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 안전 관리 실태] 소비자 신뢰하는 과학적 식품관리정책 시급
[식품 안전 관리 실태] 소비자 신뢰하는 과학적 식품관리정책 시급
  • 권훈정 / 서울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
  • 승인 1970.01.0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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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 위해도는 줄이고 이득은 최대화하는 방향 찾아가야
신문 사회면에 단골로 등장하는 주제 중 한 가지가 식품이다. 물론 정치나 경제 기사보다는 빈도가 덜 하지만, 국민 관심도로 보면 어떤 주제보다 앞서고 있지 않나 싶다.

식품에 관한 이야기는 대부분이 소비자들에게 공포를 심어주는 이야기거나 무얼 먹으면 무병장수할 것 같은 환상적인 이야기들 일색이다. 언론 보도는 양극을 달리고 있지만 일단 오늘은 한쪽 끝에 집중하기로 하자. 식품에서 검출되는 농약, 중금속, 다이옥신, 기생충 등등 보도를 접하고 있자면 우리는 무얼 먹을지 정말 혼란에 빠진다. 갈수록 먹고 살기 어려운 세상으로 변하는 것 같고 텃밭에 일구어 먹던 100년 전이 그리워진다. 실제로 이런 소비자의 정서를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제품도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실제 100년 전과 지금을 한번 비교해 보자. 과연 우리가 먹고 있는 음식이 점점 더 나빠지고 있을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절대 아니다.

< ‘100% 안전한 식품’현실적으로 불가능 >
우리가 먹는 음식은 끊임없이 향상되고 있다 (개인의 기호에 의해 한 가지 음식만 선호해 질병을 일으키는 경우는 오늘의 주제는 아니다). 100년 전에는 농약도 없었고, 첨가물도 없었다? 물론, 없었다. 그 대신 곰팡이가 자라고 상해서 못 먹는 음식이 많았고 이들 미생물이 생성하는 독소 때문에 식중독과 암을 비롯한 다른 질환 발생률이 높았다. 오염물질은? 그 오염물질을 내뿜는 트럭 덕분에 언제 어디서나 신선한 회를 먹을 수 있게 되었다는 장점도 있다. 우리가 그렇게 미워하는 농약, 첨가물, 오염물질 덕분에 우리는 필요한 영양소를 충분히, 고르게 공급받고 있다. 물론 가장 이상적인 상황은 위해도는 전혀 없이 식품을 풍부히 공급하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식품 뿐 아니라 어느 분야에서건 위해도를 영(zero)으로 줄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동차 사고가 우려되어 걷는 것을 택한다면, 미끄러 넘어져 뇌진탕을 일으킬 가능성을 감수해야 한다.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은 현 상황에서 위해도는 최소로 하고 이득은 최대로 하는 교점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러한 교점을 찾아내는 일이 식품정책 관리기관이 할 일이다.

우리 소비자들도 100% 안전이라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아마 이성적으로는 모든 소비자가 이미 받아들이고 있을 지도 모른다. 다만 뉴스를 듣는 순간 이성보다는 감정과 불안이 앞서기 때문에 흥분하여 반응하게 되고 사회 전반적인 문제로 커지게 되는 것이리라. 관리기관에서는 이러한 소비자의 행동을 이해하고 이들이 불안해하지 않을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는 무조건 모든 기준을 강화하자는 것은 아니다. 과학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소비자가 신뢰할 수 있는 정책을 수립해 소비자에게 알리고 이해시켜야 한다.

식품관리기관의 최우선관제는 우리 소비자의 식탁에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인지 우려되는 요인을 찾고 목록화해서 순위를 매기는 일이다. 끊임없이 식품의 안전성이 이슈화되고 온 국민이 불안에 떨다 다음 순간이면 잊혀지는 해프닝이 반복되는 것은 위해요인의 크고 작음에 따른 차별이 없이, 어떤 위해요인이건 똑 같이 취급되는 데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미생물 오염이 문제인지, 중금속이 문제인지, 농약이 문제인지, 균형 잡히지 못한 영양 공급이 문제인지, 과대광고에 의한 유사 의약품 형태의 식품이 문제인지 식생활 전반에 대해 체계적으로 분석하여 문제요인의 분류에 따라 순위를 정한 다음, 다시 각 분류 내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요소에 대해 순위를 매겨나가야 한다. 국민 건강에 가장 우려가 되는 요인에 대해 순서에 따라 집중적으로 인력, 시간, 돈을 투자한다면 같은 자원으로 가장 큰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요즘 언론에 보도되는 식품문제는 너무나 단편적이다. 어제는 중금속, 오늘은 기생충, 내일은 무슨 이야기가 나올까? 이런 문제들이 현 식품관리기관의 무능 때문일까? 아니면 식품관리체계의 허점 때문일까? 아니면, 정말 우리가 먹고 있는 음식들이 너무 한심해서일까?

