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인상 100일, 아직은 캄캄한 새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최저임금 인상 100일, 아직은 캄캄한 새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 이승호 기자
  • 승인 2018.03.07 14: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나라의 역대 최저임금 인상률
▲우리나라의 역대 최저임금 인상률

지난 1월 1일 인상된 최저임금이 적용되기 시작했다. 올해 최저임금은 7,530원으로 전년도 대비 16.4% 인상됐다. 최저임금 인상은 작년 장미대선에서 모든 당의 공약이었을 만큼 정치적·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상황이었다. 최저임금 인상 속도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있었지만, 문재인 정부는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공약 이행의 일환으로 급진적 최저임금 인상을 택했다.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정부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최저임금 인상을 통해 국민들의 실질적 소득을 증가시킴으로써 경제성장을 이끌겠다는 것이다. 이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핵심 키워드라고 할 수 있는 ‘소득주도성장’으로, 정부는 가계 소득 증가에 따른 국민들의 소비 증가, 그에 따른 기업들의 투자 확대와 생산성 향상으로 경제 성장을 이끄는 선순환 효과를 기대했다. 이번 최저임금 인상 수혜를 주로 누리게 되는 저임금 노동자의 경우 한계소비성향이 높아 이러한 선순환 효과가 극대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행은 최저임금 인상의 효과로 올해 민간소비 증가율은 2.7%,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3.0%로 예상했다.


둘째, 부의 재분배에 따른 소득 양극화 해결이다. 자본주의사회의 소득 양극화 현상은 시대적 해결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2016년 지니계수는 0.354로 OECD 회원국 중 최상위권을 기록했다. 일반적으로 지니계수 0.4 이상 사회를 소득 불평등에 따른 불안정 사회로 평가하는 것을 감안한다면 긍정적인 수치는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기존의 경제성장 성과가 가계소득으로 이어지지 않은 것을 지적하며 국민들의 실질적인 삶의 질 향상을 목표로 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의 영향을 받는 노동자들이 가계의 주된 소득원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한국노동연구원 한국노동패널티 조사에 따르면 최저임금 영향권 노동자의 83%가 가구주 혹은 배우자로 가계의 주 소득원인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노동패널티조사에서는 가구주와 배우자를 가계의 주 소득원으로 분류한다.) 하지만 올해 월 최저임금(209시간 기준)은 157만 3,770원으로 2016년 기준 단신 노동자 평균 생계비인 175만 2,898원에 미치지 못한다. 이렇듯 정부는 위협받고 있는 저소득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삶을 최저임금 인상을 통해 보장하고자 한다.

 
하지만 급진적인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이른바 ‘최저임금의 역설’이 가시화되며 근로자 수를 줄이는 자영업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최저임금 노동자가 대다수인 편의점, 커피전문점에서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아르바이트 포털 알바천국의 자료에 따르면 최저임금 인상안 적용 후 편의점과 커피전문점 구인 광고가 각각 14.6%, 14.2% 줄었다. 최저임금이 인상되자 최저임금을 받을 기회가 줄어드는 역설적인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소상공인들의 부담 감소를 위해 정부는 영세 사업장에 직원 한 명당 13만 원의 일자리 안정자금 지원 정책을 발표했으나 신청률은 8.7%(2월 5일 기준)에 그쳤다. 소상공인들이 신청을 꺼리는 이유로 ‘4대 보험 적용 기준이 부담스러워서’가 34.7%, ‘고용 감축이 더 유리해서’가 17.7%였다. 정부의 반쪽짜리 정책에 우려의 목소리가 커져만 가고 있다.
노동자의 근로시간 감축도 문제가 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꼼수로 고용주들이 노동자들의 근로시간을 단축해 이전보다 더 밀도 높은 노동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고용자 수 감축으로 노동자들은 더 많은 양의 일을 더 적은 시간 안에 끝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올해 1월 1일부터 주 35시간 근무제를 도입한 이마트는 최저임금 인상 제도를 무력화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전수찬 이마트 노조위원장에 따르면 이마트 캐셔의 경우 준비·마감 시간이 각각 10분씩 줄어 휴게 시간과 마감 시간의 추가적인 노동을 하고 있다며 이마트 일자리 실태를 꼬집었다. 국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최저임금 인상이 오히려 노동자들의 근무 환경을 악화시킨 셈이 된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안이 시행된 지 약 석 달이 지나고 있다. 아직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내수 진작 여부를 파악하기에는 이르다는 게 경제 전문가들의 주된 평이다. 하지만 이미 시장 곳곳에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앓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시간이 필요한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이라지만, 추가적인 대책이 없다면 최저임금 인상은 악수(惡手)라는 평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