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바퀴 아래서
수레바퀴 아래서
  • 김문정 / 물리 17
  • 승인 2019.11.08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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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의 나는 자기계발서 덕후였다. 아무리 좋아하던 소설책이라도 절대로 두 번 이상 읽지 않던 내가 ‘he Secret’, ‘꿈꾸는 다락방’ 등의 자기 계발서는 몇 번이라도 생각날 때마다 읽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던 책들은 자신의 성공담을 담은 책들이었다. 힘들고 무기력한 상황에 부닥쳐질 때마다, ‘가난하다고 꿈조차 가난할 수 없다’, ‘나나 너나 할 수 있다’, ‘공부 9단 오기 10단’과 같은 책들을 읽으며 힘을 얻곤 했다. 책의 내용은 다 비슷비슷했다. 머리가 특출하게 똑똑한 천재는 아니지만 씻지도 않고 밥도 굶어가며 하루에 14시간씩 공부한 결과 영재고나 민사고 등에서 좋은 성적으로 졸업을 하고 아이비리그에 합격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들이 모든 에너지를 한 곳에 쏟아 남들은 갖지 못하는 것을 가지고, 남들은 다가가지 못할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것이 난 너무 멋있다고 생각했었고 그 책들을 읽을 때면 나도 그만큼 노력하며 살아서 높이 올라가야겠다는 생각에 의욕이 넘치고는 했다. 
책들 덕분에 그들만큼은 아니었지만, 꽤 비슷한 삶을 살았던 것 같다. 미래를 위해 눈앞에 당장 먹고 싶은 마시멜로를 늘 참았다. 초등학교 때는 정말 하고 싶었던 여자 축구부에 들었다가, 경기가 시험 기간이랑 겹쳐 학교 수업을 빠져야 하는 상황이 생기자 바로 그만뒀다. 중학교 때는 노래방 가자고 부르는 친구들이 있는 독서실을 피해 혼자 멀리 떨어져 있는 도서관에 다니곤 했고 영재고등학교를 대비하는 학원의 반에 들어가 듣도 보도 못한 국제 올림피아드 문제들을 푸는데 그 반에서 나만 이해하지 못해 울면서 공부를 했었다. 고등학교 때도 공부에 지장이 갈까 봐 하고 싶었던 응원 동아리에 들어가지 않았고 아침 7시에 열람실로 등교해 저녁 12시쯤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일상을 반복했다.
그러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나는 우연히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라는 책을 읽고 충격에 빠지게 된다. 100년도 더 전, 독일에서 쓰였다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책 속의 상황은 대한민국 고등학생들의 삶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했기 때문이다. 모든 고등학생이 바라는 명문대학이 목사가 되기 위한 ‘신학교’로 바뀌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정말 모든 것이 똑같았다. 내용을 아주 간단히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주인공인 한스는 평생 주위의 존경을 받으며 평탄한 삶을 살 수 있는 목사가 되기 위해 아버지, 마을 목사님, 그리고 교장 선생님의 큰 기대를 받으며 무기력하면서도 악착같이 공부한다. 작은 방에서 매일매일 피곤과 졸음, 두통과 싸우며 기하학 공부, 그리스어와 라틴어, 문법과 문체론, 시저와 크세노폰과 씨름했고 심지어 미사에 가서도 손에 라틴어를 적어 외우기도 했다. 결국 한스는 신학교에 입학하지만 엄격한 그곳에서 생활하며 책 제목처럼 그는 기성세대의 권위적인 교육제도를 의미하는 수레바퀴 아래 깔려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책을 읽으며 100년 전의 한스가 정말 안타까웠고 지금 그렇게 자신을 가두고 채찍질하지 말고 하고 싶은 산책이나 낚시나 마음껏 하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자연스레 100년 뒤의 타인의 시선에서 내 삶도 한 번 들여다보니 나 또한 그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한스와 같이 늘 나 자신을 압박했고 좋은 성과를 내면 우월감을 느끼면서도 주변의 기대와 시선에 자신을 가둬 왔었다. 한스가 남들이 대우해주니까, 다들 기대하니까 맹목적으로 신학자라는 꿈을 꾼 것처럼 나 또한 여러 장래 희망을 남들이 우러러 봐주니까, 인정하니까 쫓는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리고 그쯤 내가 열심히 읽던 자기계발서 저자들이 해외 명문대학에서 진로를 바꾸다가 결국 한국으로 돌아와 늦은 나이로 의대에 다시 입학하거나, 마지막 면접에서 왜 그 꿈을 꼭 이루고 싶냐는 질문에 대답하지 못해 실패하고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게 됐고 학창 시절의 성공이 인생의 행복을 보장해주는 것이 절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삶이 수레바퀴에 짓눌릴 것인지, 수레바퀴를 이끌고 나갈 것인지는 우리 자신에게 달려있다. 이제 난 하고 싶은 일이 생길 때마다 자신에게 한 번 더 물어본다. 과연 돈과 명예가 없어도, 정말 이 일을 하고 싶은지. 그 고민을 따라 다른 과목보다 성적이 낮다는 이유로 뒤로 미뤘던 물리학을 전공으로 선택했고, 공부가 힘들긴 하지만 깨달아가는 즐거움을 느끼며 훨씬 행복하게 학교에 다니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타인의 기대나 시선에 날 가두지 않고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즐겁게 살아가는 삶으로 인생을 채워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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