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포스테키안, 무엇을 할 것인가
행복한 포스테키안, 무엇을 할 것인가
  • 박상준 / 인문 교수
  • 승인 2020.11.27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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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빛도 스러져 가는 이때, 우리 학생들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생각한다. 50만 명에 가까운 대입 수험생들에 비하면 포스테키안은 행복하다. 소속 대학에 정을 붙이지 못하고 편입을 생각하는 많은 다른 대학의 학생들에 비해도 그렇고, 대학 1학년을 마치자마자 취업 준비에 내몰려 대입 수험생 때보다 더 간절하게 공부(?)해야 하는 우리나라의 수많은 학생에 비해도 그렇다. 굳이 남과 비교하지 않아도 여러분은 행복하다. 대학 시절에 배워야 할 것들을 제대로 배울 수 있고, 경험해야 할 것들을 웬만큼 누릴 수 있으니 말이다.
가끔 눈을 감고 이 행복을 음미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가진 것에 감사 할 수 있고 그것을 더 잘 누릴 수 있다. 미래를 계획할 때도, 현재의 만족스러운 상황을 제대로 인지할 때 기쁘게 기운차게 그럴 수 있다. 이렇듯, 미래를 위해 건강하게 도약하기 위해서도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의 소중함을 알아야 한다. 청춘은 머무는 시기가 아니며 대학 4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린다. 머지않은 미래에 여러분들 모두 캠퍼스를 떠나 세상의 파도를 타야 한다. 사정이 이러니 캠퍼스의 행복한 시간을 잘 활용해 캠퍼스 밖의 생활을 준비하지 않을 수 없다.
캠퍼스 바깥 우리 사회의 문제는 자명하다. 경제 논리가 사회 전면에 미침으로써, 부를 증대시키는 데 기여하지 못하는 활동들의 가치가 폄하되고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위축되고 있다. 정치도 문화도 심지어 교육까지도 경제의 논리에 휘둘리는 상황이 나날이 심화하고 있다. 그 결과 사회 전반의 온전한 발전을 기약하기 어렵고 개개 시민의 인간적 품성을 풍요롭게 향상할 가능성이 갈수록 줄고 있다. 한마디로 대한민국 사회가 ‘경제적 동물의 왕국’으로 전락 중이다. 사회 구성원 전체의 공생을 중시하는 ‘도덕적 경제’가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있다.
캠퍼스를 벗어날 때 여러분은 이런 사태의 한가운데로 던져지게 된다.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세 가지 길이 보일 듯하다. 경제 환원주의의 사태에 부응해 경쟁에서 살아남고자 노력하는 것이 하나다. 지금껏 열심히 해 왔듯이 사회인으로서도 주어진 상황 속에서 계속 열심히 사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경제 제일주의의 흐름에 반발하는 길이다. 부를 좇지 않고 경제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할 다른 일에 집중하는 것이다.
결론을 당겨 말하면, 이 둘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 경제적 동물의 왕국을 기꺼이 받아들여 생존경쟁에서 승자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은 여러분의 삶을 종국에는 피폐하게 만들 것이다. 한병철이 말했듯이 ‘자기 착취’의 사슬에 말려들 가능성이 높은 까닭이다(‘피로사회’, 문학과지성사, 2012). 두 번째의 길은 과학도로서 여러분들이 지금껏 살아온 것과 거리가 멀기에 추천하고 싶지 않다. 이 방향이라면, 자신이 갖춰 온 전문 지식을 활용해 살면서 경제로 모든 것을 재단하는 풍조에 휩쓸리지 않으려는 주의를 잃지 않으면 될 것도 같지만, 이렇게 생각하며 사는 삶을 견지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한 가지 경우가 남아 있다. 지식인으로 사는 것이다. 사르트르에 따를 때 지식인은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지식을 갖춘 데 그치는 ‘지식 전문가’와 다르다. 그런 지식 전문가가 전공 지식을 살려 직업인으로 살며 개인의 안위만 생각하는 것과 달리, ‘지식인’은 사회 전반에 관심을 갖고 자신의 전문적인 활동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도 고려하는 존재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남의 일에’ 곧 사회 전반의 일에 참견하는 사람이 지식인이다(‘지식인을 위한 변명’, 한마당, 2008).
얼핏 생각하면, 지식 전문가로 살거나 경제 제일주의 풍조와 거리를 둔 개인주의적인 삶도 괜찮은 길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누구도 사회 바깥에서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내가 가만히 있고자 해도 사회의 영향이 내게로 부단히 미치는 까닭에, 캠퍼스에서 획득한 지식을 바탕으로 스스로 사회에 개입하는 길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나와 내 가족의 행복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 상황을 조금이라도 낫게 바꾸는 데 동참하는 길밖에 선택지가 없다. 지식 전문가의 길에 들어선 이상, 지식인으로 행동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 위해서 지금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행복한 캠퍼스의 시간을 조금 할애해서 지식인 되기 준비에 쏟아야 한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세상 읽기, 사람 읽기를 연습하는 것이 최선이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문해력’을 키우는 일이다. 사회도 인간의 삶도 급속히 변화해 가는 오늘 이런 문해력을 키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런 문해력을 갈고닦아 온 성과들을 접하는 것이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탐구를 특징으로 하는 문학 작품이나 인문사회과학의 저서를 읽는 일이다. 한편으로 빤하고 한편으로 너무 막연하고 벅차다 싶으면, 그런 성과들을 집약해서 소개하는 인문학 도서를 접해 보는 것도 괜찮을 터이다. 필자도 최근 그런 책을 썼는데 딱히 그래서 하는 말은 아니다. 그만큼 지식인 되기가 중요한 까닭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