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의 추억
지진의 추억
  • 김성민 기자
  • 승인 2018.11.29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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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딱 이때쯤이었다. 그날 나는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하루 앞두고 예비소집이 열리고 있는 모교 체육관에 있었다. 안내 책자를 받고 수능에 대한 각종 유의사항을 들으며 내일의 자유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지진이 났다. 처음에는 당황했다. 체육관이 흔들리면서 울리는 소리가 흔들림보다 더 크게 느껴져서 3초 동안은 지진인 줄도 몰랐다. 잠시 어리둥절하고 나서 흔들림을 느꼈고, 본능적으로 앉았던 플라스틱 의자로 머리를 감쌌다. 진동이 멈추자 운동장으로 나가려는 학생들이 문마다 가득했다. 운동장에 모인 학생들의 휴대전화에서는 연신 긴급재난문자 알림이 울렸다. 다들 문자 보내고 전화하느라 기지국도 먹통이었다. 운동장에 있을 때도 여진은 계속 이어졌다. 여진이 잠잠해지자 하교하라는 지시가 내려졌고, 선생님들과 학생들은 수능이 미뤄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수능이 그대로 시행될 수도 있었기에 함께 수능대박을 다짐하고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포항을 빠져나가고자 하는 차들로 꽉 막혔다. 걷는 것이 더 빠를 정도였다. ‘이렇게 큰 지진이 났는데 수능을 그대로 치겠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혹시 몰라 고사장과 고사실 위치를 확인했다. 집 앞에 도착하니 흔들리는 집에 있는 것 자체가 불안해 우리 가족을 포함한 많은 이웃이 주차장에 나와 있었다. 나도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가족과 차에서 수능 마무리를 했다. 
그날 저녁, 포항을 방문한 행정안전부 장관의 요청과 대통령의 허가로 수능이 전격적으로 일주일 연기됐다. 막상 연기됐다는 소식을 듣자 허탈했다. 이륙 1시간 전에 항공편이 취소된 여행객 같았다. 그냥 내일 치지. 싱숭생숭한 마음을 뒤로 한 채 잠들었다. 지진 때문에 학교는 금요일까지 휴교했다. 원래 국어영역 시간이었던 목요일 아침에도 여진은 이어졌다. 그때 나는 현실을 받아들였다.
2016년에는 경주지진, 이번에는 포항지진. 지진에 익숙했지만, 학교에 돌아왔을 때 복도에서 뛰어다녀서 생기는 진동조차 여진처럼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지진으로 만신창이가 돼서 고사장에서 빠진 학교였지만 그 안에서 학생들은 다시 마지막 일주일을 불태웠다. 며칠 뒤, 고사장이 지진 피해를 보지 않은 학교로 바뀌었다. 바뀐 고사장은 공교롭게도 우리대학 앞에 있는 중학교였다. 고사장 가는 길에 포항공과대학교 표지판을 봤을 때 든 묘한 기분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다행히 그날 큰 여진은 없었고, 조금 더 긴 수험생활도 무사히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