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보석, 진주층 형성의 이해
바다의 보석, 진주층 형성의 이해
  • 차형준 / 화공 교수, 반소영 / 화공 박사후연구원
  • 승인 2018.03.28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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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진주조개껍질 및 진주층의 전자현미경 사진(상)과 진주조개 Pif80 단백질의 진주층 형성 조절 과정(하)
▲[그림] 진주조개껍질 및 진주층의 전자현미경 사진(상)과 진주조개 Pif80 단백질의 진주층 형성 조절 과정(하)

생명체가 만드는 특별한 바이오미네랄, 진주층
바다의 보석으로 알려진 진주는 연체동물의 체내에서 생성되는 광택을 가진 구슬 모양의 바이오미네랄이다. 진주가 가지는 독특하고 아름다운 광택은 오래전부터 그 가치를 인정받아 장신구로써 사용돼 왔으며 지금까지도 보석으로 널리 사랑받고 있다. 해양 이매패류에 속하는 진주조개(Pinctada fucata)는 진주를 만드는 대표적인 연체동물로, 체내에서 진주 성분을 분비해 천연 진주를 만든다. 사실 진주의 형성은 조개 속에 침입한 이물질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한 반응으로, 진주 성분을 분비해 이물질을 감싸는 과정을 통해 형성된다. 진주의 양식 재배에서는 조개의 외투막에 인위적으로 이물질을 삽입해 진주 성분의 분비를 유도해 생산하게 된다. 조개가 분비하는 이 진주 성분은 진주조개껍데기의 가장 내부 층과 구조적으로 동일하며, 이를 진주층(Nacreous layer)이라고 부른다. 진주층은 특유의 영롱한 광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조개껍데기의 외부를 구성하는 능주층(Prismatic layer)과 쉽게 구분된다. 또한, 단단하지만 쉽게 부서지는 능주층과 달리, 진주층은 쉽게 부서지지 않고 탄성을 가지는데 이는 껍질이 파열되는 것을 방지해 내부의 부드러운 몸을 포식자와 기계적 손상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진주층은 95% 이상이 탄산칼슘(석회질) 미네랄로 구성돼 있으며, 5% 이하의 소량의 유기물을 포함하고 있다. 일반적인 무기 탄산칼슘과 달리, 진주층은 유기-무기 복합형태를 이루며 나노미터 수준부터 마이크로미터 수준에 이르기까지 복잡하고 유기적인 계층구조를 가진다. 이 독특한 구조를 통해 진주층은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흡수하게 되는데, 그 파괴인성은 순수한 탄산칼슘보다 백 배에서 천 배가량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생명체는 이런 복잡한 유무기 복합소재를 형성하기 위한 모든 과정을 정교하게 조절하는데, 이를 ‘바이오미네랄화’ 또는 ‘생광물화’라고 부른다.

 

진주층 형성을 위한 진주조개 단백질의 효율적인 이용
진주층은 뛰어난 광학적, 기계적 특성으로 인해 바이오소재이자 바이오미네랄의 모델로서 주목받아왔으며, 수십 년 전부터 진주층의 생리학적, 구조적, 분자적 연구가 널리 진행돼왔다. 진주층의 형성은 진주조개 외투막의 상피세포가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투막의 상피세포는 진주층과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지만, 유기물과 탄산칼슘 미네랄을 포함한 진주층의 구성요소를 상피세포와 진주층 사이의 공간으로 공급함으로써 진주층의 형성을 조절한다. 진주층은 키틴(chitin) 골격에서 탄산칼슘 결정이 성장해 형성되는데, 이 과정에서 외투막 상피세포가 분비한 유기물로부터 진주층의 바이오미네랄화 과정이 조절된다. 특히, 다양한 구조와 기능을 가지는 단백질이 진주층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여겨졌으나 아직까지 진주층 형성의 구체적인 과정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탄산칼슘 전구체의 형성 및 안정화
진주층과 같은 결정질의 탄산칼슘 형성을 위해서는 그 10만 배의 부피에 해당하는 탄산칼슘 포화용액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진주층이 형성되는 위치에 충분한 양의 탄산칼슘 미네랄을 전달하고 더불어 많은 부피의 물을 제거한다는 것이 논리적인 문제가 있음을 이야기한다. 따라서 외투막 상피세포는 진주층을 만들기 위해 탄산칼슘 전구체(Precursor)를 미리 특정 공간에 저장해둘 것으로 여겨졌다. 실제로 세포 내의 소낭에 비결정질 상태로 존재하는 탄산칼슘 전구체가 발견되며 이를 뒷받침했는데, 어떻게 전구체를 형성하고 이를 세포 내에 안정하게 저장할 수 있는지는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


