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으로 인간을 보다
진화론으로 인간을 보다
  • 김준홍 / 인문 대우조교수
  • 승인 2019.10.18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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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진화생물학자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간된 지 160년째 되는 해이다. 안타깝게도 진화생물학이 발달한 서구에 비해 국내에서는 다윈의 위상이 그리 높지 않다. 그 위상은 국내 대학 생물학과에서 진화생물학 전공 교원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서구 대학의 경우 전체 생물학과 교원 중 진화생물학 전공자가 적어도 25% 이상이다. 생물학이라는 넓디넓은 분야에서 진화생물학은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주며 생물학 하위 분야들을 엮어주는 역할을 한다. 하여 20세기 초반의 위대한 유전학자 도브잔스키의 명언은 아직도 회자된다. 
“모든 생물학은 진화론의 시각에서만 이치에 맞다.” 
다윈의 위대한 업적 중의 하나는 원생동물부터 인간까지 모든 생명의 진화에 적용할 수 있는 일반 원리가 있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동시대의 지질학자 찰스 라이엘이 지질 현상의 일반 원리가 오랜 시간 동안 점진적으로 작용해 현재의 지구를 형성시켰음을 보여줬듯이, 다윈은 자연 선택이라는 일반 원리가 점진적으로 작용해 생물이 진화했다는 것을 보여줬다. 다윈의 자연 선택론은 아직 성서의 힘이 강력했던 영국 빅토리아 시대에 제시된 생물의 진화에 대한 최초의 과학적 일반 원리였다. 다윈 덕분에 신과 인간 중심, 지구 중심의 정적(靜的)인 세계관에서 범생명, 범우주의 동적인 세계관으로의 전환이 마무리될 수 있었다. 다윈은 코페르니쿠스로부터 시작된 세계관의 전환에 마지막 방점을 찍었다. 
진화의 일반 원리 앞에 인간 또한 예외가 아니다. 호미닌(침팬지와의 공통 조상 이후에 인류 쪽의 계통수에서 멸종했거나 생존한 모든 종)은 침팬지와 공통 조상을 공유하며, 현대 호모 사피엔스는 과거 원핵생물, 척추동물, 포유류, 영장류, 유인원, 멸종한 호미닌 등의 오랜 진화의 역사를 신체에 지니고 있다. 인간은 태반 포유류의 자손이기 때문에 여성만이 임신과 수유를 할 수 있다. 영장류의 자손이기 때문에 지문이 발달하고, 두 손으로 무엇을 쥘 수 있으며, 삼원색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자손이기 때문에 치아 에나멜이 두껍고 두발로 안정적으로 걸을 수 있다. 또한 초기 호모의 자손이기 때문에 땀샘이 있으며 오래 달릴 수 있고, 긴 성장기를 보내며, 큰 두뇌와 작은 치아를 지니고 있다.
인간의 신체뿐만 아니라 행동과 마음 또한 진화의 산물이다. 물론 신체에 비해 행동과 마음은 양육에 훨씬 더 많은 영향을 받기 때문에 때로는 어느 정도가 진화 혹은 양육의 산물인지 구분하기가 불가능할 때도 있다. 하지만 인간의 행동과 마음에서도 조상의 그림자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인간은 포유류의 자손이기에 여성은 남성보다 짝을 고르는 데 더 까다롭다. 또한, 두뇌가 크고 성장기가 긴 호모 속의 자손이기 때문에 출산을 앞뒀으나 양육 도우미가 없는 여성은 뱃속의 아이를 키우기를 주저하며, 짝이 있는 남성은 부성 확실성에 민감하다. 
최근 20여 년 사이에는 양육의 산물이자 인간의 전유물이라고 여겨지는 영역에서 새로운 발견이 이어지고 있다. 다른 개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하는 ‘마음 읽기’, 사회적 학습을 통해 집단의 다른 구성원으로부터 얻은 정보인 ‘문화’, 시연자가 어떤 수단을 통해 어떤 목적을 얻는지 이해하고 따라하는 ‘모방’ 등 인간만이 가능하다고 여겨지는 행위를 침팬지, 고래, 돌고래 등 비교적 두뇌가 큰 동물들도 하고 있다는 것이 발견됐다. 물론 인간의 마음 읽기, 문화, 모방은 다른 동물보다 몇 단계 더 나아간 것이며, 나름의 독특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비교동물학 연구에서 발견된 사실들은 마음 읽기, 문화가 예전에는 존재하지 않다가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오랜 진화의 산물이며, 다른 동물과의 비교 연구를 통해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36억 년이라는 생명의 진화사에서 20만 년밖에 되지 않은 현대 인류가 차지하는 지분은 얼마 되지 않는다. 하지만 현대 인류는 지구상에 존재했던 그 어떤 생물보다도 적응성이 뛰어나며 생태계에서 지배적인 위치에 올랐다. 인류의 위상은 최근 인류세(Anthropocene) 논의에서도 드러난다. 인간은 5번째 대멸종인 6천 5백만 년 전 공룡의 멸종에 이어서 6번째 대멸종을 일으킬 수도 있는 존재가 됐다. 인류가 이처럼 지배적인 위치에 오르게 된 것은 앞서 언급한 사회적 학습 능력을 극대화해 문화적인 동물이 됐기 때문이다. 인류의 미래, 아니 지구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그것은 아마도 문화의 진화를 주무를 수 있는 인간 사회의 합의에 달려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