퍼지지 않아야 하는데 액상끼리 섞게 되면 원래의 형태와 농도를 유지하기 힘들다.
(3) 물은 유전상수가 약 80 정도로 매우 큰데 이는 다양한 정전기적 인력의 크기를 크게 줄인다.
이처럼 우리에게는 힘든 수중접착을 일상으로 하는 홍합은 떨어트리기 위해서가 아닌 붙이기 위해서도 충분한 연구 가치가 있다.

수중접착의 비밀 ‘도파’
홍합의 수중접착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가장 먼저 한 것은 그들의 접착제가 무엇으로 구성됐는지에 대한 분석이었다. 홍합이 사용하는 접착제는 대부분 단백질로 이뤄져 있으며 이를 홍합접착 단백질(Mussel Adhesive Protein)로 명명했다. 홍합접착 단백질의 가장 큰 특징은 비천연 아미노산(Noncanonical Amino Acid)인 도파(3,4-dihydroxyphenylalanine, DOPA)가 매우 높은 비율로 들어있다는 점이다. 도파는 천연 아미노산인 타이로신(Tyrosine)에 수산화기(-OH)가 붙은 분자로서 단백질 번역 후 수정(Post-translational Modification)에 의해 만들어진다. 연구자들은 비천연 아미노산인 도파에 관심을 가졌고 이 도파 분자가 수중접착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밝혀냈다. 이후 수많은 연구팀이 도파를 모방해 조직공학과 의료분야에 적용했다.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피부 접합, 뼈 접합, 내부 장기 접합 등의 실제적인 접착뿐만 아니라 다양한 제형의 표면 개질, 약물전달, 세포치료제 전달 등 많은 분야에서 홍합의 수중접착을 모방했고 성공적인 결과를 보여줬다.

생각보다 복잡한 홍합의 수중접착
조직공학과 의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홍합을 모방한 연구들이 큰 성과를 냈지만, 홍합의 강력한 수중접착을 완전히 모사하지는 못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홍합의 수중접착에 대한 비밀이 아직 남아있다는 점일 것이다. 최근 연구들에 따르면 도파의 수중접착을 조절하는 데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작용한다. 홍합은 이를 조절하기 위해 접착환경을 외부 환경과 독립시키는 전략을 이용하고, 다양한 단백질을 위치와 시간에 맞게 분비한다. 추가로 단백질을 구성하는 수많은 아미노산 중 도파만이 역할을 하진 않을 것이라는 추측과 함께 또 다른 홍합접착 단백질의 특징인 양전하를 띄는 아미노산이 많다는 점에 최근 연구팀들이 관심을 가졌다. 그 결과 라이신(Lysine)과 아르기닌(Arginine)과 같은 양전하를 띄는 아미노산들은 매우 빈번하게 도파 바로 옆에 위치한다는 점을 관찰할 수 있었고, 이들의 수중 접착력을 측정한 결과 도파와 라이신 분자가 함께 있는 경우에 도파의 표면접착능력(Surface Adhesion)이 증가하는 시너지 현상을 확인했다.

자연의 홍합접착 단백질은 어떻게 디자인이 됐을까?
도파 이외에 새롭게 라이신 분자가 수중접착에 도움을 준다는 점을 알게 됐다. 그렇다면 도파 옆에는 항상 라이신이 붙어 있어야 유리한 것이 아닌가? 하지만 실제 홍합접착 단백질 중 표면에 위치하며 실제 표면과 상호작용을 하는 표면접착 단백질의 경우 약 절반의 도파만이 옆에 라이신을 두고 있다. 자연의 단백질이 항상 최적이 아닐 수도 있지만 본 MAGIC 연구팀에서는 여기에도 이유가 있을 것으로 생각해 도파의 다른 상호작용 방법들을 라이신-도파 쌍(Pair)에서 테스트해 보았다. 그 결과 홍합이 주로 사용하는 응집력(Cohesion) 전략인 철-매개 응집력과 중요한 비공유결합(Noncovalent Bond)인 양이온-파이 인력(Cation-pi Interaction)의 경우 이들의 쌍이 오히려 반대의 시너지를 낸다는 것을 발견했다. 즉 라이신과 도파가 함께 붙어 있는 게 항상 좋게만 작용하지는 않았다. 다시 말해 라이신의 위치에 따라 도파가 표면 접착력에 도움을 줄 수도, 응집력에 도움을 줄 수도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이로써 홍합 수중접착의 비밀에 한 걸음 더 다가가게 됐고, 이를 통해 더욱 혁신적인 수중접착제를 개발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아직 홍합의 접착 기작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끊임없는 관찰과 호기심, 그리고 관점의 전환을 통해 더욱더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홍합의 수중접착과 홍합접착 단백질
▲홍합의 수중접착과 홍합접착 단백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