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와 개혁
변화와 개혁
  • 승인 1999.1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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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한 개인이든 단체이든 국가이든 더 나아가 세계이든지 변화의 큰 흐름이 감지되는 때가 있다. 21세기를 앞둔 지금의 시점이 바로 그러한 때임은 누구다 다 느끼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시기는 위기이기도 하고 또 기회이기도 하다. 요컨대 변화의 흐름을 잘 파악하고 그에 대처하면 새로운 도약의 계기가 될 수도 있지만, 변화하는 것 자체를 거부하거나 두려워하면서 미적대다 보면 퇴보하거나 정체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른바 IMF 사태를 통하여 이를 뼈저리게 느꼈었다. 그리하여 사회 전 부문에서의 구조적 개혁이 선택이 아니라 당위의 문제로서 다가왔었다. 과연 우리는 이러한 개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아직 회의적이다. 우리는 스스로 위기를 극복했거나 또는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러한 생각 자체가 또 한번의 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국가적 차원에서는 그렇다 치고, 우리 학교는 어떠한가? 최근의 학내사태를 보면, 회의적인 수준을 넘어 스스로 체념하는 상황으로까지 나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갖게 한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이에 대해서는 교수와 직원 그리고 학생 모두가 자성할 필요가 있다. 서로를 탓하기 전에 스스로의 문제를 냉철하게 짚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대학본부측에서는 미래의 비전을 명확히 제시해야만 한다. 포항공대가 현재 처해 있는 객관적 상황을 정확히 진단하고 그 바탕 위에서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과 목표 그리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합리적인 세부방안들을 강구하여 제시함으로써 학내 구성원들의 자발적 동의와 헌신적 노력을 이끌어낼 수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본부’가 해야 하는 일이다.

지난 해 8월에 총장이 새로 취임한 후 교과과정 개편이라든가 신인사제도의 도입과 같은 구조적 개혁방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을 수용해야 할 당사자들이 그 취지와 내용을 잘 모르고 있거나 무관심하거나 아니면 크게 반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일차적으로는 대학본부가 정책 결정과정에서 적극적으로 구성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또 설득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신인사제도와 같은 것은 교수와 직원들이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사안인 만큼 보다 신중한 접근자세가 요구된다. 그리고 “해야 된다”라든가 “하지 않을 수 없다”라는 소극적 태도보다는 “왜 해야 되며, 또 함으로써 얻게 되는 긍정적 효과가 무언인가”를 분명하게 밝히고 동의를 이끌어내려는 적극적 자세가 필요하다.

한편, 교수와 직원들도 자신들의 입장만을 내세울 것이 아니라 대학 전체의 발전이라는 차원에서 학내의 현안문제들을 바라보고 해결하려는 대승적이며 진취적 자세가 요청된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정책이란 것은 좀처럼 없다. 따라서 타협과 양보가 불가피한 것이다. 그런데 그동안의 논쟁들을 지켜보면,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가운데 건설적인 대안을 모색하기보다는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면서 어느 한편에 서기를 강요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갖게 한다. 이렇게 되면 문제해결이 더욱 어려워질 뿐만 아니라 설혹 해결이 된다 하더라도 그 후유증을 감내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무엇이 옳고 그르냐가 아니라 어떤 방안이 가장 바람직하냐 하는 것이 지금의 학내문제라면, 여기에는 얼마든지 지혜를 모아 함께 해결해 나갈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현재 처한 상황과 조건은 결코 열악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과거에 연연하거나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새롭게 도전하고자 하는 의욕만 있다면, 그리고 그 과정에서의 고통과 희생을 서로 나누어 가질 수 있는 용기만 있다면, 여전히 미래의 희망은 남아 있다.

포항공대의 ‘신화’는 어느 한 사람이 아니라 구성원 모두의 헌신적 노력에 의해서 만들어졌었다. 이제 와서 이 ‘신화’가 깨어진다면, 그것 역시 우리 모두의 책임일 수밖에 없다. 신화는 만들기는 어려워도 깨어지기는 쉽다. 그 어느 쪽이든 선택은 바로 지금 우리에게 맡겨져 있다.