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는 그 시대의 삶에 관한 가치관이 투영되어 있다
도시에는 그 시대의 삶에 관한 가치관이 투영되어 있다
  • 구자문 / 한동대 교수
  • 승인 2003.10.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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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도시라는 단어가 우리에게 친숙해진 것은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니다. 친환경도시라는 말이 영어로는 Environmentally Friendly Cities혹은 Eco-Cities라고 표현할 수 있겠는데, 이 말은 도시공간이 자원절약적인 형태로 구성되고 환경오염물질이 배출되지 않으며 시민들이 지속적으로 쾌적하게 경제, 사회활동을 해나갈 수 있는 곳을 일컫는 것이다. 하지만 도시는 오랜 세월에 걸쳐서 형성되어온, 다양한 삶과 활동이 이루어지는 곳이기 때문에 이를 어떻게 친환경도시로 바꾸어 나갈 것이냐에 대해서는 다양한 이론이 있을 수밖에 없다.

친환경도시에 관한 소망은 18-9세기 유럽의 산업혁명이후 대도시의 급격한 인구유입에 따라 꾸준히 전개되어 왔다. 즉, 대도시에 공장들이 들어서고 농촌인구들이 대거 유입된 후, 이 대도시들은 심각한 대기오염, 수질오염, 열악한 주거환경에 시달리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해결방안으로서 주창된 것이 전원도시(Garden City) 개념이다. 이 개념의 주창자인 하워드(E. Howard)는 대도시의 오염과 혼잡을 완화하기 위하여 대도시 주변에 작은 규모의 자급자족형의 전원도시를 건설하자고 주장하였는데, 이 전원도시 개념은 우리나라에 있어서도 수도권의 수많은 신도시들을 건설하는데 있어서 적용 내지는 원용되고 있다고 본다.

하지만 친환경도시 내지는 친환경이라는 개념에 대한 본격적인 토론과 연구가 시작된 것은 좀더 최근의 일이며, 그 기폭제 내지 선도적인 역할을 한 것이 ‘지방의제 21’(Local Agenda 21)이다. ‘지방의제 21’은 1992년 브라질 리우에서 개최된 세계의 정상들이 모인 유엔환경개발회의에서 선포한 리우환경선언의 실천강령인데, 이 강령은 세계 각 나라의 지역사회가 환경친화적인 개발을 위하여 어떻게 행동하여야 할지에 대하여 지역사회 스스로가 자세한 행동규범들을 만들도록 권고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정부, 기업, 시민, 시민단체, 학계, 지역사회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또 힘을 합하여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하여 혹은 환경친화적인 생산과 소비를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할지를 규정하는 것이다. 기업은 환경친화적인 원료를 사용하고 환경친화적인 공정을 통하여 오염배출을 줄여야하며, 시민들은 환경친화적인 생활용품을 사용하고 쓰레기의 양을 줄이려 노력하며, 정부에서는 자원절약적이며 환경친화적인 도시계획의 수립과 건축허가를 위하여 애써야하는 등의 지속가능한 도시건설을 위한 지침들이 ‘지방의제 21’에 자세히 세워져야 한다. 이러한 환경에 대한 세계적인 움직임은 환경오염의 심화와 지구자원의 고갈로 지구의 생태계가 급격히 파괴되고 우리가 살아가는 정주환경도 지속가능함을 기대할 수 없다는 위기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물론 이러한 노력에 대한 반론 내지는 반감들도 존재한다. 첫째는 지구자원의 고갈, 지구의 자정작용의 역할, 과학기술의 역할에 관한 이론들이다. 현재 많은 학자들이 지구자원의 고갈과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우려하고 있지만, 일단의 학자들은 지구자원의 무한성과 환경문제 해결에 낙관적인 견해를 가진다. 화석연료 같은 자원의 고갈도 새로운 대체자원이 개발됨으로 해결될 것이고, 환경의 오염도 지구생태계의 정화작용과 과학기술에 의하여 문제없이 해결될 것이라고 진단한다. 물론 일반 시민들로서는 어떠한 주장이 옳은지 판단하기 힘든 실정이다.

둘째는 환경제국주의에 관한 논쟁이다. 현재 부유한 나라들은 지구의 환경오염이 심하니 모든 나라가 다같이 환경규제에 동참하여야 한다고 국제적인 규약을 통하여 역설하고 있으며, 동참하지 않는 나라들에게는 무역제재를 가하겠다고 위협도 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개발도상국가들의 주장은 다르다. 부유한 나라들은 지금까지 환경오염에 대한 아무런 규제 없이 지구를 마구 오염시키며 발전하여 놓고는, 지금 살만하니까 그러한 주장을 한다는 것이다. 개발도상국들로서는 이제 겨우 산업을 일으키려는데 환경에 대한 규제가 이렇게 심하다면 도저히 발전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환경오염 방지에 대한 규약이 개발도상국가들을 영원히 지배하려는 음모가 아니고 무엇이냐는 것이다.

이러한 국제적인 노력과 반론들 속에 우리 인간의 삶의 방식에 대한 질문도 싹트고 있다. 현재 모든 나라들은 “아메리카니즘(Americanism)”으로 표현되는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패턴을 동경하고 있고 이를 이루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작은 것보다 큰 것을, 오래된 것보다 새로운 것을 얻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자원소모적인 생활패턴이 꼭 옳은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다. 자원고갈과 환경보전에 관한 우려만이 아니라 나라간의 빈부격차 해소와 부유국과 빈곤국의 협력차원에서라도 우리 현대인의 삶의 가치 내지는 행태에 관한 논의가 진지하게 좀더 구체적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 신흥공업국가로 분류되며 일찌감치 개발도상국가의 테두리를 벗어났다는 우리나라에서도 그린라운드(Green Round)로 표현되는 이러한 환경오염방지 내지는 환경친화적인 개발에 관한 국제적인 규약아래 어떻게 산업을 유지발전시킬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산업만이 아니라 건물허가, 토지이용, 교통 등 도시계획 전반에 있어서도 지속가능한 개발 내지는 환경친화적인 개발을 위한 노력이 시작되고 있다.

기업들은 스스로 환경오염방지를 위하여 노력하고 있고 이를 알리려 노력하고 있다. 건물허가과정에 있어서도 에너지심의, 환경심의, 교통영향평가들이 강화되고 있다. 재건축, 재개발에 있어서도 그 대상지 선정에 있어서 또한 개발밀도 산정에 있어서 환경친화적인 개발의 개념이 강조되고 있다. 도시구조에 있어서도 확산이냐 재집중이냐, 다핵이냐 단핵이냐 등 효율적인 도시형태에 관한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의 기치아래 소량다원화에 관한 논의나 전통적인 것 문화적인 것의 가치 내지는 역할에 대한 논의도 활발해지고 있다.

이러한 고민과 논의들 속에서 도시는 환경친화의 틀을 ‘입게’ 될 것이다. 친환경적인 도시라는 것이 이미 설명했듯이 쓰레기를 재활용하고 도심에 푸른 숲을 만드는 노력들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 관한 가치체계를 바꾸어야할 그러한 큰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세계화, 정보화 시대에 있어서 국제적인 경쟁 속에 생존을 위한 노력의 일부분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 내용 내지 실천지침에 관한 논의는 우리 사회에서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