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日記), 하루의 기록
일기(日記), 하루의 기록
  • 박민해 기자
  • 승인 2018.03.28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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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뭐든지 기록하는 습관을 지니고 있다. 달력에 매일 할 일을 빼곡히 정리해놓는 것은 기본이고, 몇 년째 수업 필기 자료와 과제를 빠짐없이 보관하고 있다. 책, 영화, 공연, 전시회를 보고 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감상문을 쓰고, 여행을 가면 카메라로 보이는 모든 것들을 찍기에 바쁘다. 내가 이렇게 기록에 대한 강박을 느끼기 시작한 계기는 꽤 단순하다. 나의 경험, 생각 따위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서히 잊힌다는 사실이 너무 아쉬웠다. 과거의 내가 무엇을 보고 듣고 느꼈는지를 영원히 기억에 남기고 싶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꼬박꼬박 그것들을 기록하는 것뿐이었다.


그런 나의 보물 1호는 언제나 일기장이었다. 매일매일 나의 글씨로 채워나간 일기장들을 펼쳐보면, 과거의 내가 했던 사소한 생각들이 가득하다. 대수롭지 않아서 더 좋다. “매점에 새로 들어온 과일 음료수가 정말 맛있다”, “밤에 산책하다가 달을 봤는데 유난히 밝았다” 같이 시답잖은 이야기들을 거르지도, 고치지도 않고 적어댔다. 심심할 땐 그림도 자주 그렸고, 자습시간에 친구들이 보내온 쪽지 조각들을 구석에 붙이기도 했다.


그 무수한 티끌 같은 기록들이 하나하나 모여서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나 마찬가지다. 일기를 씀으로써 내가 오늘 어떤 경험을 했는지를 정리하고, 조금씩 자아를 성찰하면서 성장해나갈 수 있었다. 그래서 일기를 읽으면 하루가 멀게 달라지는 나 자신이 보인다. 당시의 상황을 머릿속으로 상상하면, 어린 나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다. “맞아, 그땐 그랬지!”, “지금의 나였다면 어땠을까?” 같은 생각의 가지를 뻗어 나가는 것은 그 어떤 소설을 읽는 것보다도 재미있다. 그 이유는, 모든 것이 결국 ‘나’의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정확히 재작년 겨울 이후로 나는 제대로 일기를 쓴 적이 없다. 자투리 시간이 생기면 무의식적으로 휴대전화부터 붙잡게 됐고, 분신과도 같던 일기장은 굳이 쓸 필요가 없는 짐이 돼버렸다. 분명 나는 일기를 쓰는 것이 삶의 가장 큰 낙이었는데, 쳇바퀴를 굴리듯이 너무 반복적인 일상을 살면서 나의 하루를 기록해야겠다는 생각 자체를 잊어버린 것 같다.


오늘이 지나고 나면, 오늘의 나는 누가 기억해주겠는가. 더 많은 시간이 흘러버리기 전에 다시 일기장을 들고 다니려 한다. 아무리 소소한 하루일지라도, 언젠가 꺼내어 추억할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