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되려 했던 인간, 인간이 되려 했던 피조물
신이 되려 했던 인간, 인간이 되려 했던 피조물
  • 정유진 기자
  • 승인 2019.01.05 01: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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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프랑켄슈타인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나폴레옹 전쟁 당시 죽지 않는 군인에 대해 연구하던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신체 접합술의 귀재 앙리 뒤프레를 만난다. 앙리는 빅터의 연구에 동참해 생명 창조 실험을 함께한다. 연구 끝에 빅터는 앙리의 희생을 통해 생명을 창조해내고, 그 피조물이 바로 ‘괴물’이다. 괴물은 세상에서 인간 취급은커녕 학대받으며 살아간다. 자신에게 끔찍한 외로움을 겪게 한 빅터에게 애증의 복수를 한다.

빅터는 과학은 생태계를 뛰어넘고, 생명은 과학기술로 창조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신념 아래, 그는 생명을 창조해낸다. 그러나 창조된 생명은 그가 생각했던 인간이 아닌 괴물이었고, 괴물은 그의 주변 사람들을 앗아갔다. 괴물은 앙리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재탄생된 순간 더는 앙리가 아니다. 생로병사를 거치며 비로소 인간의 정체성은 유지되고, 우리는 ‘인간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답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다. 인간은 생로병사의 길을 걷는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인공수정을 통해 아이를 만들고, 병을 제거하기 위해 치료법을 개발한다. 또한, 노화를 막기 위해 노력하고, 계속해서 더 오래 살고자 한다. 인생의 당연한 순서로 여겨지는 생로병사를 과학기술로 뛰어넘고자 하는 것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인간이 더는 신에 의해 만들어진 피조물이 아니라 신이 되고자 하는 것을 돕는다. 이에 대해 뮤지컬은 경고를 내리고 있다.

또한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고독한 삶을 살게 된 괴물을 통해 우리 사회 속 절대 고독을 되돌아보게 한다. 괴물은 흉물스러운 모습 때문에 인간에게 혐오 받고, 유일한 친구 까뜨린느에게도 버림받아 아무도 살지 않는 북극에 살고 싶다고 노래한다. 누군가가 자신을 따뜻하게 안아주고 친구가 돼 주는, 실현될 수 없는 꿈속에서 살고 싶다고 울부짖는다. 이런 괴물에게서 현재 따스한 온정을 느끼기를 소망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뮤지컬은 우리에게 단순히 이야기와 순간의 감정을 전달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어쩌면 우리는 누군가에게 빅터이거나, 괴물이거나, 까뜨린느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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