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왜곡된 과거를 바로잡아야 찬란한 미래가 열린다
[시론] 왜곡된 과거를 바로잡아야 찬란한 미래가 열린다
  • 방학진 /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
  • 승인 2002.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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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8년 광주,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전라남도 조사부에 설치한 투서함에 투서하는 모습
최근 우리 사회에서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지식계 안에서 가장 많이 논의되고 있는 담론 중 하나는 바로 친일(또는 친일파 청산)문제이다. 몇 가지만 예를 들어보자. 박정희기념관을 반대하는 가장 강력하고 설득력 있는 논거가 바로 그의 친일 경력이다. 그리고, 화가 김기창, 시인 서정주의 죽음과 이어진 미당문학상 제정, 안티조선과 이문열의 홍위병 발언, 최근 필자가 몸 담고 있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요구로 관철된 친일파 박흥식(반민특위에 제1호로 체포된 매판 자본가로 서울 광신학원 안에 그의 동상이 있다)의 동상 철거와 사학 분규의 대표적 사례인 덕성여대(덕성여대 설립자로 알려져 있는 친일파 송금선의 아들이 재단 이사장으로 분규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문제에 이르기까지 가히 우리 사회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는 분란과 모순의 뿌리에 어김없이 친일(파)의 문제가 또아리를 틀고 있는 형국이다.


대부분의 사회 분란의 거대한 뿌리

친일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친일’이라는 다분히 ‘한국적 용어’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우선 친일문제를 바라보는 몇 가지 잘못된 시각을 짚어보자.

먼저 친일(親日)을 단순히 한자 그대로 해석한데서 오는 오류이다. 글자 그대로 일본(또는 일본 사람이나 일본 문화에 익숙한)과 친한 사람이나 경향을 친일파나 친일로 보는 시각이다. 이는 한·일 관계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결여된 것으로 논외로 하여도 무방하다고 보지만 노파심에서 지적을 하고 넘어 가자면 이렇다. 위에서 언급한대로 ‘친일’이라는 용어는 한국과 일본사이에 근 백년 간의 역사 속에서 생성된 용어로 넓은 의미에서 이해하자면 ‘pro-japan’이 아니라 ‘pro-fascism’으로 이해해야 옳다.

따라서, 친일문제는 ‘일본’이라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가 문제가 되는 것이며 구체적으로 말하면 제2차 대전 중 제국주의(帝國主義) 일본이 식민지 조선을 직접 통치하면서 그 통치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식민지 조선 사람을 이용하였고 그 조선인들은 다시 제국주의 일본에 협력하여 자기의 공동체(이 시기 조선의 정치·문화 공동체는 바로 ‘민족’ 단위이기 때문에)를 배반하여 결국 제국주의 일본의 식민 통치를 강화한 제국주의 협력자(collaborationis t)가 되는데 이들을 우리 나라에서는 친일파(親日派)라 하였고, 중국에서는 한간(漢奸), 프랑스에서는 ‘꼴라보’ 영어권에서는 ‘collaborationist’라 지칭하는 것이다. 따라서, 친일파를 바르게 이해하자면 넓은 의미에서 파시스트(fascist)로 보아야 마땅하다. 그러므로, 단지 일제 당시 창씨 개명을 했다거나 소극적 또는 생존을 위해 불가피한 친일을 한 것 조차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고 적극적ㆍ자발적ㆍ지속적ㆍ출세 지향적 친일이 지금 와서 문제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박정희, 김기창, 서정주, 조선일보, 박흥식, 송금선 등이 바로 여기에 해당되는 인물인 것이다.

두 번째로 친일이 왜 지금까지 문제가 되는가 혹은 문제를 삼고 있느냐는 볼멘 소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박정희나 서정주가 일제 때에 친일을 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들은 이미 죽고 이 세상에 없지 않은가’, ‘과거는 과거다. 현재가 중요하고 더욱이 미래가 더 중요하지 않은가’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친일 1세대는 이제 거의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그들이 남겨놓은 ‘제도’이다. 박정희는 죽었지만 박정희가 한국 정치와 사회에 깊게 남겨놓은 제도와 관행(예를 들어 국가보안법과 같은 악법과 반공주의, 군사문화, 권위주의, 인권 탄압과 같은 후진적 관행 등)이 문제이고, 서정주는 죽었지만 서정주가 문단에 남겨놓은 기회주의와 출세주의는 결국 문학가(또는 예술가)가 영혼과 양심을 지키지 못하고 역대 독재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그들에게 ‘용비어천가’를 바치기에 급급한 천박한 문학 창녀가 되도록 한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렇듯 친일파가 남겨놓은 속성은 크게 보아 ‘기회주의’, ‘사대주의’, ‘출세주의’, ‘대세주의’ 등을 들 수 있는데 이것은 친일파가 해방 후 그대로 반공의 망토를 걸치고 반공투사로 변신하여 친미파로 돌아선 데에서 극명하게 보여진다.(2001년 8월 26일자 LA 타임즈 보도)

더욱이 친일이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을 올바로 단죄하지 못함으로써 나타나는 미래에 대한 범죄의 방치이다. 프랑스의 문학가이면서 2차 대전 당시 반나치 운동에 선봉이었던 까뮈는 ‘과거의 죄에 대해서 응징하지 않는 것은 미래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이라면서 친나치 부역자에 대한 철저한 응징을 주장한 바 있다.

또한 해방 정국 아래서 미군정의 한 관리는 친일파를 중용하면서 “일제에 협력한 사람들은 당연히 우리(미국)에게도 협력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을 활용하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라고 말한 대목을 음미해 볼 만 하다. 제 민족을 배신한 사대주의자의 속성을 미국은 이미 그 때부터 꿰뚫어 보고 있었다는 반증일 것이다.따라서, 친일 문제를 올바로 해결하자는 것은 미래에 대한 우리 사회의 최소한의 준비인 지도 모른다.


친일인명사전 편찬으로 역사적ㆍ도덕적 청산해야

그러면, 요즘 언론의 주목 속에 진행되고 있는 ‘친일인명사전’이라 무엇인가? 그것은 어느 날 갑자기 제기된 문제가 결코 아니다. 그것은 해방 후 우리 사회에서 줄곧 진행되고 있는 반민족ㆍ사대주의 세력에 대한 자주ㆍ독립세력의 정당한 응징이며 인류의 악으로 공인된 파시즘(독일의 나치스, 스페인의 파시스트, 일본의 천황주의자 등)에 대한 부정이라는 도도한 시대정신의 반영인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그것은 1948년 국회에서 만들어져 불과 1년만에 이승만과 친일세력에 의해서 무참히 해산된 반민특위(반민족행위조사특별위원회)의 역사적인 계승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완용의 손자가 실정법의 보호 속에서 재산을 찾아가는 현실 속에서 친일파를 부관참시(剖棺斬屍)하자거나 그들의 재산을 몰수하자는 인적ㆍ물적 청산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에 대한 역사적ㆍ도덕적 청산을 하자는 것이 바로 ‘친일인명사전’의 편찬이다. 그들의 죄상을 객관적으로 남겨놓고 민족 성원 전체를 향한 반성을 요구하는 민족 양심의 고해서로 삼자는 것이다.

어느 사회나 모순을 가지고 있고 그 모순은 반드시 인과관계가 있으며 그 해결책도 바로 그 사회가 지니고 있는 법이다. 지금 이 순간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거의 모든 근곀測六瑛?모순이 바로 친일파와 친일잔재의 미청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1세기가 접어든 이 시간에도 20세기의 과제와 씨름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