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피안의 휴가
시시피안의 휴가
  • 공환석 기자
  • 승인 2018.05.30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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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시포스는 교활하고 약은 꾀로 신들을 우롱해 영원히 산 정상으로 돌을 밀어 올려야하는 형벌을 받게 된다. 그 돌은 정상에 다다랐을 때 다시 아래로 굴러 떨어지기 때문에 시시포스의 삶은 끝없는 노동이었다. 나는 ‘목적 없는 노동의 반복’을 가장 무서운 형벌이라 생각했을 그리스 신들, 그리고 그 신들의 뜻대로 결국 일의 목적조차 흩어버리는 ‘권태’에 시달렸을 시시포스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리고 뭔가 모를 낯익음에 실소를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3년의 대학 생활 한 가운데서 휴학을 결정하고 되돌아본 나는 시시포스와 닮아있었다. 쏟아지는 과제, 반복적인 일상을 매일같이 꼭대기로 굴려나가는 기계로 기억된다. 막상 이것저것 새로운 일을 시작해보다가도 이내 현실을 마주할 때면 느껴지는 묵직한 권태로움이 나는 너무나도 괴로웠고, 뭘 해도 사라지지 않는 무기력함은 이제 그만 뱉어버리고 싶은 단물 빠진 껌으로 느껴졌다.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설렘이었던 대학생활을 한순간에 소위 ‘노잼’으로 바꿔버리는 ‘권태’는 그래서 무서운 것이었다.

1960년대 정신신체의학의 선구자였던 스튜어트 울프는 ‘시시포스 콤플렉스’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했다. 그는 시시포스 콤플렉스를 ‘끊임없이 노력하고 고군분투하지만 만족과 기쁨 없이 살아가는 것’으로 정의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시시포스 콤플렉스에 빠진 사람, ‘시시피안’은 자신을 스스로 돌아볼 여유가 없어서 삶의 명확한 방향을 설정하지 못하고, 스스로 일하는 동기를 찾지 못한다. 그리고 새롭게 주어진 과제를 피하지 않고 도전해서 결국 성공으로 이끌기는 하지만, 그 성공에서 자신만의 만족감과 의의를 찾지는 못한다. 나는 그동안 ‘시시피안’이었다.

그 무서운 권태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전 나는 앞만 보고 전진해왔다. 그러다 공허한 느낌이 들기 시작하면 그 기분을 떨쳐내고자 더 많은 일을 시작했다. 결국 해야 할 일들은 산더미처럼 쌓이는데 그 위에 새로운 일을 아무렇지 않게 얹어버리고 다시 지쳐버리는 내 모습이 보였다. 혹시 나와 비슷한 경험이 있다면, 한번쯤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은 어떨까? 그저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기계적으로 움직이며 일을 마치고, 남을 의식한 성공과 성취에서 기쁨을 느끼는 것은 허무함만 더해줄 뿐이다. 바쁘게 달리느라 잠시 잊고 있었던 진짜 내 모습을 떠올리고 다시 돌아가 보자. 오랜만에 긴 휴가를 가지고 그 기억을 되짚은 나는 이제야 체증이 사라진 상쾌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