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지역환경르포] 송도 해수욕장
[포항지역환경르포] 송도 해수욕장
  • 황정은 기자
  • 승인 2003.09.0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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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욕장이라는 이름이 부끄러운 죽은 바다

딱 놀러가기 좋은 맑은 날씨였다. 택시에 타면서 말했다. “송도 해수욕장요.” 그러자 기사가 몸을 홱 돌리며 눈을 크게 뜨고 반문한다. “송도 해수욕장요?” 말로만 듣던 송도 해수욕장과의 만남은 처음부터 황당함으로 시작되었다.

송도 해수욕장은 영일만에 면해 있는 포항시 남구 송도동에 있는 해수욕장으로, ‘포항 환경문제’하면 가장 흔히 거론되는 지명이다. 송도는 해송이 우거지고 백사장이 펼쳐진 섬이었다. 포항환경운동연합 정기일 사무국장에 따르면 송도 해수욕장은 이름난 절경으로서 동해안에서 해운대 해수욕장 다음으로 규모가 크고 관광지로서의 잠재력도 못지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 송도의 모래사장은 거의 해수욕장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폭이 좁았고, 그나마 모래도 거무튀튀하다. 모래사장 뒤편에 늘어선 상가들은 간판이 떨어지고 칠이 벗겨져 흉물스러운 모습이었고, 남쪽에는 포스코 공단이 지평선까지 펼쳐져 있었다. 파도가 들어오는 곳에는 암록색의 끈적한 조류가 잔뜩 밀려와 있었고 갯내음이라고만은 할 수 없는 악취에 머리가 지끈해졌다. 열 살이 채 될까 한 아이들이 물에 뛰어들자, 근처 가게에서 파리만 날리던 아주머니는 “저러다 피부병 걸리면 우짤라고.”하며 인상을 찌푸린다.

송도 해수욕장이 이렇게 된 데는 포스코의 영향이 크다. 1968년 포스코가 건설되면서 큰 항만이 필요해졌다. 영일만은 수심이 얕기 때문에 대규모 준설 작업이 필요했으며, 형산강 직강화도 함께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송도의 모래가 직접적으로 유실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후의 대규모 침식의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 환경ㆍ시민 단체의 주장이다. ‘사건’은 1978년 10월에 태풍이 올라오면서 터졌다. 당시 우연히 현장을 목격했다는 정기일 사무국장은 “마치 산사태가 일어나는 것처럼 모래사장이 크게 무너져 내리며 잘려 나갔다.”고 말한다. 그 후 1979년에서야 복구가 일부 이루어졌는데 그나마도 자갈이 섞인 흙모래를 사용함으로써 백사장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이에 따라 관광객에 의존하던 주변 상권은 고사의 길을 걷게 되었다. 2001년 9월에 발표된 한국해양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연도별 폐업상가 수는 1978년에서 1980년 사이에는 2개 상가 정도에 불과하였으나 그 후 계속 증가하여 1990년까지 전체 상가의 53.7%가 폐업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포항 환경운동연합, 포항 YMCA 등 12개 단체가 모여 ‘지속가능한 송도 발전을 위한 포항시민연대회의’(이하 ‘송도연대’)를 조직했고, 이들이 포항시의회에 제출한 건의안이 1998년 채택되어 문제가 본격적인 해법 찾기에 들어가게 된다. 송도연대는 한동대 건설환경연구소에 용역을 맡겼고 2000년 7월에는 ‘모래 유실 및 이에 따른 상가 피해 책임은 100% 포스코의 준설작업 및 형산강 직강화 작업 때문’이라는 것을 골자로 한 보고서가 나왔다. 포스코는 이 보고서를 논박하기 위해 포항산업과학연구원 수질환경 연구팀에 같은 연구를 의뢰했고, 이 연구팀에서는 ‘모래의 대량 유실은 이상파도 때문이었으나 이상파도가 생긴 원인에 포스코의 준설작업이 일부 기여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전해진다. 이 보고서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산업과학연구원 수질환경 연구팀에 연락을 취해 보았으나, 당시 연구 담당자의 행방은 알 수 없고 보고서도 대외 공개가 쉽지 않다는 대답이었다. 당시의 연구를 기억하고 있는 한 연구원은 “포스코의 책임이 20~30% 정도로 산정되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처럼 서로 상반되는 연구 결과가 나오자 2001년 9월 14일에는 시 관계자와 포스코 관계자, 시민단체 대표 등으로 구성된 대책협의회에서 ‘송도백사장 복구 및 보상 방안대책 용역’을 한국해양연구원에 의뢰하고 그 결과를 최종적으로 수용한다는 합의서에 포항시장과 포스코 사장, 송도연대 대표 등이 서명하기에 이른다. 2003년 3월 8일 발표된 한국해양연구원의 최종보고서는 “송도해빈의 모래유실 원인은 포철 건설을 위한 준설공사의 영향이 지배적이나, 보상의 대상인 송도상가 전면 백사장은 포항 구항 방파제 연장공사에 의해서도 상당히 유실된 것으로 사료되어, 책임비율은 준설공사 영향이 75%인 것으로 판단된다.”며 포스코의 책임 손실액을 약 337억원으로 산정했다.

문제는 최종보고서와 6월 11일에 열린 실무위원회 결과에 실망한 송도연대가 6월 13일, 포스코가 보고서 검수를 차일피일 미루면서 최종 결과에 승복하지 않으려 한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다시 불거졌다. 이에 대해 포스코에서는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해수욕장을 떠나오는 택시에서 기사는 “상가는 망했는데 돈 나올 구멍은 포스코 밖에 없으니까 이러는 것 아니겠느냐”며 한숨지었다. 문제는 인과관계다. 포스코의 준설작업과 상가의 대량 폐업사태 사이의 인과관계를 얼마만큼 인정하느냐에 따라 피해 보상액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친환경 기업을 내세우는 포스코는 송도 해수욕장 같은 명백한 환경오염에 대한 책임을 인정할 수 없고, 주민의 생계가 걸려 있는 이 문제에 대해 시민단체 역시 물러설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인과관계를 따지는 동안 송도 해수욕장은 이미 해수욕장이라고 부르기가 민망할 만큼 죽은 바다가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