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모던 과학기술
포스트모던 과학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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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3.07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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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들은 항상 새로운 진리의 가능성에 열려 있어야 하기에 어떤 신념에도 치우치지 않는 냉철한 합리성을 늘 유지하고 있으리라는 것이 우리 대부분의 생각이다. 하지만, 토마스 쿤은 과학자들도 ‘패러다임’이라는 신념 체계를 고집하고 있다 본다. 과학자들은 자신의 패러다임과 충돌되는 실재 사례가 제시될 때에도 이를 중요하지 않은 ‘예외(Anomaly)’로 간주하며, 늘 자신의 패러다임을 수정하기보다는 정교하게 세우는 일, 곧 ‘정상과학’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 쿤의 주장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하여 굳은 신념을 갖는 일은 중요하다. 그 일에 담긴 가치와 그 일의 성취를 위해 동원한 수단의 정당성과 합리성에 대해 믿음 없이 큰일을 이루어내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래서, 메달을 다투는 올림픽 국가 대표 선수들을 응원할 때나, 혹은 자신의 중요한 일을 앞에 둔 순간, ‘신념을 가져라’ ‘너 자신을 믿어라’라는 격려나 응원을 보내거나, 스스로 마음의 다짐을 하게 되는 것은 극히 당연한 일이며 마땅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기에 자신의 신념 체계에 대한 비판보다는 충성이, 과학자들의 활동 동력이 된다는 쿤의 주장은, 물론 이론적인 다툼의 여지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대로를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결코 과학자들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말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리라 생각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런 과학자들의 ‘용감한’ 신념이 오늘날 우리가 모두 향유하는 놀라운 과학기술 발전의 원동력이었기도 하다는 점을 결코 부인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리오타르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성을 ‘모든 거대 담론에 대한 의심’이라 규정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어떻게 서구와 온 세계를 이끌게 되었는지를 밝히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나치즘과 마르크시즘과 같은 전체주의가 가진 폭력성의 근원에 깊이 뿌리내린 거대 담론에 대한 맹목적인 신념이 있었다는 사실에 크게 실망한 서구의 시대적 분위기가 포스트모더니즘의 출현에 기여했다고 보는 것에는 큰 이견이 없다. 결국, 신념에 대한 충성은 많은 일을 이루어 내는 데 필요하지만, 가혹한 폭력성의 근거가 될 수도 있다는 반성이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이 시대 정신이 만들어 내는 정치, 사회, 문화적 분위기의 중심에 있다.


그런데, 엄밀한 논리에 따라 보면, ‘모든 거대 담론에 대한 의심’이라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핵심 담론은 패러독스다. 모든 담론을 의심해야 한다면, 포스트모더니즘 자체의 담론도 의심해야 할 터인데, 그렇다면, ‘의심해서는 안 되는 담론도 있다’라는 어색한 입장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런 자기모순 같아 보이는 패러독스에 부합하는 포스트모던 과학기술은 가능한 것일까?


‘인간폐지’라는 에세이에서 C. S. 루이스는 자신이 꿈꾸는 새로운 과학의 가능성을 묘사한다. “우리의 과학적 분석과 추상화를 통해 드러나는 세상은 실재라기보다는 하나의 시각에서 본 실재의 한 측면일 뿐이라 생각하는 과학, 어떤 과학적 설명도 부분적일 수밖에 없으며 전체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을 견지하는 과학, 연구 대상을 설명하되 설명해 버리지 않는(explain but not explain away) 과학이다”라고 루이스가 꿈꾼 과학은 어쩌면 포스트모던 과학기술의 가능성을 말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자신의 신념을 견지하지만, 자신의 패러다임에 대한 과신에 빠져 폭력적이지 않은 과학기술인, 그래서 언제나 모든 형태의 약자를 먼저 생각하고 모두를 생각하는 따뜻한 가슴을 가진 겸손한 과학기술인. 이들이 곧 포스트모던 과학기술자들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인류의 역사를 통해 과학기술은 늘 인간을 신념에 가득 차게 했으며 용맹스럽게 했다. 과학기술은 많은 거짓과 감춰진 비밀을 환하게 드러내며 냉철한 판단의 근거가 되어 우리에게 아무도 걸어가 보지 않은 새로운 길을 두려움 없이 걸어갈 수 있게 했다. 그렇게 인류는 과학기술에 힘입어 홍수와 가뭄, 추위와 더위, 배고픔과 질병을 견뎌왔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어느 것 하나 만만하지 않은 도전에 직면해 있다. 청년실업, 양극화, 환경파괴, 자연 재난 그리고 고령화와 같은 어려운 도전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으며, 많은 사람들은 과학기술이 이런 위기를 극복하는 열쇠를 제공하리라 기대하고 있다. 참으로 과학기술인의 역할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에 있다.


바람이 분다. 아직은 차갑지만, 확실한 봄바람이다. 새내기들을 맞아 우리 교정은 활기를 되찾고 있다. 머지않아 봄빛을 뽐내는 화려한 꽃들로, 새로 난 나뭇잎의 연한 초록빛으로 우리 교정은 가득하게 될 것이다. 열심히 공부하고, 확신에 찬 걸음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 할 때이다. 늘 겸손함을 잃지 않는 과학, 따뜻함을 모두에게 주는 기술을 추구하는 일에 정진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