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다는 것에 대해서
느리다는 것에 대해서
  • 강주은 / 컴공 17
  • 승인 2018.09.19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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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것은 저마다의 속도가 있다. 우리는 모두 그것을 명백히 알고 있다. 그 누구도 거북이가 토끼보다 느린 것에 , 목련이 장미보다 일찍 개화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는다.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우리는 유독 서로의 속도에 대해서는 쉽게 인정을 하지 못한다. 옆의 사람들은, 사회는, 우리에게 항상 빠른 것을 요구한다. 모두에게는 저마다의 속도가 있다는 것을 잊은 채로 말이다. 

나는 한결같이 느린 사람이었다. 보통의 아기들이 첫 돌 무렵이나 그 직후에 걷기 시작할 때, 여전히 나는 기어 다니기만 했고, 그로부터 3개월이 지나서야 불안한 첫걸음을 뗐다. 유치원의 미술 시간이 끝난 후에도 완성하지 못한 그림을 붙잡고 있던 아이는 나뿐이었고, 급식을 가장 늦게 먹는 아이도 나였다. 걷거나 뛸 때 누군가의 뒷모습을 보는 건 항상 익숙했고, 몸이 아파도 한참 뒤에 알아차릴 정도였다. 하지만 6살의 나는 남들보다 느린 속도를 이상하게 생각한 적이 없었다. 어느 날, 옆자리의 아이가 “너는 왜 이렇게 느려? 밥은 빨리 먹어야지. 여기에서 너만 느리잖아”라고 말했다. 그때야 어렴풋이 나는 내가 느리다는 것을, 그리고 그걸 다른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던 것 같다. 

학교를 들어가니 빠름을 강요하는 것은 더욱 강해졌다. 누가 가장 빨리 급식을 먹는지 대결을 하고, 달리기가 느린 아이들, 말이 느린 아이들, 성장 속도가 느린 아이들은 놀림의 대상이었다. 습득 속도가 느린 것, 글 읽는 속도가 느린 것, 글씨 쓰는 속도가 느린 것은 단점이었다. 빠른 것은 늘 선망의 대상이자 장점이었고 모두가 추구하는 가치였다. 그랬기에 나는 빠른 사람이 되기 위해 무던히 노력해왔다. 빠름을 좇기 위해 숨이 턱턱 막혀도 다들 그렇게 사는 거라 위로하며 남들보다 2배의 시간을 쏟으며 쉬지 않고 달렸다. 그러던 중, ‘나는 다만, 조금 느릴 뿐이다’라는 책을 만났다.

표지에 쓰여 있는 ‘안 아픈 척, 안 힘든 척, 다 괜찮은 척… 세상의 속도에 맞추기 위해, 그렇게 어른처럼 보이기 위해 달려온 당신에게 보내는 담담한 위안과 희망’이라는 글귀를 보고 홀린 듯이 집은 책이었다. 책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나는 자꾸만 숨이 찼다. 사람들은 참 빨랐다. 그들을 쫓아가느라 지쳐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면 자꾸만 어딘가로 숨고 싶어졌다.’ 읽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떨어졌다. 그동안 덮어둔, 알아차리지 못했던 감정의 부분이 건드려졌기 때문이다. 그때 느리게나마 깨달았다. 참 느린 사람인 나는 나와 맞지 않는 속도를 쫓느라 많이 힘들었다는 것을, 많이 지쳤다는 것을. 책에 또한 이런 구절이 있었다. ‘느리지만, 그 느림 안에서 누구보다 성실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볼 때면, 나의 느림이 싫지만은 않게 느껴질 수 있다. 나의 이야기도 누군가에게, 그런 반가움을 안겨줄 수 있었으면 한다. 나는 사실 ‘다만, 조금 느릴 뿐’이라는, 반가움이 되어줄 수 있다면 좋겠다.’ 느린 것은 잘못이 아니라는 걸, 나쁜 게 아니라는 걸, 그리고 나는 조금 느릴 뿐이며 나와 비슷한 사람들도 많다는 걸 이 책을 통해 느꼈다. 

모든 건 저마다의 속도를 가지고 저마다의 세상을 살아간다. 나의 속도는 나의 세상에 딱 맞으니 다른 이의 속도에 맞추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조금 먼저 출발해야 하면 어떻고, 조금 늦게 도착하면 어떠하며, 조금 느리면 어떠한가. 모든 꽃은 저마다 활짝 피는 시기가 다른 법이다. 일찍 폈다고 해서 더 아름답고, 늦게 펴서 덜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