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평생 사랑할 수 있는 학교
내가 평생 사랑할 수 있는 학교
  • 문경덕 / 산경 15
  • 승인 2018.05.10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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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가장 많이 들었던 핀잔 중 하나가 ‘너의 것부터 먼저 챙겨라’라는 말이었다. 아마도 다른 친구의 고민 들어줄 시간에 공부해서 나의 성적을 올리라는 말씀이었던 듯하다. 2학년이 되자, 나의 미래는 매일 같이 성적표가 그려내는 피상적인 환상 속에 이리저리 재단되었다. 때로는 그런 생각들에 동화되어 곁에 있는 누군가를 꺾어야 할 것만 같은 마음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나 홀로 앞서나가고자 달려가는 길 위에는 아킬레스건이 찢어질 듯한 고통만이 남게 됨을 느꼈기에, 결국 경쟁이라는 지독한 구조에 대한 완벽한 회의주의자가 되었다.

성과주의로부터 자유롭고 싶었던 나는 주도적인 활동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선생님들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은 채, 오히려 함께 성장해가는 것의 가치를 느꼈던 순간들을 자기소개서에 꾹꾹 눌러 담았다.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그동안 꽤나 성실하게 살았다고 생각했고, 남을 도울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진심으로 대했던 경험들이 대학교에 가서는 큰 자산으로 사용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원서를 제출하는 순간까지 ‘과연 성적보다 협동하는 자세가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학교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두려웠다. 그럼에도 이런 나의 지향점을 믿어줄 수 있는 학교가 있다면, 학교가 나를 믿어준 것처럼 나 역시 그 학교를 믿고 진학할 생각이었다.

수많은 학교에서 면접을 보았지만, 지금에 와서는 오직 한 곳에서의 면접만이 내 기억 속에 남아있다. 당시 그곳의 면접관이자, 현재 학과의 주임교수님께서는 만약 내가 여러 학교에 합격하게 된다면 어떤 기준으로 대학을 선택할 것인지에 대해 질문하셨다. 나는 차분히, 그리고 담대하게 대답했다.

“진학을 고민하는 저의 유일한 선택 기준은 평생을 사랑할 수 있는가, 그뿐입니다. 아쉽게도 저는 이 학교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교수님들께서 이 시간을 통해 평생 사랑할만한 학교임을 가르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주임교수님의 축하 전화를 받던 날, 어느 것도 좋으니 궁금한 것을 편히 물어보라는 교수님의 말씀에 나는 1시간 동안 전화기를 붙들고 다양한 질문으로 교수님을 괴롭혔다. 학부생도, 대학원생도 아닌 일개 합격자 따위가 학과에서 가장 바쁠지 모르는 주임교수님의 1시간을 아무렇지 않게 빼앗을 수 있는 학교. 학생의 자기소개서에 적힌 발명 아이디어에 대해, 마치 연구 주제를 대하듯 면접 시간의 전부를 할애하면서 함께 고민해주는 학교. 나는 그 학교가 함께 걸어가는 것의 가치를 존중해줄 수 있는 학교임을, 그리고 내가 평생 사랑할만한 학교임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지난 3년간 꿈꿔왔던 학부 생활을 누릴 수 있어 너무나도 행복했다. 우리대학이라고 해서 성과주의로 상처 준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럴 때마다 경쟁심 없이 서로 돕고,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 공부하려는 친구들이 많았기에 지난 학부 과정은 기쁜 마음으로 성장했던 시간이라 기억될 수 있었다. 여전히 나는 이 모든 친구와 좋은 기억들이 내가 마땅히 받을 만했기 때문에 주어진 것이 아니라, 그저 그동안 대가 없이 받았던 수많은 혜택임을 떠올린다. 이제 곧 대학원에 진학하는 내가 우리대학과 사회를 위해 내가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까. 그것은 어쩌면 지금껏 그래왔듯 성과에 집착하는 대신, 함께 성장하는 것에 가치를 두고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졸업을 앞둔 어느 봄날의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