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 문학’이 나에게 던진 물음
‘퀴어 문학’이 나에게 던진 물음
  • 이슬기 / 화학 16
  • 승인 2018.03.07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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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학기 ‘현대 한국문학의 이해’ 수업을 들었다. 매시간 다양한 단편 소설을 텍스트로 해, 생각해 볼만한 주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수업이다.


내가 선택한 단편 소설은 윤이형 작가님의 소설집인 ‘러브 레플리카’에 수록된 ‘루카’였다. 나는 ‘사랑’과 같이 사람과 사람 사이 숨 쉬는 관계에 관심이 많았고, 내가 잘 알지 못하는 관계에 있는 퀴어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 이 텍스트를 선택했다.


이 소설의 제목인 ‘루카’는 소설 속 ‘딸기’로 불리는 ‘나’가 ‘예성’인 ‘너’를 부르는 별명이다. ‘딸기’와 ‘루카’는 퀴어 커뮤니티의 별명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섬세한 호흡이 담긴 이들의 대화를 짚어가던 중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대화 속 질문과 대답에 어떤 공통점이 있다는 점이었다. 그것은 어떤 질문에 대해 때로는 답을 하고, 때로는 답을 하지 않기도 하는 것이었다.


대화를 이어나가지 않는 것은 소극적이고 소통을 하지 않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이 소설 속의 ‘대답하지 않음’의 행위는 단순한 소통의 부재를 의미하지는 않았다. 이들이 ‘답을 하지 않음’을 취하는 경우에는 그 질문이 존재에 관한 질문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존재는 누군가에게 때로는 종교의 모습으로, 다른 이들에게는 이름이나 성적 지향 등의 요소로 표현될 수 있다는 것을 이 소설을 통해 느꼈다.


그런 경우 존재에 대한 물음은 꼭 답하지 않아도 되는 어떤 것이 된다. 또한, 존재에 대한 물음은 그 자체로 권력 관계를 의미하고 폭력이 돼 상대를 옥죄기도 한다. 이때 답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런 물음을 당신이 할 권리가 없다는 일종의 적극적인 방어의 표현일 수 있다.


나는 ‘퀴어’라는 개념에 대해 궁금했고, 퀴어 당사자들과도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호기심을 드러내며 질문하는 것도 타인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고민이 생겼다. 그렇지만, 소설 ‘루카’에서 이야기했듯, 우리는 모두 ‘관계’되어 있기 때문에 타인에게 무지한 것이 폭력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나의 세계를 넓혀가야 할까? 퀴어 문학이 이렇게 나에게 질문했을 때, 운이 좋게도 나름대로 대답을 시작해볼 기회가 있었다.


‘불온한 당신’이라는 퀴어 다큐멘터리를 촬영하였고, 본인 또한 레즈비언인 ‘이영’감독님이 우리학교에 오신 것이다. 우리는 함께 영화를 감상했고, 감독님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내 질문은 현재 다수인 이성애자로서 동성애자들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것이었다. 기본적으로 우리와 같게 대해야 하는지, 아니면 다른 점이 있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하는지, 어떤 쪽이 폐가 되지 않는 태도이며, 그들은 어느 쪽을 원할지 물었다. 그때 감독님은 웃으며 그렇게 고민하는 마음이 중요한 것이라며, 그런 생각을 가지고 대화를 한다면 상대는 그 진심을 알아줄 것이라 대답했다.


시간이 지나고 그 대화를 곱씹어 보니, 나의 질문이 이분법적인 생각으로부터 나온 물음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부끄러웠다. 그들을 구성하는 정체성은 분명 여러 가지 유형이 있을 텐데 나는 그중 성 정체성만을 취하고 그들의 존재를 규정한 뒤에 다수라는 이유로 점한 우위를 이용해 호기심을 드러내고 발화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게 됐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떻게 대화할 수 있을까? 나는 ‘관계’에 대한 대화를 함으로써 가능할 것으로 생각한다. 각자의 렌즈를 통해서 서로를 볼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인정하고 그들의 존재에 관해서는 의문을 품지 않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인 ‘비포 선라이즈’에는, ‘신의 존재는 믿지 않지만, 만약 존재한다면 나와 네가 아닌 우리의 사이에 존재할 것’ 이란 대사가 나온다. 나와 너 사이의 ‘관계’가 신의 영역처럼 여겨지리만큼 아름답고 대단한 것이며, 단순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일 것이다.


근대적 이분법적 사고방식은 이렇게 엄청난 ‘관계’에 대한 우리의 노력을 얼마나 옥죌까? 이분하면 꼭 어느 한쪽과 다른 한쪽이 생기고 차이가 차별로 변하기 쉽다. 이렇게 둘로 나누지 않고 모든 개성이 존중받아서 모두가 자신의 소수자적인 측면을 인지하고 이에 관해 묻고 교류할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질까.


당연한 것 같고, 말하다 보면 너무 거창해져서 내가 손쓸 수 없다는 무기력증이 찾아올 것만 같다. 그래서 나는 일단 나부터 고민하고 반성하며 조금씩 변화하면 내 주변의 몇몇 이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인, ‘취미는 사랑’이라는 노래 가사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 흐르는 온기를 느끼는 것이 가장 소중하다’라는 가사가 나온다. 오늘도 내 생각을 정리하고 나눔으로써 조금의 따뜻한 온기를 전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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