본 연구팀은 유전자 재설계를 통해 생산한 진주조개 단백질인 Pif80을 이용해, 진주조개의 진주층 형성 과정 조절의 이해에 한 걸음 다가섰다. Pif80 단백질은 특정 농도의 칼슘 이온의 존재 시에 액체-액체 상분리 현상인 코아서베이션(Coacervation)이 유도되는데, 이 결과 농축된 액상 단백질 형태인 코아서베이트(Coacervate) 상태로 존재하게 된다. Pif80 코아서베이트는 [그림]과 같이 탄산칼슘 전구체에 해당하는 액상 탄산칼슘의 형성을 유도했다. 탄산칼슘 전구체는 매우 불안정한 비결정질(Amorphous mineral)의 상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액상 조건에서는 빠르게 결정질 탄산칼슘으로 전환된다. 하지만 Pif80 코아서베이트는 형성된 탄산칼슘 전구체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비결정질 상태를 효율적으로 안정화할 수 있음을 보였다. 이를 통해 외투막의 상피세포가 단백질을 이용해 탄산칼슘 전구체를 형성하고 저장하는 방법의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다.

 

판상 탄산칼슘의 성장 유도
외투막 상피세포에 안정하게 저장되었던 탄산칼슘 전구체는 원하는 시기에 세포와 진주층 사이의 공간으로 분비돼 진주층을 형성한다. 탄산칼슘 전구체는 결정화 과정을 거쳐 진주층의 결정질 탄산칼슘으로 전환된 후 성장해 최종적으로는 <그림>과 같은 다각형 판상(Polygonal tablet) 구조의 진주층이 형성된다. 이처럼 미네랄 전구체가 조직화한 진주층 바이오미네랄로 발달하는 메커니즘은 연구자들에게 매우 흥미로운 주제로 관심을 받아왔으며, 진주층의 바이오미네랄화 과정을 모방하려는 시도 또한 다양하게 진행 중이다.


본 연구팀은 진주층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Pif80 단백질의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실제 진주층의 형성이 진행되는 상피세포와 진주층 사이 공간의 환경 조건을 도입했다. 외투막 상피세포가 진주층을 만들고자 할 때, 탄산칼슘 전구체와 함께 이를 안정화하던 Pif80 단백질이 이 공간으로 분비된다. 또한 여기에는 해수와 유사한 고농도의 염이 존재하는데, 이로 인해 Pif80 단백질은 코아서베이트 형태에서 용해된 상태로 변화하게 된다. Pif80 단백질은 진주층의 골격인 키틴 표면에서 진주층과 같은 결정질 탄산칼슘이 원형 판 모양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이 원형 판 모양은 실제 진주조개의 진주층에서 발견되는 초기의 판상 탄산칼슘과 유사하며, 이 원형 판 형태가 측면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거쳐 다각형 판상의 성숙한 진주층이 된다. 이를 통해 진주층의 특별한 구조를 형성하면서 Pif80 단백질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바이오미네랄화의 이해와 진주층의 미래 소재로서의 가능성
본 연구를 통해 진주조개의 Pif80 단백질이 진주층 바이오미네랄화 과정에서 칼슘 이온부터 탄산칼슘 전구체를 거쳐 결정질 탄산칼슘에 이르기까지 무기상의 발달에 중요하게 관여함을 제시했다. 이는 생명체가 어떻게 단백질을 효율적으로 사용해 바이오미네랄 형성을 조절하는지에 대한 이해에 기여하였으며, 그동안 규명되지 않았던 진주층 형성 과정 조절의 구체적인 메커니즘을 제안했다는 데 큰 의미를 가진다.


진주조개 단백질은 향후 생체 모방형 탄산칼슘의 형성에 이용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진주층 유사 소재의 개발에 적용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된다. 이를 통해 인공 뼈, 인공 치아와 같은 임플란트, 화장품 첨가제 등의 다양한 분야에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머지 않은 미래에 우리가 진주층을 형성할 수 있는 완전한 조성과 공정을 개발하게 된다면, 진주조개 없이도 실험실에서 진주를 만드는 날이 올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