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부시 행정부와 한반도-당근보다 채찍 드는 강경 자세에 ‘민족대단결’ 제자리 걸음
[시론] 부시 행정부와 한반도-당근보다 채찍 드는 강경 자세에 ‘민족대단결’ 제자리 걸음
  • 오삼교 / 위덕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 승인 2001.03.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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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강경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공화당이 집권하면서 남북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가 새로이 관심 사항으로 떠오르고 있다. 남북한이 주도해 온 최근의 한반도 정세에 새로운 변수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미국이 대북 강경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이며 미국의 이러한 태도가 남북 화해 기조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공화당 인사들은 클린턴 행정부가 북한에 끌려 다니면서 북한의 핵 위협이나 미사일 문제를 확실히 해결하지 못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또 이는 클린턴 행정부가 대북 정책을 통합적으로 추진하지 못하고 사안별로 북한과 협상함으로써 북한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대북 교섭에서 군사력 사용도 불사한다는 단호한 태도를 표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1999년 2월 보수파 인사들의 주도하에 작성된 아미티지 보고서는 이 점에서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 정책과 대비된다. 아미티지 보고서는 미국의 군사적 우위에 기초한 대북 억지와 공세적 압박을 강조하고 있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 개발을 계속할 경우 미사일 수출선박의 나포 및 북한 핵 시설에 대한 선제 공격까지도 주장하고 있다. 보고서 작성을 주도한 아미티지는 현재 부시 행정부의 국무부 부장관에 지명된 바 있어 미국의 대북 정책이 당근보다는 채찍에 무게를 둘 것이라는 점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전면 재검토되고 있는 대북정책

부시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변화는 벌써 감지되고 있다. 파월 국무장관은 북미수교의 조건으로 미사일 협상 타결과 타결 이후의 이행상태에 대한 철저한 검증 뿐만 아니라 재래식 무기 감축도 요구하고 있다. 재래식 무기 감축요구는 이전부터 제기된 문제이기는 하나 미사일 문제 타결이전에 이 문제를 수교의 조건으로 제시한 것은 미국이 대북 관계 개선을 서두르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지연시키려는 의도가 있음을 짐작케 하는 부분이다.

또한 1994년 클린턴 행정부가 체결한 제네바 협정에 따른 경수로 건설을 중단하고 화력발전소로 교체할 것을 주장하는 움직임이 있다. 주된 이유로 핵무기 제조에 사용될 수 있는 플루토늄 추출 가능성을 주장하고 있으나 원래 경수로는 핵무기 제조 목적의 플루토늄 추출이 어렵고 또 재처리 시설이 없는 북한이 핵연료를 외국에 의존해야만 하는 특성 때문에 미국이 동의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보수파 인사들이 새삼 이러한 이유를 들고 나오는 것은 북한 핵 및 미사일 문제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기 위한 분위기 조성용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이 강경 일변도인 것만은 아니다. 아미티지 보고서도 북한이 핵과 미사일 개발 및 수출 포기 요구를 수용하고 이 문제와 관련된 의혹을 깨끗이 해소하면 대북 경제 지원과 북한의 안전보장 및 수교를 포함한 당근책을 제시하고 있는 점에서는 기존의 민주당 정책과 다를 바 없다. 더구나 남한과의 동맹정책을 더욱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미국이 남한의 대북 정책 기조를 근본부터 바꿀 정책을 요구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는 관측이 우세하다.

앞으로 북미 관계의 중요한 계기가 되는 문제가 부시 행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NMD(전국미사일방어망)계획이다. NMD는 “불량국가(rogue states)”나 테러리스트의 도발, 혹은 사고로 인한 미사일의 우발적 발사에 대비하여 본토를 방어한다는 계획이다.
그런데 NMD 개발 필요의 원인으로 가장 많이 지목되는 것이 바로 북한의 미사일 위협이다. NMD는 실제로는 미국의 군사적 패권을 강화하려는 세계전략의 일환으로 추진되 있는 사안이다. 따라서 미국으로서는 북한의 위협을 강조해야 하는 입장에 있으며, 북한의 공격적이고 도발적인 자세를 유도하는 것이 NMD의 성공에 유리한 조건이 된다. 이는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화해의 폭을 넓히려는 남한 정책과 충돌하는 측면이 있다. 오는 3월 중의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 문제에 대한 입장 조율이 있을 것이나 양국의 입장을 살리는 선에서 적절한 타협점이 도출될 것으로 예상된다.

힘의 우위와 군사적 억지력 강조

부시 행정부의 외교안보보좌관으로 기용된 콘돌레자 라이스는 2000년 1월 포린어페즈에 기고한 글에서 미국의 대북 정책은 힘의 우위와 군사적 억지력에 기초하여 북한의 도전에 “결정적이고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 미국의 이러한 태도가 실제로 남북관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억제와 응징을 강조하는 부시 행정부의 강경 기조는 남한의 당근 정책 기조와 정책 논리상 충돌이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양국 모두에게 한미 동맹관계는 대북 정책의 기초이기 때문에 이러한 접근 태도의 차이는 공조 과정에서 충분히 조율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이 남북관계 개선이나 화해 자체를 문제삼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더우기 금명간 김정일 서울 방문이 예상되고 있는 현시점에서 미국이 남북화해의 기조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정책을 취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과 북한의 힘 겨루기 과정에서 갈등이 악화되면 결과적으로 남한의 대북 접근의 폭과 속도는 크게 줄어들게 될 것이다. 그 결과 남북관계에 어느 정도의 정체와 퇴보가 초래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민족대단결’의 구호는 한미 관계의 현실적인 결속력을 넘어서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한으로서는 북미간의 갈등관계를 염두에 두면서 미국과 북한 양측으로부터 유연하고 실용적 태도를 이끌어 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남한은 평화와 화해의 정착을 위해서 미국과 북한 사이에서 보다 적극적인 중재자 역할을 떠맡아야 할 것이며 이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경우 평화체제 성립과 경제교류에 있어 북한으로부터 보다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성과를 얻어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당장의 과제는 김정일 답방시 미국의 강경 기조를 완화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항구적인 긴장 완화와 평화정착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