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개방
대학의 개방
  • 사설위원회
  • 승인 2018.03.28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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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대학은 올해부터 개교 이래 가장 큰 실험을 하나 하고 있다. 모든 학부 학과의 정원을 없애고 전체 신입생을 자유 전공으로 선발한 것이다. 신입생은 2학년이 되면서 자신이 원하는 전공을 선택할 수 있고, 그 이후에도 전과를 원하는 경우 기존보다 훨씬 쉽게 전공을 바꿀 수 있다. 사실 중·고등학교에서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하고 진로를 탐색하더라도 자신의 적성이 대학의 어떤 전공에 적합한지 파악하기란 매우 어렵다. 대학에 와서 관심 있는 전공을 실제로 공부해 보고 전공을 선택/변경할 수 있으므로 학생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외국 대학에서는 매우 일반적인 제도이기도 하다.


국내는 KAIST를 제외하고는 학부 전공/정원에 우리대학 정도의 개방성을 가진 선례가 거의 없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교육부/대학/학과에서 입학 정원을 정확하게 관리하는 방식을 취해 왔다. 정원을 변경하기도 매우 어렵다. 한 20년 전 정도만 해도 우리나라의 대학 정원은 수험생 수에 비해 매우 적었다. 따라서 대학은 상대적으로 ‘갑’의 위치에 있었고 많은 제도가 대학의 편의에 부합하도록 만들어지고 운영됐다. 우리대학은 그 기득권을 내려놓는 과감한 결정을 내렸고, 새로운 제도의 성공적인 운영을 위해 많은 준비를 해 왔다. 각 학과를 설득하고, 새로이 무은재학부를 만들고, 학부 교과과정을 개편하는 등 매우 어려운 과정을 지나왔다. 각 학과는 기존의 갑의 처지에서 이제 학생을 많이 혹은 적정 수를 유치해야 하는 을의 처지로 기득권을 포기하며 스스로를 내렸다. 이를 위해 좋은 교수의 확보, 훌륭한 교과과정의 설계 및 운영, 적절한 학생 지도 등 모든 면에서 학과끼리 서로 경쟁을 하게 됐다. 솔직히 교수 중의 한 명으로서, 그렇지 않아도 할 일 많은데 신경 쓸 것이 꽤 더 늘어난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대학의 발전을 위해서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하며 대승적인 결정을 내린 우리대학의 동료 교직원에게 경의를 표하고자 한다.


학부 입학 제도의 개선 이후 과연 이 정도의 개방성으로 충분할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 대학원은 어떨까? 요즘 여기저기서 융합을 강조하는데 학부 전공이 다른 대학원 입학생에게 외국 대학과 비슷한 정도로 차별 없이 공부, 연구할 기회를 주고 있는가? 혹은 우리대학이 가지고 있는 많은 훌륭한 시설, 기자재 등은 그냥 우리만 사용할 것이라고 가둬 두고 있어서 그 활용성이 매우 낮은 것은 아닌가? 실제로 주위를 둘러보면 대학이라는 울타리가 폐쇄성을 의미하는 예가 매우 많으며, 우리대학도 결코 예외라고 할 수 없다. 


필자가 한 20년 전쯤 외국에서 박사 과정 공부를 하다가 신선한 충격을 받은 예가 하나 있다. 그 대학에서는 동네 주민이 수업료만 내면 대학 수업을 마음대로 수강할 수 있었다. 물론 학점은 다른 일반 학생과 같이 엄격하게 준다. 정식 학위 과정은 아니고 우리 말로는 시간제 학생 정도로 번역하는 것 같다. 우리로 따지면 지곡동에 사는 나이 지긋한 주민이 우리대학의 교양이나 전공과목을 그냥 돈 내고 수강하는 것이다. 본인의 지적 욕구를 위해서 그 정도로 만족해도 되고, 혹은 공부에 더 뜻이 있어 전일제 학생으로 대학에 입학하면 그동안 시간제로 수강한 과목의 학점을 인정해 준다. 타 대학에서 수강한 과목도 마찬가지다. 이런 곳에서는 대학이라는 기관이 10대 후반, 20대 초반이라는 특정 연령대에 특별한 시험을 잘 보아야만 입학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대학이라는 곳은 공부를 위해서 언제나 열려 있는 기관이다. 이를 어떻게 활용하는 가는 학생(즉 교육산업의 소비자)에게 달려 있다.


우리대학은 계속 개선하고 변하지 않으면 도태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대학이다. 태생부터 모든 면에서 남들과 다른 것을 표방했기 때문이다. 지방의 소규모 사립대학으로 남들과 비슷해지면 망한다. 그 바람직한 변화의 한 방향으로 대학의 개방성 확대에 주력할 것을 제안하고 싶다. 그것이 학생의 선택권에 대한 것이든, 우리대학이 생산해 내는 지식과 그 가치에 대한 것이든, 지역 사회에서 공헌을 위한 것이든, 계속 더 ‘열어야’ 한다. 물론 이러한 개방성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때때로 구성원이 지금보다 더 노력해야 하는 것이 사실이다. 인터넷과 MOOC 등의 확대로 고급 지식 전달이라는 대학의 전통적인 역할이 점점 퇴색해가고 있는 이 시기에, 대학의 바람직한 역할을 개방성의 확대를 통해 찾아보는 것도 의미 있는 시도가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