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협받는 의료진 안전, 응급의료법 개정
위협받는 의료진 안전, 응급의료법 개정
  • 김주희 기자
  • 승인 2019.03.29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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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 의료진을 향한 폭언과 폭행(출처: 연합뉴스)
▲응급실 의료진을 향한 폭언과 폭행(출처: 연합뉴스)

최근 병원에서 환자가 의료진에게 폭언과 폭행을 하며 난동을 부리는 사건이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7월 1일에는 전북 익산의 한 응급실에서 의사가 자신의 말을 듣고 비웃었다는 이유로 40대 남성이 응급실 의사를 무차별 폭행한 사건이 있었다. 가해자는 술에 취한 상태로 범행을 저질렀고, 피해 의사는 △코뼈 골절 △뇌진탕 △치아 골절 등 전치 3주의 중상을 입었다. 가해자는 “감옥에 갔다 와서 죽여버리겠다”라고 협박까지 하는 등 죄질이 나빠 결국 구속됐다. 지난 1월 24일에는 서울의 한 공공병원에서 진료를 받던 50대 남성이 흉기를 휘둘러 임신 중인 여성 의사를 다치게 한 사건도 있었다. 이처럼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직장에서 근무해야 하는 의료진들은 출근 자체도 두려워하며 심리적 불안을 겪고 있다. 의료진에 대한 폭행 사건이 잇따르는데도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최근 국회에서는 응급의료종사자 상대 폭행의 처벌을 강화하는 개정안이 통과됐다.

응급실에서의 폭력 행위 실태
생명이 위급한 환자를 치료하는 응급실에서 환자나 보호자가 의료진을 위협하거나 폭행한다면 큰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응급실의 의료진은 한 명의 환자만 진료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환자를 진료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1분 1초가 급한 위급 환자의 생명에 위협이 될 수 있기에 응급실에서의 폭력은 금지돼야만 한다. 하지만 최근 발생한 응급의료 방해 현황을 보면 폭력에 대한 처벌이 잘 이뤄지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지난해 7월 대한응급의학회에서 진행한 설문 조사 결과, 응급실 전문의 2명 중 1명은 폭행을 당한 적이 있고 3명 중 1명은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고 답했다. 지난해 상반기 응급의료 방해 현황을 보면, 의료기관 기물 파손과 의료인 폭행·협박으로 신고·고소된 사고는 전국 47개 병원에서 582건이었다. 모든 사건이 접수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루에 3건 이상 응급 의료 방해 행위가 발생한 셈이다. 582건 중 △폭행(202건)이 가장 많았고 △위협(77건) △위계·위력(72건) △난동(48건) △기물파손·점거(23건) △폭언·욕설(17건) △성추행(1건) 순으로 조사됐다. 이 가운데 398건(68.4%)은 사건 가해자가 술에 취한 상태였다. 또한, 지난 2017년에 발생한 응급의료 방해 사건 893건 가운데 징역이나 벌금 등의 처벌을 받은 경우는 93건에 그쳐 처벌 수준 강화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개정 사항
개정 전에는 응급실 의료인에게 폭력 등을 행사한 경우, 제60조 제1항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게 돼 있었다. 하지만 가해자 대부분이 벌금형 등 약한 처벌만 받고 풀려나 실질적으로 위 규정은 큰 효과가 없었다.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폭력 사건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 지난해 9월 4일, 민갑룡 경찰청장은 보건복지부와 보건의료 단체들과 응급실 의료진 폭행 사건 대책 논의를 위한 간담회를 했다. 민 청장은 “국민의 생명과 신체를 다루는 응급실에서 응급의료 종사자를 대상으로 한 폭행에 대해 적극적 현장 조치뿐만 아니라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대응하겠다”라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27일, 국회는 응급실 의료종사자에 대한 폭행 처벌을 강화하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이하 응급의료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본회의 의결했다. 올해 1월 15일부터 시행된 개정안은 다음과 같이 개정됐다.

1. 제60조 제1항(신설): 응급의료 종사자 상대 폭행·상해 정도에 따라 처벌기준 강화
- 상해: 10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상 1억 원 이하 벌금
- 중상해: 3년 이상 유기징역
- 사망: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
2. 제64조(신설): 음주로 인한 심신장애 시 형법 제10조 제1항(심신장애자 불벌) 규정 미적용
3. 범죄행위 장소: 의료법 제3조에 따른 의료기관의 응급실
4. 응급의료 종사자: 의료인(의사, 간호사, 조산사)과 응급구조사
※임상병리사, 방사선사, 물리치료사 등(의료기사 등에 관한 법률 제2조), 간호조무사 포함
5. 응급의료 종사자에 대한 폭행·협박으로 진료 방해한 경우
- 동법 제60조 제2항으로 변경 적용(5년 이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 벌금)

응급실 아닌 일반 진료 현장에서도 안전 보장 필요
응급실 내 의료인 폭행 방지를 위한 응급의료법은 의결 및 시행됐으나, 응급실이 아닌 일반 진료실에서 일어난 폭행은 응급의료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이에 일반 의료 현장에서의 의료인 보호를 위한 ‘진료실 안전과 폭력근절을 위한 의료법 개정안’ 발의가 이어지고 있다. 이에 대한흉부심장혈관외과학회는 지난 1월 2일 성명서를 발표해 “의료와 관련돼 의료진에게 가해진 모든 폭행을 대상으로, 공간 제한 없이 법률이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도록 의료관련법이 반드시 개정돼야 한다”라고 제언했다. 한편,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등의 환자단체들은 발의된 의료법 개정안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암시민연대 최성철 대표는 “진료실 안전을 위해서는 폭행에 대한 처벌만 강화한다고 능사가 아니다. 환자와 의료인 간 불신을 가중시키는 처벌 강화 법안은 실질적 대책이 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의료진과 함께 환자의 안전과 보호를 배제해서는 안 되며, 환자 유형과 폭력 상황을 구분해 원인을 찾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의료진 폭력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법을 개정해 처벌 강도만 높일 것이 아니라, 의료기관의 노력과 환자의 인식 개선 등을 통해 더 나은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해 의료진과 환자 모두의 권리를 보장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더 나은 논의를 통해 응급실뿐 아니라 진료실, 입원실 등을 포함한 모든 공간에서 의료진과 환자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우리 사회가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