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양이에게
나의 고양이에게
  • 이신범 기자
  • 승인 2018.10.10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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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앞에 있는 공부보다 하염없이 노는 것만 좋아했던 시절, 일과를 마치고 하는 일이라곤 친구들과 컴퓨터 게임을 하며 밤을 새우는 것이 전부였던 내가 있었다.


나무들이 흩날리는 소리와 함께 불어오던 산바람이 초록빛 향기를 머금은 듯 여름의 시작을 알리던 그날에도,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나는 어김없이 풀이 다 죽은 카펫 위 구석진 어느 곳에다가 책가방을 내팽개치고 컴퓨터를 켰다.


10년을 함께 보낸 강아지를 떠나보내고, 키우는 애완동물이라곤 초등학교 운동회를 마치고 500원을 주고 사 왔던 노란 햇병아리, 혹은 자그마한 햄스터가 전부였던 우리 집. 그날은, ‘너’라는 존재가 조그마한 공간을 차지하기 시작한 날이었다.


짙은 아이보리색 털에, 검고 부드러운 귀, 그리고 유난히 파란 눈을 가진 너는, 생긴 것과 다르게 꽤 큰 몸집을 갖고 있었다.


고양이란 족속은 원래 그런가 보다. 아무리 이름을 불러도 좀처럼 오지 않고, 생각보다 큰 덩치에 혹여나 먼저 다가가면 할퀼까 어찌나 무서웠던지. 그렇게 몇 달을 서로 어색한 사이로 보냈다. 


어느 날 침대에 누워있던 내 옆에 불쑥 네가 다가와서 누웠다. 아마도 이전까지의 행동을 봤을 때, 너는 내가 자는 줄 알고 조심스레 다가왔겠지. 조용히 눈을 감고 있을 때 느껴지던 미약한 온기와 희미하던 숨소리, 이에 내 얼굴에 고스란히 느껴지던 콧바람은 내게 이유 없는 편안함을 안겨주었다.
 

배가 고플 때나,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 나를 졸졸 따라오며 문을 열어달라고 보챌 때도 있었고, 아무런 생각 없이 열어둔 현관문 밖으로 나가 개한테 물려 절뚝거리며 돌아왔을 때, 처음 자동차를 타보고 어리둥절해서 정신없이 왔다 갔다 했을 때. 모두가 기억에 남는다. 


철없던 나는 어느덧 성인이 됐고, 너도 이제 나이를 꽤 먹었다. 검지로 톡톡 치면 콧기름이 묻어 촉촉한 느낌이 나던 검은 코는 어느샌가 메말라버렸고, 베란다 난간에 앉아 건너편 푸른 산을 보며 선선한 바람을 즐기던 너는 이젠 밖에도 잘 나가려 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 나의 삶과 함께했던 강아지는 내가 없던 새에 불쑥 하늘나라로 가버렸다. 소중한 이와 작별인사도 하지 못한 채 이별했다는 사실은, 어릴 적 나에게 큰 트라우마로 남았다. 지금은 멀리 떨어진 타지에서 너에 대한 글을 적고 있다. 이번에는 내가 집에 돌아갔을 때, 홀연히 사라져버린 네 빈자리를 보지 않았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