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부안을 가다
[르포] 부안을 가다
  • 황희성 기자
  • 승인 2004.09.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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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 1년···부안 민심의 향방은
멍들고 찢긴 부안 민심은 아물어 가는가

서울에서 자동차로 세시간 반 거리에 있는 전북의 작은 도시 부안. 부안행 막차를 타고 도착한 부안은 잠들기 직전의 모습이었다. 다섯달 전 사진만 봐도 거리마다, 가게마다 노란 반핵 깃발이 내걸리지 않은 곳이 없었는데, 의외로 거의 보이지 않았다. 간간히 보이는 노란 깃발과 ‘핵종규 퇴진’이라는 스티커가 이곳이 1년 전 분쟁의 장이었구나 하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지난 2월 14일, 주민투표에서 92%의 압도적인 반대표가 나오면서 일단락된 부안사태는 현재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7월 30일부로 주민투표법이 발령된 후 유치를 지지하는 측에서 “다시 주민투표를 해보자”고 하고 있으며, 특히 위도발전협의회의 경우 “위도주민들 만의 주민투표를 하자”며 유치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는 상황이다.

부안의 핵폐기장 유치 세력을 대표하는 부안국책사업추진연대(이하 국추련)에서는 이에 대해 “반핵세력 쪽에서 필승을 자신할 수 없을 것이다”며 부안의 민심이 변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국추련의 대변인은 “작년 휴가철은 관광객은 커녕 가게 문도 열지 못했습니다. 올해도 불경기 때문인지 상황이 어려워요”라고 하며 운을 뗐다. “이대로는 부안의 미래가 없습니다. 옛날에 포항이 도시라고 부르기도 어려운 곳일 때 부안은 지역의 중심도시였습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포항이 (인구가) 50만 넘어간지 꽤 지났죠? 지금 부안은 6만 조금 넘는 정도에요. 이대론 발전이 없습니다.”

국추련에서는 “핵폐기장과 그 부대시설은 포항의 포항제철 설립만큼 큰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사실 주민들도 처음엔 설치를 찬성했습니다. 그런데 환경단체가 내려와서 기형아 사진같은걸 보여주며 겁을 주니 다들 돌아선거죠.”

부안반핵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 측에서는 이에 대해 “부안의 발전은 부안 내부에 의한 것이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원전이 있는 울진이나 영광이 번화하고 또 경제적으로 풍족해 보이는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원전 건설할 때만 반짝이에요. 전혀 지속적인 발전으로 연결되지 못합니다.”

지지세력이 이반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국추련의 주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김종성 대책위 위원장은 “민심이 변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지치신 분들도 많을거고, 저희들도 지난 주민투표처럼 압도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매주 목요일 저녁에는 촛불집회가 열리며, 매번 2천여명의 사람들이 모이고 있습니다. 민심은 아직 흔들리지 않고 있어요”라고 했다.

김 위원장은 “모든 것은 김종규 군수의 갑작스런 유치 발표로 시작되었다”고 말했다. “바로 전날까지 시민들에게 ‘절대로 유치하지 않는다’고 하다가 다음날 아침에 ‘국가적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운운하면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주민들은 제각기 뒤통수에 돌을 얻어맞은 기분이었을 겁니다.”

공권력 투입의 계기가 되었던 ‘내소사 폭행사건’에 대해서도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군수가 일부러 주민들을 도발했던 것 같다”고 했다. 실제로 위도에서 가장 가까운 격포항에서 만난 주민들의 군수에 대한 목소리는 증오에 가까웠다. “그인간만 없었으면 문제가 여기까지는 안왔을거라. 생판 생각도 못했던 전경들이랑 싸우는 짓 하고 싶어서 했나? 그 X이 우리 뒤통수를 치고 일을 그렇게 키워버렸으니 이렇게 된거지.” 부안읍에서 탔던 택시기사에게 “(부안군수는 자기 군에서 밥도 못먹는다고 한)군산시장의 말이 사실이냐”라고 물었더니 “무슨 염치로 밥을 먹으러 들어오겠어”라는 대답이 돌아올 정도였다.
여론에 대한 불신 역시 강했다. “폭력시위, 폭력시위 하는데, 우리가 왜 폭력을 쓸 수 밖에 없었는지 (언론이) 다뤘냔 말이야. 제대로 된 정보를 전해주는 곳이 없어요. 하다못해 김종규가 무슨 짓을 했는지 제대로 다뤄준 신문이 있냐 말이야.” 부안 주민들의 이러한 분노는 ‘부안독립신문’의 창간으로 이어졌다. 주민들의 주주 참여로 ‘부안 주민이면 누구나 주인되는 신문’을 추구하고 있는 이 신문은 이달 22일 창간할 예정이다.

부안주민들의 공권력에 대한 불신도 아직까지 남아있었다. 머리가 희끗희끗해져 가는 중년의 주민은 이렇게 말했다. “누가 아들딸 뻘 되는 전경들이랑 드잡이질 하고 싶었겠습니까. 그런데 어떡해. 어떤 X들은 방패 갈아서 날카롭게 해서 우릴 찍고 다녔다고. 나 그래서 (밖에) 나갈 때는 하이바 쓰고 복대하고, 공사판 조끼에 주머니마다 수건 넣어 다녔어요. 그런데도 짱돌이 날아와서 머리를 퍽퍽 치더라구.”

