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지는 곳에서 살다 죽은 외국인들의 행적’이 나랑 무슨 상관일까
‘해 지는 곳에서 살다 죽은 외국인들의 행적’이 나랑 무슨 상관일까
  • 원태준 / 인문 대우조교수
  • 승인 2019.05.17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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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 생활을 마치고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필자에게 강의를 배정해주신 모 대학교 사학과 교수님들과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다. 초임 강사인 필자 앞에 앉아 근엄하게 식사 하시는 노교수님들의 얼굴에는 잔뜩 인상이 찌푸려져 있어 학과 차원에서 무슨 큰 고민이 있는 듯했다. 학과장님께 어렵게 그 연유를 여쭤봤더니, 사학과가 제공하는 교양과목들의 수강생 숫자가 너무 적으니 수를 늘릴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라는 학교 본부의 압박이 심하다는 토로를 하셨다. 수강생이 부족한 교양과목을 어떻게 하면 최고 인기 과목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을지를 논의하기 위해 학과 차원에서 회의를 수없이 진행했으나, 수십 년간 전공 분야라는 한 우물을 깊게 파 온 원로 교수들이 학생 유치를 위해 교수법을 급진적으로 바꾸거나 과목의 커리큘럼을 대대적으로 개편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었다. 결국 인기 없는 교양과목의 이름을 자극적이고 눈에 띄게, 즉 ‘섹시’하게 바꿔 학생들이 이에 ‘혹해서’ 들어오게 하는 방법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다는 말씀과 함께 학과장님은 깊은 한숨을 내쉬셨다. 저녁을 먹고 나온 후 어두워진 하늘의 별들을 향해 담배 연기를 내뿜으시면서 ‘서양사의 이해’라는 과목명을 대체할 수 있는 기발한 타이틀 개발에 골몰하시는 백발의 노교수님들을 보며 착잡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2년 전 우리대학 서양사 담당 교수로 부임한 필자도 지금 인문사회학부에서 ‘유럽근현대사의 이해’, ‘미국사’ 등 다소 심심한(?) 제목의 수업을 가르치고 있지만, 담당 교수로서는 다행스럽게도 역사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이 예상외로 높아 과목명을  바꿔가면서까지 수강생들을 유인해야 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하긴 과목명을 변경한다고 학생 수가 변할 것이라는 발상 자체가 이상한 것이다. 서양사 관련 과목명을 아무리 창조적이고 매혹적으로 바꾼다고 한들 결국 ‘해 지는 곳에서 살다 죽은 외국인들의 행적’을 배우는 수업이라는 것을 학생들이 모를 리 없다. ‘미국사’ 과목명을 ‘아메리카인들의 소사이어티와 컬쳐의 이볼루션에 관한 익스플로레이션’으로 바꾼다고 해서 여태 관심 없던 학생들이 갑자기 미친 듯이 수강신청 버튼을 클릭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정말로 더 많은 학생들에게 서양사를 가르치길 원한다면 과목명을 바꿔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에게 ‘해지는 곳에서 살다 죽은 외국인들의 행적’을 배워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인지를 설득력 있게 설명해야 한다.
우리의 조상들이 걸어온 길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우리의 뿌리를 알게 됨으로써 우리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고, 우리 선조들의 판단미스와 시행착오를 제대로 인식해야만 그동안 우리 민족이 겪었던 수난과 고통을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인에게 한국사 공부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반발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반면, 천리만리 서쪽에 떨어져 살던 사람들의 역사는 우리와 상관 없으므로 공부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 때문에 현재 대한민국에서의 서양사 교육은 한국사 교육보다 열등한 대접을 받고 있다. 이로 인해 수능 필수 과목으로 자리 잡은 한국사와는 달리 전체 수험생 중 3% 이하가 세계사를 선택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위정자들의 근시안적 시각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우리 민족이 처참하고 비극적인 수모를 겪은 그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가? 동양보다 물질적으로 우세했던 서양 세력이 일본을 강제 개항시켜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게 했고, 일본이 이를 기반으로 성장한 후에 서양 세력으로부터 받았던 치욕을 조선에 그대로 강압한 것이 우리 민족의 참혹한 식민지 역사의 시작이다. 일본으로부터 독립한 후에 왜 한반도의 허리는 두 동강이 나고 우리 민족은 지금까지 둘로 찢겨서 살고 있는가? 일본의 패전 후 서양 세력들이 한반도에서의 영향력 공고화를 위해 남북으로 밀고 들어와 자신들의 영역권을 수립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가슴 아픈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한국사는 배워야 한다고 목청 높여 주장하면서 그런 비참한 과거를 겪게 만든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한 서양 문화권의 역사를 배우는 일을 도외시하는 이 모순적인 현실은 결국 우리 역사에 대한 깊이 있고 의미 있는 성찰과 반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밖에 더 되는가.
한국과 서양 사회 간의 불행했던 역사적 관계를 뛰어넘어 지금의 한국은 서양 사회와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서양사 교육의 절실함은 더욱 자명하다. 2018년 말 현재 한국인 유학생 중 40% 이상이 미국이나 유럽 등 서양 국가에서 학업을 수행하고 있다. 유럽 국가 28개를 아우르는 유럽연합(EU)은 인구가 5억 명이 넘는 세계 최대 단일 시장으로서 우리에게는 미국에 이어 세 번째로 큰 무역 상대다. 지난 달 말에 개봉한 미국 영화인 ‘어벤저스: 엔드게임’이 국내 박스오피스 사상 가장 빠른 1,000만 영화가 되는 등 서양 문화권의 ‘소프트 파워(Soft Power)’는 아직까지 한국인들의 삶에 있어서 절대적인 파급력을 행사한다. 한국의 미래 성장을 위해, 서양 국가들과의 활발한 다방면적인 교류가 우리로서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서양 사회의 정치, 경제, 문화적 발전상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 ‘서양인들은 과연 누구인가’를 더욱 심층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학문인 서양사의 교육은 한국인들에게 있어 옵션이 아닌 필수 코스가 돼야 한다. 언제까지 ‘한국만 알면 된다’라는 ‘우물 안 개구리’ 패러다임에 사로잡혀 더 넓고 큰 세상을 보기를 거부해 결국 국가를 잃어야만 했던 우리 조상들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차세대 리더들인 우리대학 학생들이 한국인으로서의 진정한 정체성을 확립하고 이를 토대로 전 세계의 경쟁자들과 상대하는 힘겨운 전쟁을 치루는 데에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주고자 필자는 오늘도 ‘해지는 곳에서 살다 죽은 외국인들의 행적’을 가르치기 위해 강의실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