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언론과 자본-광고시장 자율화 논쟁] 미디어렙 도입만이 해결책 아니다
[기고- 언론과 자본-광고시장 자율화 논쟁] 미디어렙 도입만이 해결책 아니다
  • 조준상/한겨레 여론매체부 기자
  • 승인 2001.0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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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광고공사, 신문광고시장 개혁이 선결과제

방송광고판매대행등에관한법률(민영 미디어렙 법안)을 둘러싸고 지난해 연말부터 SBS와 MBC 대 주요 신문들간에 전파와 지면을 동원한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SBS와 MBC는 신문들이 자기들 광고시장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광고시장 자율화”를 비판하고 있다고 몰아가고 있다. 반면 신문들은 방송사가 사실상 직접 광고영업을 하게 됨에 따라 방송광고료가 올라가고 시청률 경쟁이 치열해지며 이에 따라 방송 프로그램의 질이 떨어질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도대체 민영 미디어렙이 무엇이기에 방송과 신문 사이에서 이런 갈등이 벌어지는 것일까, 그리고 어느 쪽 얘기가 맞는 것일까.
미디어렙은 방송사에 광고주들의 광고를 대신 판매해 주는 ‘방송광고판매대행사’를 뜻한다. 1980년 신군부는 언론통폐합을 하며 이런 방송광고 판매 대행을 한국방송광고공사(코바코) 독점체제에 맡겼다. 신군부 이후 코바코는 정권의 정치자금 및 낙하산 인사를 위한 노른자위 구실을 해 왔던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방송광고 독점의 폐해

하지만 코바코의 이런 부정적 기능은 1987년 6월민주항쟁 이후 점점 약해져 왔다. 특히 김영삼 정부와 현 김대중 정부 이후 경영의 투명성 측면에서 상당히 긍정적인 변화를 보여왔다. 동시에 국민경제 및 시청자의 이해관계 차원에서 코바코가 발휘해 온 긍정적인 기능은 거의 무시돼 왔다. 방송광고료를 가급적 낮게 유지해 왔다는 측면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코바코가 독점체제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방송광고료가 다른 선진자본주의 국가들보다 상대적으로 낮았던 것은, 독점체제로 인해 국내 지하철요금이나 전력요금이 상대적으로 낮았던 것과 마찬가지 이유라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모든 공기업은 도둑놈’이라는 국민들의 맹목적인 정서와 ‘독점체제의 폐해’는 해소해야 한다는 당위가 맞물리며 민영 미디어렙을 도입해 경쟁체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게 대세를 이뤘다. 하지만 1998년 12월 구성된 방송개혁위원회가 민영 미디어렙 설치를 논의할 때만 해도 ‘마지노선’은 있었다.

하나는 ‘방송광고료가 너무 올라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방송광고료 인상은 어떻게든 시청자 부담으로 돌아온다는 것, 현재 90%에 이르는 KBS·MBC·SBS의 방송광고 집중도가 더욱 높아져 케이블텔레비전과 신문 등 다른 매체의 균형발전에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문제점을 고려해 방송개혁위는 시청자단체와 언론 관련 시민단체들이 참여하는 방송광고요금조정위원회를 설치한다는 내용을 마련했다.

다른 하나는 ‘KBS 제2TV의 광고 폐지와 MBC 민영화’이다. 공영방송인 MBC까지 민영방송과 마찬가지로 미디어렙을 거느리게 되면 사실상의 완전경쟁체제로 가는 셈이어서 온갖 부작용이 속출하게 된다는 근거에 따른 것이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규제개혁위원회가 민영 미디어렙 법안을 심사하는 과정에서 이런 문제들은 완전히 논의에서 제외됐다. 오로지 규제 완화를 위한 완화와 형식 논리만이 판을 쳤다. 그 결과는 △민영 미디어렙을 2개 설치하고 △공영방송과 민영방송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방송광고를 판매하게 하며(공·민영 업무영역 구분 폐지) △한 방송사가 최대 20%까지 신설 미디어렙에 출자할 수 있게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사실상 방송사각 한 개씩의 미디어렙을 사실상 소유하며 방송광고영업을 직접 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나 마찬가지다. 또한 미디어렙을 통해 방송사의 직접 광고영업을 금지하고 있는 방송법의 취지와도 정면으로 어긋나는 것에 해당한다.

민영 미디어렙 법안의 폐해는 또 있다. 문화관광부가 슬그머니 끼워넣은 외국자본의 출자한도가 국내 방송사와 똑같이 최대 20%까지 늘어난 것이다. 반면 국내 대기업의 출자는 금지됐다. 형식논리나 시장원리 측면에서 분명한 역차별인 셈이다.

방송광고료를 둘러싼 이해당사자의 하나인 신문 역시 출자가 금지된 것도 형평성에 어긋나기는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신문이 민영 미디어렙 법안을 비판하는 것은 어떻게 봐야 할까. SBS와 MBC의 주장처럼, 신문광고시장이 줄어들까봐 우려한 데서 나온 이기적인 산물일까. 답은 그런 측면도 있고, 아닌 측면도 있다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민영 미디어렙이 한 개가 도입되든, 두 개가 도입되든 신문광고시장은 줄어든다는 점이다. 주류 신문들의 민영 미디어렙 비판은 이에서 비롯한 측면이 크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는 사실이다.

과대평가된 신문광고시장

문제는 신문광고시장이 줄어든다는 게 아니라 현재 신문광고시장이 지나치게 과대 평가돼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주류 신문들은 아예 언급하지 않는다. 민영 미디어렙에 대한 신문들의 보도를 긍정적으로만 바라볼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신문 광고시장 역시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MBC가 주장하는 것처럼, 신문광고시장을 개혁하기 위한 수단이 민영 미디어렙을 도입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사실상 자신들의 이기적인 욕심을 ‘개혁’으로 포장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신문광고시장은 전체 신문개혁 차원에서 논의되고 해결돼야 할 문제이다.

민영 미디어렙 도입을 둘러싼 갈등이 한국 사회에 던지는 물음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전체 공공부문 재편의 움직임과 떼어내 생각할 수 없다. ‘공공부문은 비효율적이다’는 맹목적인 신화가 그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흔히들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방송광고대행 독점체제의 폐해’란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경쟁체제를 도입하면 방송광고료가 더욱 낮아지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때문에 문제의 핵심은 다른 곳에 있는지 모른다. 방송광고공사의 내부 개혁과 신문광고시장의 개혁이다. 방송광고료는 될수록 낮아야 한다는 전제 아래 무자본 특수법인인 코바코의 형태를 주식회사로 바꾸고, 시청자 및 언론 관련 시민단체, 광고주, 방송사, 한국언론재단 등 언론 관련 공익재단 등 방송광고료를 둘러싼 이해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방송광고요금 결정 과정에 반영하고 조정할 수 있는 내부 지배구조를 구성하는 게 민영 미디어렙 도입보다 더욱 중요한 것일 수 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