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 에세이의 범람
힐링 에세이의 범람
  • 박민해 기자
  • 승인 2018.12.12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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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서점가는 언제나 각양각색의 자기계발서들로 가득 차 있었다. 당시라면 누구나 자기계발서 한 권쯤은 읽어봤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시로 호아킴 데 포사다와 엘런 싱어가 지은 ‘마시멜로 이야기’는 모르는 사람을 찾기 힘들 정도로 유명했다. 현재의 유혹을 참아낼 줄 알아야 미래의 성공으로 갈 수 있다고 주장하는 ‘마시멜로 이야기’ 시리즈는 2005년 출간 후 무려 3년 동안이나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목록에 머물렀다. 모두가 공부의 왕도, 습관의 중요성 따위를 강조하는 각종 인생 지침서에 열광했다.
하지만 직설적인 자기계발서의 시대는 갔고, 시간이 지날수록 힐링을 강조하는 책들이 늘어났다. 지난해 베스트셀러 목록은 아예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 같이 제목만 봐도 단번에 힐링 에세이임을 알아볼 수 있는 책들이 대부분이다. 명문대 합격생이나 대기업 CEO의 성공 비결을 읽고 눈에 불을 켰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고작 몇 년 만에 천천히 살아도 괜찮다는 위로를 듣고 있다니. 난 힐링 에세이 열풍이 너무나도 극단적인 변화로 느껴졌고, 문득 이런 현상이 발생한 이유에 대해 궁금증이 일었다.
세상은 왜 힐링에 목말라 할까? 사람들이 추구하는 삶의 태도가 점진적으로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성공에 눈이 멀어 앞만 보고 달려온 지난날과 달리, 이제는 경쟁을 그만두고 당장 자신의 행복을 찾으려 하는 것이다. 많은 힐링 에세이는 독자들의 마음에 쌓여있는 고민과 스트레스를 모두 이해한다는 듯이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그 덕분인지, 힐링 에세이는 요즘의 출판계를 점령하다시피 하고 있다. 인터파크가 지난달 14일 집계한 도서 판매 자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달 5일까지 약 10개월 동안 에세이 분야 도서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71% 증가했고, 힐링 에세이는 전체 에세이 분야 도서 판매량 중 62.3%를 차지했다.
그러나 이런 대유행이 마냥 좋은 현상은 아니다. 힐링 에세이들이 잇따라 큰 성공을 거두면서 힐링이라는 한 가지 주제에 편중하는 책들이 지나치게 많이 출간되기 시작했고, 서점가에는 획일적인 트렌드가 형성됐다. 또한, 일각의 전문가들은 이렇게 특정 분야의 책이 크게 유행해 출판계의 다양성이 파괴되면 결국 출판계와 독자 양쪽에게 해가 된다고 지적한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유행을 따라 출간되는 수많은 책의 내용을 비판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힐링 에세이가 그토록 높은 판매량을 기록하는 이유는 독자들이 책을 읽고 매우 쉽게 심리적 안정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힐링이라는 단어 자체가 그저 소비자들을 유혹하기 위한 상업적 의도로 만들어진 마케팅 용어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라도 하듯이 무조건 “이대로 괜찮다”, “이대로 충분하다”라며 비슷한 문장을 단순히 나열하는 양산형 힐링 에세이들을 최근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이런 사탕발림은 독자 개개인의 서로 다른 문제들을 해결해주지 못한다.
결코 위로를 받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슬럼프는 찾아오기 마련이고, 어쩌면 도저히 홀로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고난이 당신에게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을 선사할 수 있다. 그때 책에 적힌 맹목적인 위로의 문장들이 잠시 안식처를 제공해줄 수 있겠지만, 딱 그뿐이다. 이 시대의 양산형 힐링 에세이가 전하는 말은 그야말로 미봉책(彌縫策)이며, 독자가 어떻게 상황을 극복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회피하고 감성에 의존하게 만든다. 우리는 때때로 쏟아져 나오는 힐링 에세이를 경계하고, 스스로 본질적인 해결책에 대해 깊이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