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낭만, 다시 생각하자
대학의 낭만, 다시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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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4.24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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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에는 지난 시대 우리 사회에 풍미했던 낭만적인 대학생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든 것 같다. 대학은 취업을 준비하는 학원으로 전락해 취업이나 자격증을 따는 데 도움 되는 과목에는 학생들이 몰리고 있고, 인문 교양을 함양하기 위한 과목은 수강생을 채우기도 힘든 형편이다. 많은 학생은 자신들의 이상적인 꿈을 실현한다기보다는 단지 학점 따기가 쉽다는 이유만으로 특정 과목에 몰리고 있다. 
 해방 이후 대학생들의 사회적 참여를 대변했던 학생회가 근래에는 구성조차 하기 힘든 경우도 있다. 대학 지성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대학기관인 학보사에도 지원자가 줄어들고 있고, 동아리 활동에 시간을 많이 필요로 하는 몇몇 전통적인 동아리에서는 신입생을 모집하기도 힘들다고 한다.
지금 대학가에는 낭만주의 시대에 등장했던 낭만적인 모습이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 대학의 낭만이란 대학 축제에서 흥청망청하게 즐기고 영화 ‘러브 스토리’에서 나오는 것과 같은 멋진 사랑을 해보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낭만주의에서 말하는 ‘낭만’은 그 이상의 원대한 시대적 사명과 포부를 지니고 있었다. 예를 들어 독일 낭만주의 기수였던 노발리스(Novalis), 즉 게오르크 폰 하르덴베르크는 철학, 과학, 문학이 하나의 전체를 형성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새로운 마술적 관념주의를 추구했다. 그의 필명 노발리스는 라틴어로 ‘새로운 땅을 개척하는 자’라는 뜻이었다.
“세계는 낭만화돼야 한다. 낭만화란 즉 질적 자승(Higher Power)을 의미한다. 이 연산에서 낮은 자아는 더 나은 자아와 동일해진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그러한 질적 멱급수(Exponential Series)다. 이 연산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내가 흔한 것에 높은 의미를, 알려진 것에 미지의 존엄을, 유한한 것에 무한하다는 가상을 부여한다면, 대상을 낭만화하는 것이다. 높은 것, 미지의 것, 신비적인 것, 무한한 것에 대해서는 그 반대의 연산이 성립한다. 같은 연결을 통해 이들은 대수적(Logarithmic)으로 변화되며 평이한 외양을 얻는다.” 노발리스는 ‘최고의 삶은 수학이다’라고 말할 만큼 과학과 문학, 철학을 통일하려고 노력했다. 
물론 역사적으로 대학은 사회적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보수적인 기관이었다. 예를 들어 중세 대학의 전공학과들도 법학, 신학, 의학 등 당시의 돈과 권력과 밀접하게 연결된 분야에만 집중됐다. 보수적이고 퇴영적인 대학의 구조는 새로운 학문 변화에 둔감하기 쉽다. 갈릴레오, 케플러, 보일, 뉴턴 등 근대과학을 형성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과학자들은 대학에서 자신의 새로운 사상을 발전시킨 것이 아니었다. 대학은 퇴영적인 철학자들에 의해 지배돼 새로운 사상과 근대 과학에 대해 적대적이었다.
중세의 대학이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한 것은 독일에서 훔볼트 식의 대학이 등장하면서 시작됐다. 1,800년 전후의 독일 지식인 집단은 정치적, 경제적 관심이 강했던 프랑스와 영국의 지식인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성격, 즉 낭만적인 특성을 간직하고 있었다. 당시 독일의 대학 교육 개혁을 주도했던 신인문주의자 빌헬름 폰 훔볼트는 “대학의 의무는 구태의연한 지식의 주입, 전수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새로운 진리를 추구하고 헌신하는 것”이라는 교육 개혁 이념을 추구했다. 이리하여 자유로운 학문의 연구, 순수하게 진리를 탐구하는 반실용주의의 정신은 이후 독일 대학의 기본 골격을 이루게 됐다. 독일에서 형성된 훔볼트 식 대학은 점차 세계의 여러 연구 중심 대학의 기본 이념으로 자리를 잡았다.
물론 훔볼트 식 대학에서는 실용적인 공과대학이 배제돼 있었다. 공과대학의 원조 격인 프랑스의 에콜 폴리테느니크에서는 철저하고 엄격한 전공 교육, 애국심에 바탕을 둔 국가 의식이 기본적인 가치관이었다. 세월이 지나고 에콜 폴리테크니크와 같은 실용주의적인 대학이 세계적으로 주류가 되면서 훔볼트 식 대학은 발상지인 독일에서조차 점차로 쇠퇴해갔다.
대학에서 사회경제적 가치가 중요하게 부상되고 있는 요즈음에 대학에서 다시 낭만을 생각한다는 것은 약간 시대착오적인 측면도 있어 보인다. 하지만 노발리스의 외침처럼 대학도 어느 정도는 낭만화돼야 새로운 가치관을 열정적으로 추구할 수 있다. 어렵고 불가능해 보이지만 새로운 땅을 개척하려는 자, 즉 노발리스 정신은 오늘날에도 절실히 요구된다. 우리대학에서도 이런 노발리스 정신을 되살려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연구 풍토를 조성하고 새로운 벤처 창업의 기치를 높여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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