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주민과 과학기술인 네트워크 - ‘과학상점’
지역주민과 과학기술인 네트워크 - ‘과학상점’
  • 김주영 기자
  • 승인 2004.10.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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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인이 거주지의 환경문제 등 해결방안 제시
유럽서는 활동 매우 활발··· 지역민 입장서 문제 해결
의뢰자 정씨는 마을 공동 지하수를 사용하는데 물에 하얀 것이 가라 앉아서 과연 이 물을 사용해도 되는지 의문이 생겼다. 욕
실 바닥과 싱크대에도 하얀 것이 얼룩지고 철수세미로 문질러야 없앨 수 있었다. 정씨는 이 문제를 과학상점에 의뢰했고, 수질검사 결과 지하수는 음용 불가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시민들의 일상생활에서 많은 문제가 발생하는데 전문적 검증이나 연구가 필요한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공장이나 다리의 건설 등 위로부터의 정책 결정은 해당지역 주민들의 권익을 완전히 보장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로 인한 피해를 입는 지역이 적지 않다. 이들에게 지자체나 정부가 수행하는 형식적인 환경조사가 아닌, 지역주민을 위한 실질적인 환경조사와 해결방안의 제시는 큰 힘이 될 것이다. 과학상점은 시민들이 전문 연구소에 의뢰할 만한 경제적 여유가 없을 때, 지역 연구원들을 시민과 연결시켜 그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움을 주는 비영리기관이다.

과학상점은 과학 기술 활동이 경제나 산업분야에 초점이 맞추어져 일반 대중들과 유리되었다는 반성과 함께 과학 기술인들이 지역사회의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사회와 다가갈 수 있는 장을 마련하자는 취지로 발생하였다. 대중들이 일상에서 발생하는 과학·기술적인 문제나 의문에 대한 해법을 찾을 수 있도록 수단을 제공하는 한편, 과학자나 기술자가 사회적으로 관심이 되고 있는 화제에 대해 그들이 갖고 있는 지식, 훈련(training), 기능(skills)을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것은 과학기술자들에게 사회적 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해준다는 점에서도 큰 의의를 가진다.

70년대 학생 운동권의 영향으로 유럽에서는 일찍이 과학상점이 발달하였으며, 현재 우리나라에는 전북대학교 과학 상점과 대덕 연구단지의 시민참여연구센터가 있다.

연구실 밖에서의 과학

2003년 대전시 대화동 일대의 ‘대전 1, 2공단’에서 배출된 배기가스가 둔산 지역으로 확산되면서, 공단의 환경문제가 대두되었
다. 이 지역은 심한 두통과 악취, 지하수로는 세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토양오염에도 불구하고 1969년 공단이 조성된 뒤 한번도 환경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시민참여연구센터는 공단의 환경이 지역주민에게 악영향을 끼치고 있고, ‘시민들이 참여하는 프로젝트’의 시범으로서 가치가 있겠다는 판단 아래, 같은 해 9월부터 ‘1, 2공단 환경개선 문제’에 참여하였다. 센터는 환경문제 조사·연구 및 역학조사 부분 지원, 시민참여 모델 제시 등의 일을 맡았다.

이 사업을 담당하는 신명호씨(한국항공우주연구원 선임연구원)는 “지역사회에는 수도권과 같이 강력한 지자체가 없기 때문에 모든 것들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며 불평을 토로했다. 대화동과 둔산동 일대에서 1,2공단에서 발생한 유독가스로 주민들이 심한 두통과 메스꺼움을 호소하는 사태가 일주일여 지속되었는데, 이때 대전시가 취한 조치로는 단지 내에서 악취정도를 측정하고 공정개선을 촉구하는 한편, 취약시간대 순찰과 지도점검을 강화하는 것이 전부였다. 밤이 되면 굴뚝으로 매연을 내보내는 공장, 불법 소각을 하는 공장, 지속적으로 화재를 일으키는 공장 등 1,2 공단 내 문제가 많다.

신 씨는 “과학상점 운동에 참여하면서, 처음에는 정부가 하지 못하는 것을 대신하는 기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활동하면서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대부분의 과학이 연구실이나 대학을 중심으로 생성되어 왔기 때문에 사람들이 실
제로 원하는 과학기술과 괴리되는 면이 있었다”며 “과학상점은 시민들의 의견을 듣고, 함께 연구를 수행함으로서 이러한 공백
을 채워주는 역할을 하며, 이를 통해 지역주민들과의 연결 고리를 느낄 수 있어 기쁘다”고 했다.

시민참여연구센터

지난 7월, ‘지역사회의 자율성을 촉진한다’는 목표로 대덕연구단지에 시민참여연구센터(이하 ‘참터’)가 들어섰다. 참터는
‘지역에서 발생하는 사건에 대해서는 그 지역주민들이 다른 누구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와 ‘주민들이 연구활동에 동
참할 수 있게 하여 일반 대중들에게 과학마인드를 확산시켜 주자’는 생각을 바탕으로 의뢰자와 연구자를 연결시켜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취했다고 한다.

참터는 사무국을 제외하고 지원자에 의해 사업을 벌이는데, ‘많은 이들의 참여’를 통해 이를 해결하고자 한다. 많은 이들이 각
각 작은 일들을 맡아 각자의 여건에 맞게 활동을 진행하고 이 활동들을 모아 하나의 큰 과제 또는 사업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
다.

참터는 연구자들이 조사현장에 한달에 한번정도 출석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또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 “참터 활동의 문턱은 낮
다. 원하는 활동 형태에 따라 자료 검색, 주민 인터뷰와 같은 전문성이 크게 필요하지 않은 영역에서부터 홈페이지나 DB 관리와 같은 어느 정도의 사전 지식이 필요한 일들, 시료의 채취와 측정·분석 등 전문성이 필요한 일들과 같이 많은 종류의 일들을 수행할 수 있다”며 “혼자 수행하기 부담된다면 주변의 사람들과 함께 역할을 수행해도 좋고, 참터에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달라고 요청해도 좋다. 사실 현재로서는 측정·분석 등의 전문적 역할보다는 사람들을 만나 정보를 수집하고 자료를 검색·정리하여 제공하는 등의 손쉬운 수준의 자원봉사 활동이 많이 필요하다. 이것은 전문가로 성장해 갈 학생들이 사회 속에서 과학기술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가질 수 있고 부담 없이 참여하기에 적합한 활동들이다. 대전과 서울에서 학생들의 참여공간이 형성되는 시기에 포항에서도 뜻있는 학생들의 참여가 많이 확보되면 좋겠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