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을 위한 찬가
5월을 위한 찬가
  • 김상수 객원
  • 승인 2019.04.24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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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실패의 달인가 싶다. 신년 해맞이로 빚어낸 수많은 계획이 벚꽃처럼 흩날리며 사라지다가, 어느덧 앙상한 현실만 남을 시점이 바로 5월이기 때문이다. 우리대학 학생들이라고 다를 수 없다. 공부 계획, 원만한 교우 관계, 높은 결심들, 누군가는 행복한 연애마저도 높은 확률로, 5월이면 슬슬 환상의 껍데기가 벗겨진다. 분명 새 학기가 시작된 지 어느덧 두 달이 지났건만, 뿌듯했던 한 해의 청사진에 비해 거의 아무것도 없는 실제 모습은 스스로 한심함을 느끼게 하껴진다. 사라진 3월을 고민하려다가 간당간당하게 남은 4월을 바라보면 한숨이 나온다. 심지어 다른 이들은 계획을 착착 실행해 나가는 데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인다. 나는 왜 하지 못했나. 내 하루는 어디 갔을까. 
씁쓸하게도 인구 50만의 소도시 포항은 위로의 도시와는 거리가 멀다. 의식주 중 무엇 하나 쉽게 기분전환으로 삼을 것이 없다. 브랜드 옷가게 한 번 가려면 택시비만 만 원 넘게 나오고, 꿉꿉해지는 날씨에 뭐 하나 기르기도 좁은 기숙사에는 내 체취만 강하게 묻어나오며, 간신히 찾은 맛집은 차 없이 가려면 버스로만 한 시간이다. 기껏해야 할 취미라고는 게임뿐이지만, 게임에서 승리해도 컴퓨터 전원과 함께 짜릿함이 빠져나간 자리에는 다시 묘한 공허감만 느껴진다. 게다가 혼자서 있을 때면 무기력이 점점 심해지는 감기처럼 독해진다. 못다 이룬 계획은 부메랑처럼 돌아와 다음 계획으로 나아갈 용기까지 갉아 먹는다.
한때는 내가 느끼는 이 5월의 감정이 나만의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허무함과 패배감이 심해지는 일이 결코 일부만의 일이 아니다. 2014년 ‘자살의 계절성과 경기반응’이라는 논문에 따르면 사람들의 자살률은 5월에 가장 높아진다. 우울증이 가장 심해지는 달 역시 5월이다. 가정의 달이라며 다양한 기념일이 있는 5월이지만, 그렇기에 역으로 가장 많이 소외감을 느끼는 달도 5월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최소한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5월이 되며 스스로 우울함을 느낀다면 이를 이상한 일로, 잘못된 생각으로 치부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아직 완료되지 못한 계획을 돌아보며, 조바심이 나거나 무기력해지는 것은 5월의 사회적인 현상에 가까우니 특별하게 잘못했다고 자책하며 다시 무기력을 불러올 필요는 없다. 
포항에서 7번째 5월을 겪으며, 또 하나 분명히 깨달은 사실이 있다. 5월은 그저 오롯이 실패의 달이기에는 너무 아름답다. 학교 내 가벼운 산책에도 라일락이 몽환적인 보랏빛을 뽐낸다. 학교에서 걸어서도 20분이면 갈 수 있는 형산강변 장미정원은 갖은 빛깔의 장미들이 종별로 흐드러진다. 5월의 끝에 아카시아가 지천에 향기를 뿌리면, 기숙사 창문만 열어도 그 향기는 방 전체에 스며든다. 이미 계획에 실패했다고 생각하더라도, 자세히 보면 생각지도 못했던 꽃들이 이미 피어 있을지도 모른다. 큰 위로가 되지 않음을 알지만, 멀리서나마 진심으로 응원을 전하고 싶다. 벚꽃이 한 해 마지막 꽃이 아니듯, 아직 1년은 꽤 넉넉히 남아 있다. 그래, 5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