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정부 교육정책 진단 -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은 트로이의 목마
김대중 정부 교육정책 진단 -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은 트로이의 목마
  • 김대유 / 전교조 정책연구국장
  • 승인 2001.08.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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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은 집권초 자신을 교육대통령이라 칭하며 여러 가지 교육개혁 정책을 펴나가려고 했지만, 지금에 이르러 교육은 별반 달라진 것이 없고, 짧은 3년 사이에 교육부 장관만 5명이 바뀌는 등 교육계는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입었다.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은 이전보다 더 큰 혼란을 느끼고 있고, 정년 단축과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인해 교원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다. 교육은 백년대계란 말을 들먹일 필요도 없이 정부가 추진하는 교육정책마다 손바닥 뒤집듯 국민을 속여 왔기 때문이다. 교원정년 단축을 하면서 노령교사 1명을 내보내면 2.5명을 충원하겠다더니 2001년 현재 교원 부족 사태는 최악에 이르러 초등학교에서는 담임교사 없는 학급이 수두룩하고, 2002 대입무시험전형제도는 고사하고 오히려 영수국 본고사 부활을 의미하는 ‘2005 수능Ⅰ,Ⅱ이원화’ 계획을 발표함으로써 사교육비를 부추기고, 교육재정은 4%대에서 뱅뱅 맴돌고 있으며, 갈수록 교육이민은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김대중대통령의 교육개혁 실패는 이미 집권 초의 정권 인수위원회 때부터 예정된 것이었다.

교원의 정년을 단축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시간을 갖고 교원의 의사를 반영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이해찬 장관과 관료들을 등용하여 살기등등하게 정년 단축을 강행했다. 그로 말미암아 교원은 지난날 다른 직업군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했던 처우를 보상받기는 커녕 IMF의 희생양으로 매도당하는 ‘정신적’ 굴욕감을 느껴야만 했다. 정년단축의 득실을 떠나 결과적으로 교사들은 자존심을 다쳤고, 김대중 정권은 교사들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 어떤 교육정책을 내놓아도 마음을 잃은 교사들이 동행할 리가 없다. 전교조 합법화는 정년 단축의 실패를 만회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낳기만 했지 양육을 포기한 부모처럼 합법화 이후의 전교조를 그대로 방치했고, 오히려 수구적이고 반개혁적인 교육관료들의 손에 전교조의 목을 맡김으로써 다시 한 번 교사들의 마음을 멍들게 했다.

예정된 교육개혁 실패의 또 다른 동인(動因)은 7차교육과정의 무비판적인 수용이었다. 알다시피 7차교육과정은 김대중 정권이 5년 동안 교육개혁을 완성해야 할 설계도였다. 문제가 많은 김영삼정권의 7차교육과정을 일체의 가감없이 수용한 순간, 교육개혁은 변죽만 울리도록 입력된 것이다. 전교조와 교총이 7차교육과정의 수정고시를 요구하고 한나라당조차 전면 유보를 주장했지만 정부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야당과 전체 교육계의 간절한 소망을 거절한 김대중 대통령과 민주당은 이로써 교육개혁에 관한 한 그 능력을 의심받게 되었고, 그 여파는 고스란히 2002년 대통령 선거로 밀려가게 되었다.

신자유주의(neo-liberalism) 교육정책이라는 낱말은 이제 김대중정권의 교육개혁을 상징하는 브랜드가 되었다. 정부가 추진하는 BK21과 자립형사립고는 대학과 초중등교육을 온통 뒤흔들어 놓으면서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이 얼마나 매운가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의 핵심은 오히려 간단하다. ‘교육은 민간재’라는 것이다. 적자생존의 법칙에 따라 생존하는 대학만 차별적으로 육성하겠다는 고등교육정책과 점차 모든 사립고등학교를 자립형사립고로 만들어 사립학교에 지원되는 1조 4천억원의 국고를 절감하겠다는 초중등교육정책의 방침은 트로이의 목마처럼 낯설고 불안하다.

