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본부에 바란다
대학 본부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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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11.27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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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다. 역사상 유례없는 대선 불복 사태가 벌어졌지만 트럼프의 시대가 끝난다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래야 한다고도 생각된다. 트럼프가 보인 행적은 일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파격적이었고, ‘미국이 돌아왔다’는 조 바이든의 선언이 적절하다 여겨질 만큼 트럼프의 행동이 세계의 질서를 크게 흔들었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몰락과 더불어 ‘트럼프 맨’이라 불리는 몇몇 다른 나라의 지도자들과 그들이 대변해 온 극우 포퓰리즘 또한 수명을 다하리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이 역시 그렇게 될 것 같다. 그것이 300년을 경과해 온 세계 민주주의의 발전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트럼프를 거론한 것은 지도자의 역할을 생각해 보자는 취지다. 역사를 움직이는 주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우리 시대는 소수의 영웅이 아니라 민중이라고 흔히 답하지만, 한 세대 정도의 변화를 주목하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트럼프가 생생하게 보여줬듯이 지도자가 막 나가기로 하면 그 부정적인 영향이 이루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커지게 된다. 지도자가 시스템을 망가뜨리는 방향으로 나아가면 그 결과는 금방 눈에 띄게 드러난다. 부정적인 사례이긴 하지만 그만큼 지도자의 역할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반대로 긍정적인 사례에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최근에 작고한 삼성 그룹 이건희 회장의 경우가 좋은 예다. 국내 선두 기업을 넘보는 수준에 머물던 삼성이 전 세계 최고 기업의 하나로 우뚝 서게 된 데는 ‘신경영’을 내세운 그의 리더십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명확한 사실이다. 이렇게 지도자가 어떤 사람이며 어떤 비전을 제시하는가는 그가 이끄는 조직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이런 사례들에 비춰 우리대학을 생각해 본다. 새로운 집행부가 들어선 지 세 학기가 지나고 있다. 총장 임기의 1/3이 지난 것인데, 이 기간 동안 무엇이 바뀌었는지 알기 어렵다. 무언가 반드시 바뀌어야만 한다고 보는 것은 아니다. 지금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우리가 경쟁 대학들을 앞서 나가는 데 좋은 전략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대학의 발전을 가능케 할 기본적인 조건인 재정 문제에서부터 우리는 경쟁 대학들에 비해 갈수록 열악한 상황에 놓이고 있다. 따라서 우수한 교원과 학생의 유치에 있어서 포항이라는 지역에 위치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들을 푸는 것도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상황은 이런데 우리대학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해 대다수의 대학 구성원들은 아는 것이 거의 없다. 새로운 총장을 맞이하면서 기대한 대학의 미래 비전에 대한 답은 건학이념에 충실하겠다는 다짐으로 돌아왔다. 건학이념은 중요하고 그것을 이루는 세 가지 목표 또한 지속해야 마땅하지만, 30년도 더 지난 지금 절실한 것은 변화된 환경에 부응해 건학이념을 어떻게 달성하겠다는, 더 구체적인 비전이다. 그럼에도 많은 대학 구성원들이 현재 어떤 변화가 추구되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체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변화와 관련해서 각 학과가 향후 10년의 발전전략을 요구받고 있다. 학과들 각각이 발전전략을 갖추는 일은 학과 차원에서 큰 의미를 지니지만, 그러한 발전전략들을 모두 합친다고 대학의 발전 전략이 세워질 수는 없다. 대학이 발전하기 위해서 어느 방향을 향해 무엇을 성취 목표로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학과들이 또는 대학 구성원 개개인들이 저마다 해 오던 일을 계속 열심히 한다고 해서 풀리는 것이 아니다. 발전전략을 두고 말하더라도, 학과들이 발전전략을 수립하는 데 있어 따르고 참조할 대학 차원의 비전이 전제돼야 할 것이다. 총장과 대학본부는 대학의 자원을 어떻게 확충할 것인지 명확히 하고 이를 위해 노력하면서, 그 바탕 위에서 우수한 교원과 훌륭한 학생들을 유치해 와야 한다. 일 년 반이 지난 지금은 이 프로세스가 가동되고 있어야 마땅하다. 코로나19로 인한 예상치 못한 사태를 정비하는 데 많은 노력을 경주해 왔음을 잘 알지만, 대학의 미래와 관련해서 학과들의 발전전략을 수합하며 관리하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내부의 매니지먼트가 아니라 외부와의 네트워크를 확충해 대학의 장기 발전을 가능케 할 기반을 확보하는 것이 대학본부의 몫이고 지도자로서 총장이 해야 할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과제다. 이 본연의 과제가 잘 풀려나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