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반의 겨울
배반의 겨울
  • 박세현 / 화공 18
  • 승인 2020.02.13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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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겨울, 나는 부모님에 의해 수심 0.9m 풀장에 던져졌다. 부모님의 강경한 수영 정책에 따라 수영 기초반을 등록하게 됐다는 의미이다. 사실은 등록하면서도 물에 뜰 수 있을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는데, 초등학생 시절 수영을 배울 때 한 달 내도록 머리를 물속에 집어넣지도 못한 채 수업이 끝났기 때문이다. 나는 물에 대한 두려움이 강한 편인데, 구명조끼를 입고 있어도 바닥에 발이 닿지 않는다는 것을 느낀 순간부터는 갑자기 잘만 쉬어지던 숨이 안 쉬어지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버둥거리고는 했다. 따라서 내가 반쯤은 자의로 수영을 배우게 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수강 첫날, 강사님은 물에 고개를 넣는 것이 무서운 사람이 있냐고 물었다. 정말로 무섭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나처럼 손드는 것이 부끄러웠기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고, 강사님은 바로 수강생들이 머리를 물에 넣고 숨을 뱉게끔 했다. 가만히 있으면 강사님이 직접 넣어버려서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물에 머리를 집어넣었다. 물에 머리를 넣은 역사적 순간이기는 했으나, 겁을 먹어 무의식적으로 숨을 삼킨 것인지 자꾸만 코로 물이 들어왔다. 급기야 다음 날에는 물 위에 뜨라고 했다. 사람이라면 머리만 물속에 있으면 누구나 뜨니까 머리를 물에 넣고 물에 떠 있으라는 거였다. 당연히 나는 온 구멍으로 물을 잔뜩 삼키며 고작 0.9m짜리 풀에서 허우적거리고 일어났다. 그만두고 싶었다.
휴교를 바라는 학생처럼 수영장이 닫기를 기도하며 잠자리에 들기를 몇 번, 나는 어느 날 갑자기 물에 뜨게 됐다. 왜 갑자기 가능했는지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 그저 코에 물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자 긴장이 풀려 물에 뜰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할 뿐이었다. 그 전날까지만 해도 절대 불가능해 보였던 것이 가능해지자 이내 자신감이 붙었고, 이렇게 빨리 물에 뜨게 된 것이 매우 신나기도 했다. 하지만 강사님은 학생들에게 또 시련을 던져 줬는데, 무언가를 해냈다고 만족하려 하면 어느새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이 가히 스파르타식 수업이라 할 만했다.
그렇게 발차기와 팔 돌리기, 호흡을 연습하고 나니 이제 강사님은 “자유형에서 배울 것은 다 배웠다”라며, 수영해 보라고 말했다. 나는 호흡하려고 들 때마다 얼굴이 물 밖으로 나오질 않아 물을 가득 들이마셨고, ‘이제 정말로 그만둬야 할 때가 아닌가?’라는 생각까지 했다. 어떻게든 하다 보니 이제 형태는 비슷하게 따라 할 수 있게 됐지만, 제대로 호흡을 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그러나 나는 이전의 과정들에서 느꼈다. 지금은 막막한 산처럼 보일지라도, 다 오르고 나면 이것도 야트막한 언덕과 다름없으며, 언젠가는 지금 눈앞의 산도 오를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초보자가 하기에는 우스운 말인지 모르지만, 만약 자신을 스스로 물에 뜰 수도 없으리라 생각하는 나와 같은 사람이 있다면 먼저 시도해봤으면 한다. 석 달을 배워도 물에 머리도 못 넣으리라 생각했던 나도 물에 뜨고는 있다. 무엇이든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시작도 전에 너무 겁먹지 말라는 심심한 응원을 보내며, 앞으로도 자유형을 향한 나의 도전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