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 부추기는 교육정책
혼란 부추기는 교육정책
  • 김정묵 기자
  • 승인 2001.1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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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란 부추기는 교육정책
‘선봉대 투쟁’. 이 사뭇 전투적인 구호를 외치며 나선 이들은 다름 아닌 선생님들이다. 최근의 일련의 교육 정책에 대한 교육인적자원부(이하 교육부)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간의 대립이 극에 달함에 따라 전교조는 지난 14일~17일, 4일간에 걸쳐 ‘단체 협약 조속 체결과 사립학교법 개정 촉구 선봉대 투쟁’을 서울 여의도 일대에서 가졌다. 전교조 측의 이 같은 강경한 투쟁은 주간 교육희망이 ‘아스팔트 교육’이라고 묘사한 바 있는 지난 달 26일, 27일, 양일 간에 걸쳐 1만 5천여명이 참가한 연가투쟁과 이번 선봉대 투쟁에 이어 ‘교육부가 현안에 대한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지 않을 경우’ 오는 22일 조합원 찬반 투표에 이은 26일 총파업으로 치닫게 될 것으로 보여 교육 일선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사실 전교조와 교육부간에 조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양측은 지난 3월부터 지난 달 25일까지 실무협의 13차례, 교섭위원회 9차례에 걸친 교섭을 통해 ‘성과 상여금’과 ‘자립형 사립고’등의 사안등에서 타협점을 찾을 수 있었으나 ‘7차 교육과정 개선’, ‘중초 임용’, ‘조합 활동 보장’ 등의 현안에서는 끝내 타결을 보지 못 했다.

이들 중, 가장 쟁점이 되고 있는 제 7차 교육과정은 현재 초등학교 1~4학년 및 중학교 1학년까지 실시 중이며 내년에 고등학교 1학년까지 실시될 예정으로 ‘국민 기본 교육과정의 편성’, ‘고교 2,3학년의 학생 선택 중심 교육 과정 도입’, ‘수준별 교육 과정 도입’ 등을 그 골자로 하고 있다.

제 7차 교육과정 개정안에 의하면 국민 기본 교육과정은 초등 1학년~고등 1학년, 10년간 국민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 소양을 교육하는 기간으로 단계별 개념에 기초하여 국민 누구나 다 공통된 과정을 배우게 된다. 고교 2, 3학년의 선택 중심 교육과정은 일반 및 심화 선택으로 구분된 다양한 선택 과목을 개설, 과정이나 계열의 구분 없이 학생의 선택 폭을 확대시켜 주게 된다. 수준별 교육 과정은 학생의 능력과 개인차에 맞는 다양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심화겫맡 및 단계별로 과목을 선택할 수 있는 수준별 교육 과정을 편성하게 된다. 곧, 대학의 교양 필수과목과 같이 초등학교 1학년에서 고등학교 1학년까지 기본 소양과목을 마무리하고 전공겮궈 과목처럼 고등학교 2, 3학년 과정을 학생의 선택에 따라 수업을 받게 하며 이 과정에서 자신의 수준과 적성에 맞는 수업을 들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교육과정의 도입은 실로 획기적인 변화라 할 수 있다. 우선, 국민기본소양 위에 자신의 능력과 적성, 진로를 고려하여 수업을 받아 우리 교육의 병폐로 지적되어 왔던 일률적인 암기 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고, 특히 과목 선택 과정에서의 학생의 주체적 자세는 학생들에게 성취 동기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토록 ‘이상적인’ 교육과정은 전교조 뿐만 아니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한국교원노동조합 등 교육계 전반에 걸친 거센 반대에 직면하고 있다. 이는 교육과정이 지닌 가지는 현실과의 괴리와 내재적인 모순에서 찾을 수 있다.

우선, 선택형ㆍ수준별 수업을 실시하기 위한 교원 확보에 큰 문제가 있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지 못한다’는 말은 교육계의 금언이나 기본 교과, 일반 선택, 심화 선택 등 90여 개에 이르는 다양한 교과목(현행 70여개)을 개설하고 학생들의 요구에 맞춘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일부 과목에서의 파트 타임, 기간제, 계약제 교사 채용이 불가피하여 이는 결국 전체 교원의 지위 불안정으로 이어져 교사의 질적 저하를 초래할 수 있다. 이는 교육부가 추진중인 중등교사 자격증 소지자의 초등 교사임용문제와 성과급제 등과 맞물려 현재 교육부의 교원 정책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는 형편이다. 또한 시설 확충과정에서의 혼란도 무시할 수 없다. 실제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허경철 박사도 “완전한 학생 선택권이 보장되면서 유연한 교원수급이 동시에 이루어지려면 학교의 규모가 엄청 커져야 한다. 대략적으로 한 학교가 150학급 이상, 학생 수가 6,000명 이상이 되었을 때, 선택중심형 교육과정이 실현될 수 있다”라며 이 같은 현실을 인정했다.

더군다나 우리 입시 환경에서 입시에 관련된 일부 과목들에 집중되면 비입시관련 과목들의 고사로 최소한의 교육의 다양성이 붕괴됨을 물론, 입시 과목의 심화 과정 도입이 이미 비대화된 사교육을 더욱 부추길 수 있다. 게다가 실질적으로 학급이 사라지게 되어 학생관리 및 지도, 학급 공동체의 유대감 형성 등이 타격을 입게 된다면 이는 결국 ‘학교’라는 공교육의 붕괴로 이어지게 될 수 도 있는 것이다.

전교조 측은 이러한 일련의 교육 정책에 대해 교육 당국이 교육 재정 감축에 따른 부담을 ‘시장’에 맡김으로써 교육을 ‘경쟁’과 ‘효율’에 맡기는 처사라며 강행을 고집하고 있는 교육부에 대해 “7차교육과정이 현 정권의 중요한 업적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왔기 때문에 이를 수정하거나 유보하면 자칫 자기 부정으로 비쳐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인 것 같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미래를 짊어진 교육 당국과 일선 교사들의 대립으로 교육 현장의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와중에서도 언론은 이러한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고민하기보다 ‘수능’이나 ‘입시’ 같은 현상적인 문제에 치우치며 동어반복적인 비판만을 되풀이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개정 교육과정이 시행된다면 엄청난 혼란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는 ‘교육의 결과물’이 아닌 기본 방향에 대한 진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