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심 속에 죽어가는 역사로 남다’를 읽고
‘무관심 속에 죽어가는 역사로 남다’를 읽고
  • 박경수 / 무은재 19
  • 승인 2019.09.05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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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생이 가져야 할 필수적인 능력에는 무엇이 있을까? 많은 이들이 뛰어난 계산 능력, 실험을 구상하는 창의력, 결과를 해석하는 통찰력 등을 꼽을 것이다. 이 능력들은 기술을 창조하고 지식을 발견하는 데 중요한 능력들이지만, 공학의 궁극적인 목표는 실생활의 문제 해결이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작품 의미를 남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해야 기술과 지식을 활용할 수 있는데, 뜻밖에도 이 과정에서 역사 인식과 지식이 많은 도움을 준다. 

기사에서 언급됐듯이 현재 청소년, 대학생들의 역사 인식과 기본적인 지식이 매우 부족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역사를 ‘당연히 알아야 하는 것’이라 표현하고 강요한다면 오히려 배우는 데 부담감이 느껴질 것이다. 특히 우리와 같은 공대생들에게는 더더욱 거부감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 ‘수사학(The Art of Rhetoric)’ 에서는 설득의 3요소로 로고스, 파토스, 에토스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본 글에서는 이 3요소를 활용해 공대생, 더 나아가 누군가를 설득하고자 하는 사람이 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3요소 중 첫 번째인 로고스(Logos)는 논리적 적합성을 뜻한다. 즉 주장이 합리성과 명확한 근거를 갖춰야 한다. 대표적인 예시로는 역사적 사실들을 근거로 한 귀납 논증이 있다. 물론 귀납 논증을 완벽히 신뢰할 수는 없지만, 근거 없이 의견을 제시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효과적이다. 또한, 조금 더 깊게 공부를 하면 과거에 실험적으로 발견된 사실들 혹은 옛 기술들에 대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는데, 이를 토대로 새로운 이론을 확립하거나 발전시킬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두 번째 요소인 파토스(Pathos)는 감성적 호소력을 의미한다. 논리와 데이터만 가지고는 설득에 한계가 있다. 구체적으로, 데이터 해석과 연구 과정이 인류의 보편타당한 가치와 부합해야만 청자, 혹은 독자가 마음속에서부터 인정할 수 있다. 그 가치는 바로 역사 인식에서 비롯된다. 잘못된 역사 인식과 과학기술의 만남은 비극을 초래한다. 예를 들어 일제의 마루타 실험, 혹은 동물을 수없이 죽이며 개발한 신약의 실험 과정이 아무리 논리적이고 결론이 어딘가에 유용하다 해도 생명권을 최우선으로 두는 보편적 가치에 어긋나면 절대 수용할 수 없는 것이다. 

마지막 요소는 에토스(Ethos)이다. 에토스는 화자의 품성, 인간적 신뢰감을 의미한다. 아무리 공학도라고 해도 파란만장한 과거사를 겪은 우리나라에 대해 무지하거나 반인류적 사관을 갖고 있다면 그 사람이 최고의 연구 능력을 갖췄어도 인간적인 신뢰도는 떨어질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화자를 신뢰해야만 설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반대로 생각해서 누군가를 신뢰한다면 비록 그가 논리가 부족하고, 감성적으로 와닿지 않더라도, 그 사람에게 설득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만약 공대생이 마침 한일관계가 악화한 현재, 역사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갖고 올바른 인식을 추구한다면 지적인 이미지 형성과 동시에 한국인으로서의 신뢰를 얻어 타인을 설득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수월해질 것이다. 우리는 설득의 3요소의 중요성이 에토스, 파토스, 로고스 순임을 기억해야 한다. 이 글을 읽는 모두가 주위 사람들에게 ‘에토스’가 넘치는 사람으로 비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