처음부터 원칙도 철학도 없이 마구잡이로 시행되도록 설정된 교육정책은 여건을 무시하고 과정을 생략한 채 기승을 부렸다. 국립서울대설치령에 따라 차별적인 행ㆍ재정 지원을 받고 있는 서울대와 그렇지 못한 다른 대학의 경쟁이 어떻게 공정할 수 있겠는가. 전국의 모든 학교들이 7차교육과정에 따라 입시공부를 하는 반면 영어와 수학 과목을 집중적으로 공부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 등의 특혜를 받는 자립형사립고가 어떻게 평등한 경쟁을 할 수 있겠는가. 연간 1,000만원의 등록금을 내야할 정도로 계급화된 자립형사립고는 애시당초 서울대 전문입시학교라는 목적성 귀족학교로 인식되고 있음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이는 국민에게 학교선택권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 부자계층에게 특혜를 주는 부도덕한 행위임에 틀림이 없다.

1999년에 EI(세계교원노조연맹)와 PSI(세계공공부문노조연맹)는 일찍이 21세기를 공교육 위기의 시대로 선포했다. 이는 거대 자본과 다국적 회사들에게 전세계 11억 명의 아이들과 5천만 명의 교사들이 교육적 대상 이외의 다른 대상(이윤추구적 가치?)으로 대상화 되었음을 알리는 경보음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영국 등 지구촌의 일부 국가에서 교육은 <평등성겫맥茨틒대중성>을 추구하는 공동체적 이념을 버리고 <수월성곂오꼈틒개별성>을 추구하는 신자유주의적 이념으로 그 성격이 탈바꿈되는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한 현상은 특히 교육을 통하여 선진국가의 외형을 손쉽게 짧은 시간에 흡수하고자 하는 우리 나라의 열악한 정치 문화적 요구와 맞물리면서 상승작용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세계화의 기치를 걸면서 단행된 1995년의 5ㆍ31교육개혁은 우리 나라에서 처음 선보인 신 자유주의 교육정책이었다. 5ㆍ31교육개혁은 표면적으로 개인과 사회의 교육적 욕구를 학교로 흡수한다는 명제를 표방했지만 결론적으로는 실패한 열린 교육만을 전쟁의 잔해처럼 학교에 남겨놓으면서 막을 내렸다. 당연히 5ㆍ31교육개혁 이후 드러난 교육적 이데올로기는 각 계층과 계급의 욕구를 학교교육에 다양한 형태로 이입시키는 방식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교육정책은 관료주의적 측면에서 교사직급의 다단계화(수석교사제 등), 학교간 서열화 유지, 입시교육의 공고화, 교원의 평가체제 구축 등을 유지ㆍ확대시킴으로써 교육계의 보수세력과 개혁세력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하였고, 고등교육정책은 낡은 대학체제를 그대로 둔 채 평가에 따른 차별 지원 등 BK21 같은 깃발성 정책을 양산하였다.

결국 공교육의 위기는 일단 근본적인 개혁이 빠진 껍데기 교육개혁을 타성적으로 반복하는 구태에서 그 징후를 찾아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 학교는 여러 이데올로기가 혼재된 상태에서 정치와 관료, 거대 자본과 기업, 심지어 대안교육과 탈학교 현상까지 온갖 욕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가운데 급속도로 정체성을 상실했고, 교사와 아이들은 혼란에 빠져들었다. 교육정책을 책임진 정치인과 관료들이 ‘의식의 제자리 뛰기’를 반복하는 동안 교사들은 승진경쟁으로 날을 지새며 정체성의 혼란을 거듭하고 있고, 아이들은 입시교육에 매몰되면서 교실붕괴를 경험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에 대한 전면적인 궤도 수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반짝하는 시책성 정책을 즉시 철폐하고, 학급당 학생 수 감축, 교원 증원, 대학의 전문화를 위한 재정지원 확대 등 하드웨어 구축에 묵묵히 주력해야 할 때다. 입만 둥둥 뜬 채 실속은 없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김대중 정권의 교육정책을 반면교사로 삼아 지금부터는 학생, 학부모 등 교육주체의 요구를 반영하는, 차분한 정책 수립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