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대학이 변한다-미국 대학교육의 어제와 오늘 ②]
[21세기 대학이 변한다-미국 대학교육의 어제와 오늘 ②]
  • 최상일 / 물리 교수
  • 승인 2000.10.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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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육, 학생 중심 학습위주 방향으로 선회

미국에 있는 한 동료의 말이 생각난다.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동부의 어느 유명한 사립대학에 가기를 원한다는 말을 들은 그 동료가 거기 가면 제대로 공부 못할 것이니 보내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고 하였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그 명문대학의 대학원 학생으로서 실험실 조교 일을 할 때의 일화를 하나 들려 주었다. 화학실험에서는 극소량의 액체를 재거나 옮기는데 피페트를 사용한다. 이 피페트는 뾰족한 끝을 갖고 있으며 이 끝은 항상 청결하게 유지하여야 한다. 그럼에도 학사과정 실험실의 몇 학생들이 피페트의 끝이 실험테이블 위에 닿도록 놓아둔 것을 보고 주의를 주었는데도 다음 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흥분한 조교가 담당 교수에게 보고하였더니, ‘그냥 두어, 그 학생들은 졸업하면 자기 아버지 회사에 가서 일하다가 사장, 회장이 될 사람들인데 피페트 사용법 안 배워도 된다’라고 교수가 말하였다고 한다. 이는 제2차대전이 끝난 직후의 이야기이니, 그 당시 많은 미국 명문대학의 교육철학을 어느 정도 나타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태도가 급격히 바뀐 계기가 된 것이 소련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였다. 정치적 이념의 경쟁자인 소련이 미국보다 앞서 1957년에 인공위성을 성공적으로 올렸다는 사실이었다. 언론은 과학교육의 중요성을 대서특필하고, 미국 각급 학교에서의 과학교육의 문제점을 집중적으로 거론했다. 스푸트니크 발사 성공 얼마 전에, 국회에서 풀이 푸른 색인 이유를 알아서 무엇 하겠느냐고 하며 기초과학 지원을 반대한 윌슨 국방장관이 농담의 표적이 되고 사임한 것도 이 시기의 분위기를 잘 나타내고 있다. 이 때부터 미국의 대학교육, 특히 과학 및 공학 교육 향상을 위한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새로운 고등학교 과학교재가 작성되고, 대학 교과과정의 재검토가 실시되고 대학의 규모가 커지기 시작했다. 많은 대학이 연구소 같은 분위기를 갖게 된 것도 이때부터이다. 미국 정부의 지원 하에 연구중심대학의 수가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 대학의 현주소

미국정부와 사회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던 연구중심대학들이 비난의 소리를 듣기 시작한 것은 70년대였으며, 이 비난은 미국경제를 이끄는 기업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대학에서 학생 교육을 잘 못한다는 불평이 나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특히 기초가 약한 졸업생을 배출하고 있다든가, 글도 제대로 못쓴다든가, 외국어를 너무 못한다는 등의 평가가 많았다. 이런 비평은 약 10년 전에 한국에서도 있었다. 미국에서 교육받은 어느 전자 회사의 이사가 보내온 편지에 한국의 일류대학의 우수 졸업생들을 채용했는데 이들의 기초 지식이 너무 약해서 빨리 변화하는 전자기술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미국의 우수대학에서는 교과과정을 개편하여 기초교육을 강화하고, 대학 교육/수업방법을 연구개발하기 위한(포항공대의 대학교육개발센터 같은) 센터를 설치하기 시작하였다. 가장 먼저 이러한 센터를 설치한 곳 중에는 하버드 대학과 스탠퍼드 대학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 센터에서는, 대학교육 현장의 경험과 지난 20여년 동안에 이루어진 학습이론(Science of Learning)의 연구결과, 그리고 컴퓨터 및 정보기술을 연결시켜서 대학구성원에 제공하여 학생들에게 더 우수한 교육을 제공하려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미국 전역에서 급속히 발전하고 있으며, 어떤 주에서는 모든 주립대학에 이러한 센터를 설립토록 법으로 강요하고 있다. 신학습이론과 컴퓨터 기술을 이용한 새 교재개발을 위한 막대한 연구비를 대학예산에 포함시키는 대학이 많아졌다.

대학교육을 향상시키기 위한 이러한 노력은 미국에 한정되지 않고 유럽, 일본, 중국 등에도 널리 퍼지고 있다.

각 대학에서 이러한 자구책을 강구하는 한편, 과학한림원(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공학한림원, 카네기교육재단 등에서는 전문가들로 위원회를 구성하여 대학의 교육 개선책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하여 지난 6년 동안 출판하였으며, 과학재단에서는 수학, 과학, 공학, 기술의 대학교육 개선을 위한 뒷받침을 하고 있다.

21세기의 대학

과거의 대학교육은 지식전달 위주이고 교수 중심이었으나, 이제부터의 대학교육은 학생 중심이고 학습위주가 될 것이다. 교수는 지식을 전달하는 주체가 아니고, 학생의 학습을 돕는 역할을 할 것이다. 그렇게 해야 옳은 학습효과가 일어난다는 것이 지난 20년 간의 인지과학 연구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무엇을 배운다는 것은 이미 갖고 있는 사전지식에 새로 얻은 정보를 연결하여 재구성한다는 것이 근래에 널리 받아들여지는 학습이론이다. 각 학생의 과거 경험, 지난날의 교육 등이 다르면 각자가 갖고 있는 기존지식이 다르고 생각하는 방식이 다르니까 배우는 과정이 다를 수 있다. 내가 강의하는 일반 물리학을 듣는 학생이 61명이다. 이들 각자는 틀림 없이 고등학교에서 우수한 학생이었으며 두뇌가 명석한 학생이다. 그러나 나는 한 가지 방식으로 강의한다. 이 강의를 듣고 각자의 기존지식과 연결하여 각자의 지식을 구성하여야 한다. 이 과정은 각 학생이 할 일이지 내가 할 일은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각 학생이 재구성하는 과정을 돕기 위하여 질문하고 학생의 질문에 적절한 답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대학교육은 학생중심이어야 한다.

