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모든 ‘영웅’들에게
이 세상 모든 ‘영웅’들에게
  • 김지원 기자
  • 승인 2020.11.27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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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영웅이 너무 많다. 영웅이 이렇게나 많은 우리나라에 가십거리가 존재하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이 영웅들의 본거지는 인터넷 공간이다. 익명성이라는 가면을 쓰고 조그만 트집을 잡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하며, 한 번 꼬투리를 잡으면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 심지어 부모님과 같은 윗사람을 욕하는 이른바 ‘패드립’으로까지 이어져 댓글 창은 순식간에 전쟁터가 된다. 이처럼 매사 별것 아닌 일에도 부정적인 여론을 형성해 논쟁을 부추기는 이들을 ‘프로불편러’라 일컫는다. 방송인 박나래는 ‘2019 SBS연예대상’ 진행 도중 김구라의 발언 후 한숨을 쉬었다는 이유로 네티즌들의 공격을 받은 적이 있다. 당사자인 김구라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박나래에 대한 비난은 가라앉지 않았다. 이처럼 공인은 대중에게 빚이라도 진 마냥 사생활과 개인적 취향까지 간섭받아야 하며, 프로불편러들은 창작자들에게 자기 검열을 하게 만들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다.
한편, 프로불편러는 굉장히 무섭고 강력한 단어이기도 하다. 사회 안의 불공정, 불평등 문제를 예민하게 지각하는 사람들에게 붙이는 일종의 사회적 ‘낙인’이며,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손쉽게 돌려 버릴 수 있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인터넷 댓글 창을 보면 정당한 비판을 하는 사람들을 자신의 의견과 다르다는 이유로 프로불편러로 몰아가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결국, 프로불편러인가 아닌가는 그들이 주장하는 ‘불편함’에 대한 주관적 평가에 달려 있다. 따라서 각자의 주관적인 판단으로 남을 프로불편러로 낙인찍고, 그들의 의견을 무시해버리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그러나 정당하지 못한 비판으로 비판의 의미 자체를 뭉개버리는 이들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들은 건전한 논쟁을 펼치며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고자 하는 정상적인 비판자들과는 달리, 본인 스스로 ‘깨어있는 시민, 영웅’이라 맹신하며 자신과 반하는 의견을 가진 이들을 ‘정의 구현’이라는 명목으로 거리낌 없이 깎아내린다. 이 인지의 오류는 자신의 주관적인 가치 기준으로 남을 판단하는 것에 기인한다. 
3년 전 한 공시생의 사연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공개돼 화제 된 적이 있다. 도서관에 갈 때마다 커피를 한 잔씩 사와 마신 공시생에게 옆자리 사람이 이런 내용의 쪽지를 남겼다. “죄송한데 공시생인 것 같은데 매일 커피를 사 들고 오시는 건 사치 아닐까요?”라며 같은 수험생끼리 상대적 박탈감이 느껴진다면서 커피 사 오기를 자제하길 바란다는 내용의 쪽지였다. 커피 한 잔에도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만큼, 정신적 여유가 없는 공시생의 상황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상대방의 속사정을 외면한 채 주관적인 박탈감 때문에 상대방을 공격하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있다. 상대방에게는 다른 것을 포기할 만큼 소중한 망중한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처럼 자신의 주관적인 가치 기준으로 상대방을 판단하면 남이 마시는 커피 한 잔을 사치로 규정해버리는 수가 있다.
사회 구조적 문제로 인한 불편함을 표현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이를 통해 자칫 무시될 수 있는 사회의 불공정성을 공론화해 좋은 변화를 끌어낼 수 있다. 하지만 정당한 비판을 하자. 내 가치 기준으로 남을 판단해 프로불편러가 되지 말고, 프로불편러로 낙인찍지 말자. 무시해도 되는 불편함은 없다. 정당하지 못한 비판만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