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스승 ‘백일홍 나무’
글쓰기 스승 ‘백일홍 나무’
  • 남궁 덕 / 교육혁신센터 대우교수
  • 승인 2020.09.03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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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새로 조성되는 도심 공원, 아파트 단지에 꼭 한자리 꿰차는 조경수(樹)가 있다. 배롱나무다. 백일홍(百日紅) 나무, 목(木) 백일홍이라고도 부른다. 오랫동안 ‘배기롱나무’로 불리다 배롱나무가 됐다고 전해진다. 긴 더위와 장맛비로 지친 사람들에게 배롱나무의 붉은색 꽃은 환희와 휴식을 준다. 20년 전 찜통더위 속 전북 고창 선운사 올라가는 길에 마주친 배롱나무는 나를 그 자리, 그 순간에 멈춰 세웠다. 그 순간 나는 붉은 배롱나무꽃에서 굉음을 내며 수직 낙하하는 폭포를 봤다. 작지도 크지도 않은 몸에서 틔운 붉은색 꽃은 더위에 지친 심신을 치유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꽃들은 대개 10일 이상 피지 않는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꽃은 열흘 이상 붉게 피지 않는다)이요, 권불십년(權不十年, 권력은 10년 이상 존속하지 않는다)이다. 배롱나무는 붉은 꽃을 석 달 반 이상 계속 피운다. 한 송이가 오래 피는 게 아니라 여러 꽃망울이 이어달리기하듯 꽃망울을 터트린다. 가을에 씨앗을 만들어 내기 위해 개화 기간이 길어졌다고 한다. 
서애 류성룡이 세운 경북 안동의 병산서원과 전남 담양의 명옥헌, 강진의 백련사, 전북 고창의 선운사가 배롱나무 명소다. 껍질은 옅은 갈색으로 매끄러우며 얇게 벗겨지면서 흰색의 무늬가 생기는 게 특징이다. 조선 시대 선비들은 배롱나무가 껍질을 벗겨내면서 성장하는 걸 염두에 두고 속세의 때를 벗어내라는 의미로 앞마당에 이 나무를 심었다고 전해진다. 자기 수양의 본보기로 삼은 셈이다. 
우리대학 교화(校花)가 배롱나무꽃 ‘백일홍’이다. 설립자인 청암 박태준 초대 이사장의 자취다. 그가 학교 구석구석에 설립 기념으로 배롱나무를 심도록 했다고 한다. 지금 대학본관, 노벨동산, 지곡회관, 생활관 근처에 배롱나무 꽃잔치가 한창이다.
청암 선생이 우리대학 캠퍼스에 배롱나무를 심도록 한 취지가 옛 선비들의 마음가짐을 포스테키안들이 본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가을걷이를 기약하면서 더운 날을 잘 이겨내는 데다 껍질이 벗겨지는 고통을 감내하면서 성숙해지는 모습도 배우라고 가르치는 것 같다. 이보다 더 좋은 학교 꽃은 없을 터다. 학생들의 재기발랄한 모습을 볼라치면 만개한 백일홍과 중첩된다.
배롱나무는 글쓰기 스승이다. 잘 준비한 글은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준다. 한 시대를 끝내고, 새 시대를 연다. 사람을 살리고, 사람을 죽음으로 이끌기도 한다. 각고의 노력 끝에 나온 ‘작품’은 많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뼈를 깎는 노력이 보상을 받는 것이다. 한꺼번에 별안간 피었다가 지는 봄꽃보다는 더운 여름을 식혀주면서 결실의 계절로 안내해 주는 배롱나무는 글쓰기가 배울 교범이다. 자고로 서양에선 글 쓰는 사람을 작가(Author)라고 부르고, 그에게만 권위(Authority)를 인정해 줬다. 함부로 지껄이지 않고 정제된 의견을 내는 사람에게만 리더(Leader) 자격을 주는 것이다.
오프라인 신문을 구독하는 인구는 급감하고 있지만, 인터넷과 모바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려는 사람들은 급증세다. 초접촉사회의 자화상이다. 그런데 Author도 아닌 자가, Authority도 없는 자가 시도 때도 없이 주장한다. 생각을 강요한다. 그냥 중얼거린다. 리더(Reader)는 끙끙거린다. 맘에 들지 않는 글, 때론 잘못 전달된 가짜 뉴스에 화를 낸다. 이런 글들은 대개 퇴고가 없는 글이기 십상이다. 
배롱나무 껍질이 떨어지면서 겪는 고통은 퇴고와 닮았다. 자신의 글을 육하원칙에 따라 검증하고, 누굴 위해 왜 쓰는지를 되돌아보는 게 퇴고다. 요즘 인플루언서, 유튜버 등이 넘쳐나면서 ‘아무 말 대잔치’, ‘아무 글 대잔치’가 횡횡하고 있다. 그들에게 Authority를 줄 순 없다.
과학기술인재들이 글쓰기에 둔감하거나 뒤처진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그렇지만 그들만큼 글쓰기에 적합한 ‘Author 후보’는 없다. 그들은 각자의 전문분야가 있다. 그동안 Author로서 사회 지도층을 형성한 인문사회 분야의 산맥과 골짜기보다 훨씬 높고 깊다. 나는 그래서 과학기술 각 분야에서 전문성을 가진 과학기술인재들이 글쓰기 기본기를 터득한 뒤 명증한 글로 세상과 소통하길 간절히 바란다. 그 길만이 우리 사회, 민족, 인류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게 할 것으로 본다. 이젠 과학기술 리더들이 앞장서 Authority를 확립해야 한다. 코로나19가 촉매제가 됐다. 인류는 난관을 극복하고 미래를 열어갈 때마다 과학기술의 도움을 받았다. 지금 소통 엔진을 단 과학기술자가 필요하다. 배롱나무를 볼 때마다 Authority를 갖게 된 수많은 포스테키안 Author를 상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