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와 운전은 분리돼야 한다, 윤창호 법
음주와 운전은 분리돼야 한다, 윤창호 법
  • 박민해 기자
  • 승인 2018.12.12 14: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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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1일 국회 정론관에서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과 윤 씨의 친구들이 윤창호 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을 했다.(출처: 경향신문)
지난 10월 21일 국회 정론관에서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과 윤 씨의 친구들이 윤창호 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을 했다.(출처: 경향신문)

 

지난 9월 25일 부산 해운대구에서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뇌사 상태에 빠졌던 윤창호 씨가 46일 만인 지난달 9일 낮에 끝내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많은 국민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사고 당시 윤 씨는 전역을 불과 4개월 앞둔 군인이었는데 명절을 맞아 휴가를 나왔다가 참변을 당했고, 이때 차량을 운전한 가해자 박 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취소 수준인 0.181%였다.


사고 발생 후 윤 씨의 친구들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음주운전 교통사고로 친구 인생이 박살 났습니다. 제발 도와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을 게재했다. 그들은 “음주운전은 실수가 아닌 살인 행위입니다”, “음주 사고라 해 가볍게 처벌해서는 안 됩니다”라며 음주운전 가해자의 처벌 강화를 촉구했다. 해당 청원이 40만 명이 넘는 국민의 동의를 얻자,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음주운전 처벌 강화를 약속하는 답변을 내놨다. 국민의 지지에 힘입어 지난 10월 22일에는 사고 장소의 지역구 의원인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이 ‘도로교통법 일부 개정 법률안(이하 도로교통법 개정안)’과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 법률안(이하 특가법 개정안)’으로 구성된 이른바 ‘윤창호 법’을 대표 발의했다.

 

꿈많던 청년의 이름을 딴 법안


먼저 윤창호 법의 도로교통법 개정안은 음주운전 처벌 기준을 혈중알코올농도 0.05% 이상에서 0.03% 이상으로 하향 조정한다. 현행 도로교통법상 운전이 금지되는 음주 상태의 기준인 혈중알코올농도 0.05%는 보통의 성인 남자가 소주 두 잔 반이나 맥주 두 캔을 마신 후 한 시간 정도가 지났을 때의 상황에 해당한다. 하지만 개정안이 적용될 경우 소주를 단 한 잔만 마시고 운전하거나, 밤늦게까지 술을 마신 후 아침에 운전하더라도 음주운전으로 적발될 수 있다. 또한 개정안은 음주운전 초범 기준 역시 2회 위반에서 1회 위반으로 하향 조정한다. 다시 말해 기존에는 음주운전 2회째까지를 초범으로 보고 가중처벌하지 않았지만, 개정안이 적용될 경우 음주운전 2회째부터 바로 가중처벌 대상이 된다.


특가법 개정안은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다치게 했을 때의 형량을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상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서 ‘1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상 3천만 원 이하의 벌금’,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숨지게 했을 때의 형량을 ‘1년 이상의 징역’에서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으로 강화한다. 음주운전 치사를 살인죄와 동등하게 처벌하자는 윤 씨 친구들의 주장이 가장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인 더불어민주당 소병훈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 동안 사망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교통사고 유형은 단연 음주운전이었으며 연평균 501명이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이런 세태에서 윤창호 법은 음주운전의 위험성과 그로 인한 사고의 심각성에 대해 많은 국민의 공감을 얻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법안이 통과되기까지의 과정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음주운전 치사가 살인과 같다는 국민 여론, 그리고 상해 치사죄 형량과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법 논리가 첨예하게 대립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의 위원장인 자유한국당 여상규 의원은 음주운전 치사에 대한 법정형을 살인죄와 동일하게 정한 윤창호 법 원안에 대해 형량의 하한선을 낮출 것을 권고했다. 타인을 살해하겠다는 고의를 갖고 살인죄를 저지른 고의범과 그런 고의 없이 위험운전치사죄를 저지른 과실범을 법적으로 같은 수준의 형량으로 처분하는 것은 형법 체계에 크게 어긋난다는 것이다. 한편, 법안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는 와중에 지난 10월 31일에는 윤창호 법 발의 서명에 동참했던 민주평화당 이용주 의원의 음주운전이 적발되는 해프닝도 있었다.

 

윤 씨의 친구들이 남긴 말은
지난달 29일 제364회 국회 제13차 본회의에서 윤창호 법의 특가법 개정안은 재석 의원 250명 중 찬성 248표, 기권 2표로 통과됐다. 이로써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이 분명 강화되기는 했지만, 취지가 후퇴한 ‘반쪽짜리 법안’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법사위에 상정된 원안은 음주운전 치사사고 시의 형량을 최소 5년으로 제시했지만, 법안 논의 과정을 거쳐 실제로는 형량의 하한선이 3년으로 낮춰진 채로 반영됐기 때문이다. 언뜻 5년과 3년이라는 형량 차이가 크지 않아 보일 수 있지만, 집행유예의 관점에서 3년이라는 형량은 중요한 기준점이 된다. 형법 제62조에 따라 집행유예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선고할 때 그 정상을 참작해 적용될 수 있다. 즉,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윤창호 법은 최소 형량이 3년이므로 집행유예 선고가 가능한 것이다.


윤창호 법 제정을 위해 발 벗고 나섰던 윤 씨의 친구들은 이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는 모습을 직접 지켜봤다. 윤 씨의 고등학교 친구 이영광 씨는 “창호를 비롯한 음주운전으로 죽은 많은 사람의 목숨값으로 윤창호 법이 통과됐다”라며 안도하는 동시에, “음주운전을 하다 사람을 죽인 범죄자가 얼마든지 집행유예로 풀려날까 봐, 윤창호 법의 본질이 사라질까 봐 심히 우려된다”라며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또, 윤 씨의 대학 친구 김민진 씨는 “국회에서는 윤창호 법이 그래도 빨리 통과됐다고, 이 정도면 형량이 많이 높아졌다고 생각하기보다 마음 깊이 그간의 관행을 반성해주시고 국민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하는 바람직한 국회의 모습으로 국민 신뢰를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나아가 윤 씨의 친구들은 법안의 실효성을 지켜본 뒤 미흡하다고 판단되면 형량을 더욱 강화하는 ‘윤창호 법2’ 제정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밝히면서, 국민들에게 끝까지 함께 해달라는 말을 전했다. 음주운전 처벌 강화에 대한 국민적 목소리는 더욱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운전자들이 스스로 음주운전을 경계하는 분위기가 정착될 수 있도록 근본적인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