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신 우일신(日新 又日新)
일신 우일신(日新 又日新)
  • 승인 1970.01.0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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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의 사서 중 하나인 『대학(大學)』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다. “진실로 하루를 새롭게 할 수 있다면 나날을 새롭게 할 수 있고 또 날로 새로워진다(苟日新 日日新 又日新).” 이 글귀는 중국 은(殷) 왕조의 시조인 탕왕(湯王)이 매일 목욕을 하기 위해 물을 담는 그릇에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탕왕은 목욕을 할 때마다 스스로를 경계하여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는 백성들을 새롭게 하기 위해서는 군주인 자신부터 새로워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를 실천에 옮겼다. 유교는 법이나 힘이 아닌 도덕의 힘으로써 백성들을 교화시켜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것으로 이상을 삼았다. 이를 위하여는 다스리는 자의 엄격한 자기절제와 수양이 요구되었는 바, ‘대학’의 본 가르침이 여기에 있었다.

그런데 어느 새인가 우리 사회에서는 가진 자, 다스리는 자의 특권만이 있을 뿐 거기에는 아무런 긍지나 책임도 따르지 않았다. 하여, 모든 사람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출세만을 바라게 되었다. 출세의 기준은 돈과 권력이었고, 명예는 이에 당연히 따라 붙는 것으로 여겨졌다. 사회의 혼탁함은 대학마저 오염시켰다. 모든 대학들이 앞다투어 돈이 되는 학문을 추구했다. 총장에게는 학문적 권위나 인품이 아니라 최고경영자로서의 자질이 요구되었다. 외부로부터 돈을 많이 끌어오면 그는 유능한 총장이 되었다. 교수들도 마찬가지였다. 돈이 되는 연구과제를 많이 따와야만 유능한 교수가 되었다. 이러한 사회풍토에서는 학생들이 인문학을 외면하고 이공계를 기피하며 법대와 의대로 몰리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다. 그들이 돈과 권력을 추구한다고 하여 누가 그들을 나무랄 수 있겠는가. 대학의 도서관이 취업준비와 고시방으로 전락한들 누가 그것을 막을 수 있겠는가.

대학의 혼탁함은 지난 해 언론의 가장 큰 관심을 받았던 ‘황우석 교수사태’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그는 신화적 인물에서 하룻밤 새에 부도덕한 교수로 추락했다. 그러나 냉정하게 한번 물어보자. 누가 그를 나무랄 수 있는가. 언론에서, 나아가 정치계에서 그를 ‘과학적 영웅’으로 만들어갈 때 학계에서는 그를 쳐다보며 부러워하기만 했다. 만약 한 방송이 내부고발자의 입을 빌어 황우석 교수의 연구성과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면, 그에 대한 신화는 지속되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각 대학은 제2, 제3의 황우석을 만들기 위하여 분주했을 것이다. 언론의 화려한 조명과 수십, 수백억원 대의 연구비, 그리고 세계적 명성을 마다할 과학자가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오늘과 같은 혼탁한 사회, 혼탁한 대학의 풍토가 바뀌지 않는 한 ‘황우석 신화’는 언제든지 재연될 수 있다.

한 학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사회의 과학기술과 물질문명의 시계는 ‘현대’를 가르키고 있지만, 과학적 사고나 인문학적 사유의 시계는 ‘근대’에 머물러 있다는 데 흔쾌히 동의한다. 지난 몇 달 신문지면을 들끊게 했던 황우석 교수 논란에서 드러난 과학의 신화화와 과학자의 영웅화, 검증 기제의 부재는 인문학적 사유와 과학적 사고가 기술문명의 속도를 쫓아오지 못해 벌어진 유감스런 해프닝이라 볼 수 있다.”

과연 그러한가? 과학적 사고와 인문학적 사유가 ‘현대화’되면, 황우석 신화와 같은 것은 사라지는 것인가? 오히려 우리는 시계의 추를 과거로 돌려, 지식인의 양심과 도덕성을 먼저 회복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우리 사회와 대학을 짓누르는 ‘업적지상주의’를 경계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풍토에서는 수단과 방법의 정당성을 문제삼을 겨를이 없다. 신자유주의 사조가 팽배한 요즈음의 세계에서는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이 최대의 덕목이 되었다.

2006년의 새해가 시작되었다. 올해는 포항공대가 설립된 지 2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포항공대의 과거를 되볼아보고 앞으로의 방향을 재정립해야 한다. 1980년대 중반 한국의 대학들이 정치적 투쟁의 한 가운데 서있을 때 포항공대는 ‘연구중심대학’을 표방함으로써 대학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었다. 그것은 비정상적인 상태에서 정상으로의 환원이었다. 21세기 초입에서 한국의 대학들은 물신주의에 물들어 있고, 한국의 과학계는 안팍으로 신뢰의 위기를 맞고 있다. 대학의 본분과 역할, 그리고 과학기술의 윤리성과 발전 방향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때이다. 포항공대가 과거의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나날이 거듭나는 새해를 맞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포항공대는 새로운 이정표를 세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