이런 보도자료들이 나올 수 있는 배경을 다른 면에서 바라다 보면, 오히려 안심이 된다. 우리는 기생충 박멸국가였다. 국제적으로 기생충알에 대한 검사 기준도 없다. 들여다보지 않았으면 터지지 않을 문제들이 관리기관 덕분에 알려진 것을 우리는 고마워해야 할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문제들이 발표되고 있는데 대해서, 이것이 소비자 단체에서 검사한 자료이건, 관리기관에서 제공한 자료이건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누군가가 끊임없이 들여다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지는 않을까? 물론 사전관리가 좀 더 체계적이었다면 시장에 유통되는 식품에 대해서는 검사가 필요 없었을 수도 있다.

< 우선관리대상 순위 확립 필요 >
위에 언급한대로 우선관리대상 순위가 있다면, 순위에 따라 우리 현실에 맞게 달성하고자 하는 위해 수준을 정할 수 있다. 이 수준에 따라 최우선 목록에 있는 요소에 대해서는 사전감시체계를 모든 식품에 대해 항시 운영하며, 차상위 목록에 대해서는 주요 다소비 식품에 대해 감시체계를 적용한다거나, 무작위 추출 적용을 하는 등 목록순위의 아래로 내려갈수록 대상의 범위를 줄여나갈 수 있다. 사전 감시는 반드시 정부기관에 의해 행해질 필요는 없다. 가장 바람직한 체계는 생산자의 자율 검사체계이다. 관리기관에서는 기준 목록과 방법을 제시하고, 검사체계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가에 대해서만 감독하면 될 것이다. 생산현장마다 자율감시가 어려울 경우 생산자 조합 등이 주체가 되어 출하 문턱에 검사기관을 설립하는 방법도 있겠다. 중요한 것은 생산자들이 어떤 기준에 대해 검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관리기관에서 제시해야 하며, 이것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 지 감독하는 일이다. 이렇게 국민 건강을 위한 최소한의 기준에 대해 합격한 식품은 그 기준에 적합한 가를 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에는 60년대부터 공산품에 KS마크라는 것이 있었다. 이는 내가 기억하기에는 최소한의 기준을 지켜주는 제품에 부여했던 표식이었던 것 같다. 요즘 KS마크는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진 걸 보면 이 기준은 이미 모든 제품이 충족하고 있지 않나 싶다. 식품에도 비슷한 개념이 적용될 수 있지 않을까? 소비자는 정해진 기준을 충실히 지켜주는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있고, 그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서는 정보가 필요하다. 믿을 수 없는 과대광고가 아닌 알기 쉬운 형태로 제공되는 확실한 정보가 소비자에게 제공되어야 한다.

< 식품에도 KS마크 같은 기준 적용을 >
그 이상의 제품을 원하는 소비자는 원하는 제품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하지만, 여기서부터는 시장원리에 남겨두어야 한다. 그 이상의 위해도를 줄이는 데는 비용이 따를 뿐 아니라, 위해도가 낮아질수록 안전을 확보하는 데 들어가는 단위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이 비용을 얼마나 감수할 수 있는가는 소비자의 선택이다. 생산자와 관리기관에서는 소비자가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선택할 수 있도록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임무이다.

식품의 일관성 있는 안전관리를 위해서는 위에 제시한 내용 뿐 아니라 여러 가지 정책이 제안될 수 있고, 어떠한 정책이라도 소신을 가지고 수행된다면 안전한 식탁은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소비자를 공포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사실을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과정이 더욱 중요하다. 현재 우리가 얼마나 안전한 식생활을 영유하고 있고, 더욱 안전한 식탁을 제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는지, 우리가 수행하고 있는 감시체계에는 어떤 것이 있고, 기준에 벗어나는 식품이 있을 경우에는 소비자에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고, 여기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는지 소비자가 이해할 수 있는 일상용어로 전달되어야 한다.

나는 식품영양학을 자연과학적 접근법으로 배웠고 박사학위 중 공부한 독성학도 역시 속속들이 자연과학이었다. 나는 응용과학을 공부하고 있는 과학도라 생각했고, 내 사고의 체계는 그 안에서 정립되어 있었다. 지금 내 글을 읽고 있을 포항공대 구성원은 아마도 나와 비슷한 교육과정을 거치고, 비슷한 생각의 틀을 갖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요즘 언론에 오르내리는 식품관련기사는 과학도의 한계를 느끼게 한다. 식품의 위해요소를 관리하는 과학자들과 이를 이용하는 정책수립자, 이를 받아들여야하는 소비자 간의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기만 했어도 현재와 같은 불신과 공포는 10% 이내로 줄어들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