국추련에서는 “일이 폭력적으로 번져버린 건 반핵단체들 탓도 있다”고 했다. “찬핵 의사를 표한 사람들 가게에 테러를 가하기도 했어요. 한마디로 나 찬핵이오 한마디만 하면 그 자리에서 매장당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무슨 인민재판도 아니고 말이에요.”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폭력적인 행위를 막을 수 없었던 것은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부안의 거의 모든 단체가 반핵의사를 표명했습니다. 조직적인 관리체계를 수립하는 건 불가능했고, 그런 행동을 막을 명분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만큼 주민들의 분노가 컸습니다. 누가 자기들을 방패로 찍어댄 전경들에게 밥해준 가게를 좋아하겠습니까.”


주민 의견 분열은위도가 더 심해

작년의 여름은 위도 주민들에게 있어서 최악의 여름이었다. “휴가철 되기 직전에 부안에서 그 난리가 나버렸지 뭐요. 덕분에 이쪽으로 놀러 오는 사람 한 명도 없었지 싶습니다.” 현재 위도의 경제상황은 아주 나쁘다. 영광과 매우 가까워 어장을 공유했었지만 영광이 원전 온배수로 인한 어장 피해로 보상받을 때 위도 주민들은 소외당했고,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인해 맑고 깨끗하던 바다에는 먼지가 가득해져 어획량이 감소했는데도 아직 보상 소식은 없다.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에서 노리고 덤벼든 것 처럼 가난한 동네에요. 배상금을 많이 준다고 이야기를 하면 먹혀들걸 알았던 거죠.” 핵폐기장 설치 예정지인 깊은금에서 민박집을 경영하는 서대석 씨는 이렇게 말했다. “빚을 청산하고 싶은 선주들, 자식 곁으로 가고는 싶은데 자식에게 물려줄 돈이 없어 갈 염치가 없는 노인들을 돈으로 꼬인 거나 마찬가집니다. 거의 다 그런 사람들이니 위도발전협의회에서 유치 지지 97%라는 말이 나올 정도죠.”

여러 TV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해 유치를 반대하는 입장에서 발언했던 서 씨는 현재는 위도에서 유치반대하는 사람들은 조용히 사태를 관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조그만 섬에서 피터지게 싸워봐야 뭐가 남습니까. 그리고 분위기가 이렇게 흘러가는 이상 정부에서도 위도에 설치하는 바보짓은 하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한수원에서 위도에 지질조사를 했던 곳은 깊은금 이라는 곳이다. 서 씨에 따르면 이곳은 위도를 한마리 고슴도치로 보았을 때 성기에 해당하는 부분이며, 대체로 습한 곳이라고 한다. “옛날에는 여기서 나오는 물로 논농사도 했어요. 그런데 한수원에서 처음에 와서 말하기는 지하수가 있는 곳에는 절대 설치하면 안된다고 했는데, 조사해보고 나더니 말이 싹 바뀌어서 기술적으로 극복할 수 있다 라고 하니, 이걸 믿어야 됩니까 말아야 됩니까.” 시추조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40m를 뚫어놓고 80m뚫었다고 보고하고, 전혀 다른 곳에 가서 뚫어서 그 결과를 깊은금에서 조사한거라고 그러니 우리가 믿을 수 있겠습니까.”

위도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서봉신 씨는 “한수원에서 옛날 군사정권 시절에나 쓰던 방법으로 일을 성공시키려 했다”며 “몇몇 주민들은 한수원의 지원금을 받고 홍보하러 다니기도 했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의사나 의견 결집 대신 물밑 로비와 돈으로 해결하려 했다는 것이다. “지금은 그나마 한수원에서는 돈이 끊긴 것 같은데, 또 원자력문화재단을 통해서 자금이 지원되는 것 같아요. 애당초 돈 아니면 움직일 생각이 없었던 사람들인데 뭐.” 공청회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없었어요. 원자력연구소에 초청받아서 다녀온 정도. 가서도 그냥 좋다, 안심해라, 문제 없다, 우리 기술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런 이야기만 듣다 왔죠”라고 했다. “이대로 가면 부안 주민들은 몰라도 위도 주민들 사이에는 큰 상처가 생길겁니다. 이 작은 섬 안에서 우리끼리 아웅다웅하면 결국 다치는 사람은 뻔하죠.”


부안, 위도, 그리고 제자리 찾기

국추련의 취재가 끝나갈 즈음,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왔다. 대책위가 많은 단체들로 조직된 만큼 1차 투쟁 목표를 상실한 현재 조직 내부에서 주도권 다툼이 심화되고 있다는 얘기였다. “외적 승리를 획득한 조직이 내부의 다툼으로 무너지는 것은 자주 있는 일 아닙니까.” 김 위원장은 이에 대해 “9월 15일까지 유치 신청 기한이 아직 많이 남아있는 단계에서 조직 내부에 불필요한 잡음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라고 해 소문을 부인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향후 방향 정립을 위해 8월 6일에 각 단체 대표들이 모여 협의를 가졌으며, 그 자리에서 공동 목표를 위해 힘을 모을 것을 결의하고 운동의 방향을 재정비했다”고 밝혔다.
현재 부안사태 해결의 목표는 새로운 대립요소의 제거에 있다. 과거 찬핵주민과 반핵주민 간의 대립도 대립이지만, 일단 마무리를 지은 반핵세력 내부의 갈등요소 제거가 그 첫번째 목표이고, 대립이 계속되고 있는 위도 현지의 찬반 논쟁의 종식이 그 두번째 목표이다. 전혀 다른 방향에서 사건의 해결을 원하는 국추련과 대책위가 모두 동의하고 있는 것은 ‘사태가 빠른 결말을 맞아 주민들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이다. 뒤엉킨 실타래 같던 문제가 차츰 차츰 해결되어가는 현재, 부안의 선택은 어떤것이 될 것인가. 지난해 여름부터 불거진 부안 핵폐기장 문제가 1년여 만에 종국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부안은 아직도 뜨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