빨리 변화하는 사회가 요구하는 사람은 무엇을 많이 알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사회가 필요하는 사람은 많이 알 뿐 아니라 독자적으로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문제풀이를 잘하고 논리적으로 자기의사를 발표할 줄 알고 협력할 줄 아는 사람이다. 지식을 재구성하는 학습을 잘하는 학생은 이러한 특성을 취득하기도 쉬울 것이다. 연구중심대학에는 이런 특성을 가진 많은 교수가 있으니까, 우수한 교육을 학생들에게 제공하기에 유리한 곳이다. 지금 미국의 연구중심대학들에서는 이런 특성을 살려서 우수교육을 제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한국의 연구중심대학도 한국 장래의 주인공이 될 학생들을 위한 옳은 교육의 시도를 조금씩 하고 있다. 외국에 너무 뒤지지 않기 바란다.


World Wide Web의 영향

1993년에 시작된 ‘World Wide Web’은 미국대학 변화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고 대학을 존재위기에 몰아갈 수도 있다.
네트워크로 연결된 컴퓨터는 이미 우리 우리 대학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많은 행정절차가 바뀌었고, 연구방법 및 연구결과 발표도 많이 변화했다. 교육에서는, 강의하는 과목의 web site를 운영하는 교수들이 늘어나고 있어 예습 복습 질의응답을 on-line에서 할 수 있게 하고 있다. Web을 이용한 강의에서 강사의 동영상을 볼 수 있고 음성을 들을 수 있고 질의 응답을 할 수 있고 시험도 칠 수 있다면, 학생이 강의실에 나타나야 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시뮬레이션을 이용한 실험도 할 수 있다면, 대학에 다닐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 오전 9시30분에 졸음이 오는데도 불구하고 공학 3동 109호실에 나타나서 수십 명의 동료학생들과 강의를 듣는 대신에, 잠이 깨이고 머리가 깨끗한 늦은 오후에 혼자 조용히 앉아서 컴퓨터를 켜서 website에 들어가면 강의를 듣고 볼 수 있으며 이해가 잘 안되면 다시 듣거나 시뮬레이션 실험을 해보고 그래도 안되면 on-line 질문을 하면 더 효과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on-line으로 강의한다면 한 교수가 50명을 상대로 하나 500명을 상대로 하나 무슨 차이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학생들이 자주하는 질문에 대하여 자동적으로 답을 하게 하면 500명이든 1000명이든 관계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기술이 더 발달하여 자동 개인 교수(automatic tutoring)가 가능하게 되면 web을 이용한 강의는 더더욱 효과적이 될 것이다. 미국 과학재단은 새 학습이론 구성론(constructivism)을 응용한 자동개인교수(automatic tutoring) 기계 연구를 위한 센터를 두 곳에 설립하여 지원하고 있으니까 성공할 날이 그리 멀지 만은 않은 것 같다. 이러한 강의법을 사용하면 포항공대 학생을 위한 강의를 포항공대 교수가 할 필요가 없게 되겠다. 예를 들어 일반물리 강의를 하는 교수가 한국에 몇이 필요할까? 우수한 사람 몇 명만 있으면 그 분들의 강의를 각 대학에서 사용하면 될 것이다. 모든 분야의 강의에 관하여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겠다. 이렇게 되면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들이 대학교육을 운영할 가능성이 크게 될 것이다. 미국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대기업들이 사내 대학을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그 수는 약 600여 개에 이르고 있다. 이런 사내대학 중에는 그 회사의 사업에 관한 교육 뿐 아니라 글쓰기, 읽기, 비판적인 사고방법 등을 교육하기도 한다고 한다. 모토로라(Motorola) 회사의 사내대학 학생은 10 만명에 이르고, 그 중 20%는 사외사람들이라 한다. 이러한 경험을 갖고 있는 기업에서 위에 언급한 방법을 사용하여 성공적으로 일반 대학 교육에 참여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현재로는 중요한 지식과 교육 자원의 소유자는 대학들, 특히 연구중심 대학들이다. 그래서 미국의 대학과 기업이 합작하여 일부 대학원 교육과 훈련 과정을 web으로 하기 시작하였다. 그 중 두개만 예로 든다면 UCLA는 Online Learn ing Corporation과 합작하였고, UC-Berkeley는 America On-line과 계약을 맺었다고 한다.

장래를 위한 옳은 교육 목표는, 많이 알 뿐 아니라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문제풀이를 잘하고 논리적으로 자기의사를 발표할 줄 알고 협력할 줄 아는 도덕적인 사람의 양성이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키 위하여 우수한 학자와 대화하는 교육을 능가할 교육방법은 당분간은 없을 것 같다. 포항공대는 컴퓨터가 제공하는 여러 도구를 학습이론에 맞게 사용하면서 학생 중심 교육을 실천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